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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낮 2시,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우리사회 재개발 사업의 대안 토론회>가 열렸다.
▲ 재개발 토론회 19일 낮 2시,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우리사회 재개발 사업의 대안 토론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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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패륜사업입니다. 처음에는 노인 상대 다단계 사업으로 시작해서 고려장 사업으로 발전하고, 그것도 안 되면 불로 태워죽입니다."

재개발 지역 당사자들이 19일 낮 2시,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우리사회 재개발 사업의 문제와 대안 토론회'에 모였다.

국회의원부터 시민단체 관계자, 교수, 관료들까지 모였지만 정작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잘 알게 해준 사람들은 살던 곳, 일하던 곳에서 내몰리게 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날 토론회엔 재개발로 피해를 입게 된 가옥주, 세입자, 상가임차인, 소상공인 등 당사자들이 패널로 많이 참여했다. 그럼에도 방청객들은 패널들의 말로는 재개발 문제를 다 얘기할 수 없다는 듯 저마다 자신들 사연을 이야기하며 언성을 높였다.

토론회에 방청객으로 참석한 영일시장 대표분 "딸아이가 엄마 우리도 용산처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 영일시장 대표 방청객 토론회에 방청객으로 참석한 영일시장 대표분 "딸아이가 엄마 우리도 용산처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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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들 발표 후 질의 시간은 방청객들의 재개발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시간이었다. 자신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나타내는 방청객도 있었고 어떤 방청객은 질의를 하면서 과격한 표현을 써 주의를 받기도 하였다.

5년째 성북구 종암동에서 재개발과 맞서고 있다고 한 방청객은 "(이런 방식의 재개발은) 재산권 침해 이전에 포괄적인 인권침해의 문제이니깐 인권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또, 자신이 영일2구역 영일시장 대표라고 밝힌 방청객은 "(상가 주인인) 저희들도 보호를 못 받는데 어떻게 세입자들이 보호를 받겠느냐?"며 "딸아이가 엄마 우리도 용산처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 인권위에서 토론회한다고 하던데 너무 늦은 감이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응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세 번째 발표자였던 왕십리기계금속비상대책위원장 이재운씨의 말은 재개발 당사자들이 이 날 토론회 같은 자리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줬다. 이씨는 쉬는 시간 기자들에게 왕십리에 관한 자료도 나눠주면서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또, 자신의 발표시간이 부족했는지 회의가 끝난 후 "XX재벌은 제일주의라 용역도 가장 비싼 용역을 쓴다. 속된말로 용역들이 몸에 똥 바르고 들어온다"며 격정적인 감정을 토로했다.

왕십리기계금속비상대책위원장 이재운 씨가 신문 보도를 들고 왕십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 왕십리기계금속비상대책위원장 왕십리기계금속비상대책위원장 이재운 씨가 신문 보도를 들고 왕십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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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뿐만 아니라 당사자로 참여한 다른 패널들 역시 방청객들처럼 재개발에서 자신들이 당한 부당함을 이야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왕십리1구역세입자 이은정씨는 "왕십리는 세입자들이 20-30년 장기거주한 사람이 많은 상당히 안정된 지역"이라며 "뉴타운 이전에 3-4000천만 원 정도 하던 집을 1억 넘게 줘도 구하기 쉽지 않다"고 분개했다. "투쟁을 오래하다 보니 다혈질이 되어버려 원고 없이는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겠다. 밤 세워서 원고를 준비했다"는 용마터널세입자대책위원회 김홍석씨는 "1억 넘게 투자했는데 5천만원 주고 나가란다. 그나마 나는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이날 패널로 참여한 당사자들은 주어진 시간만으로는 내 얘기를 다 못 하겠다며 사회자의 제지에도 자신들 시간을 넘기며 재개발의 부당성을 이야기했다.

세입자뿐만 아니라 조합원인 소유주도 재개발 피해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왕십리 가옥주 대표로 부모님을 대신해 참여했다는 정진영씨는 "집값을 계산할 때 전체 왕십리 1구역을 3600억으로 책정해놓고 800명으로 나누어 주는 계산법은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에 대한 침해"라고 주장했다. 정진영씨 뿐만 아니라 회의 중에도, 쉬는 시간에도 '공산당도 이런 식으로 뺏아 가지는 않는다'는 말이 여러번 터져나왔다.

나눔과 미래 이주원 사무국장은 투명성이 없는 것이 가장 문제라며 "치킨 가게를 시작하더라도 보증금, 임대료는 어느 정도인지, 상권이 있는지, 월매출은 얼마나 될지 조사하고 자영업을 시작한다. 근데 평생 일군 재산인 집 한 채 내놓고 재개발 사업을 하는데, 감정평가가 어떻게 되고 분담비용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인감도장 찍으라고 한다"면서 조합과 지자체의 행태를 비판했다.

▲ 항의하는 방청객과 말리는 인권위 관계자 토론회 쉬는 시간 중 한 방청객이 떠나는 공무원을 붙잡고 따지고 있고 인권위 관계자가 이를 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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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 의원이 재개발과 관련된 방청객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다.
▲ 김진애 의원 김진애 의원이 재개발과 관련된 방청객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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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참석한 서울시, 국토해양부 공무원은 원성의 대상이었다. 휴업 보상비가 3개월에서 4개월로 늘어난 것을 얘기할 때는 다들 그게 무슨 큰 도움이 되느냐는 분위기였다. 세입자보호대책을 마련할 경우 25% 범위 내에서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개선책 역시 불광4구역처럼 고도제한이 풀리지 않아 용적률이 늘어난 혜택을 전혀 못 보는 사례도 있었다. 어떤 방청객은 토론회 1부가 끝나고 공무원에게 계속 따지고 물어 인권위 관계자가 이를 말리느라 애를 먹기도 하였다.

공무원들에게는 원성이 쏟아진 반면 정부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한 김진애 의원에게는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날 김진애 의원은 "오세훈 시장은 뭔가 하신다고 얘기하셨는데, 공공관리제도, 클린업 인터넷 시스템처럼 겉에 보이는 것은 좀 했지만, 핵심적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를 비판했다. 또, "소외감과 좌절감을 안고 살지만 무엇보다 공공이 주거권을 책임 질 수 있는 정책을 펴기 위해 국회에서 싸우겠다"고 밝혀 많은 박수를 받았다.

또, "현재 뉴타운 방식이 문제가 많지만 뉴타운 자체는 장기적으로 사회적인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 한양대학교 이창무 교수에게는 질문이 쏟아졌다. 주택여과효과에 대해서도 "재개발로 인해 외곽으로 빠진 인구가 정말로 삶의 질이 좋아지는 것 같으냐?", "뉴타운 등으로 부채가계는 700조로 늘고 가처분소득은 엄청나게 줄었는데 외형적으로 건물만 생긴다고 잘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느냐?" 등 비판적인 질문들이 많이 나왔다.

이 날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왜 진작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느냐'는 분위기였다. "나는 목숨 걸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쏟아 내었다. 3시간 15분으로 예정되었던 회의가 4시간으로 늘어났지만 토론회에 모인 사람들은 4시간도 짧다는 분위기였다.


태그:#국가인권위원회, #재개발,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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