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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내에서 트레비 분수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시내 곳곳에는 트레비 분수를 가는 표지가 아주 잘 되어 있다. 그리고 워낙 많은 여행자들이 좁은 길을 따라 트레비 분수로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여행자들의 뒤만 쫓아가도 트레비 분수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문학적으로 표현한다면, 나는 트레비 분수의 물소리를 쫓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여행자들을 따라 물소리를 좇아 트레비 분수로 간다.
▲ 트레비 분수 가는 길. 여행자들을 따라 물소리를 좇아 트레비 분수로 간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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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 분수는 '트레비(삼거리)'에 있었다. 트레비 분수는 '삼거리에 있는 분수'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삼거리 분수'다. 트레비 분수와 삼거리 분수는 어감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삼거리 분수에는 사진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여행자들의 왁자지껄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트레비 분수는 폴리 대공 궁전의 정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독특한 분수이다. 궁전의 벽면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그 앞에 흰 대리석으로 분수대를 만든 것이다. 궁전의 벽면, 분수대의 배경은 개선문의 모양을 본 딴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궁전 벽면의 실제 창문이 분수의 배경이 되고 있고 이 창문들은 분수와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로마 시내에서는 비교적 나이가 젊은 분수대이지만 이러한 독창적 배치와 아름다움으로 인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것이다.

분수의 도시인 로마. 로마의 분수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분수가 트레비 분수이다. 트레비 분수는 서기전 19년에 아우구스투스(Gaius Julius Caesar Augustus, B.C 63~14년) 대제의 집정관이었던 아그리파(Marcus Vipsanius Agrippa, BC 62~BC 12년)가 남긴 고대 로마 수로의 흔적이다. 당시 아그리파는 로마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14개에 달하는 고가 수로를 완성하였다. 놀랍게도 트레비 분수는 고대 로마의 가장 오래된 수로를 지금도 그대로 이용하여 분수의 물을 공급하고 있었다.

고대 로마는 테베레(Tevere) 강 유역에 자리를 잡았지만 150만 명까지 달했던 로마 사람들에게 물을 모두 공급하기에는 부족했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100km가 넘는 먼 곳으로부터 물을 끌어와서 개인 상수도를 공급하고 분수를 만들고 대규모의 공중목욕탕을 건설하였다.

르네상스 시대가 되자 교황들은 로마 시내의 물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로마의 상수도 체계를 전면적으로 수리하게 되었고 새로운 수로를 개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황들은 로마에 물을 풍부하게 만든 자신들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러 개의 분수를 세웠다. 그 중 최고의 금자탑이 고대 로마의 수로를 그대로 연결한 트레비 분수이다. 15세기에 처음 만들어졌던 트레비 분수는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의 설계로 1762년에 완성되었다.

수많은 인파와 넘치는 젊음으로 활기에 차 있다.
▲ 트레비 분수의 저녁 인파. 수많은 인파와 넘치는 젊음으로 활기에 차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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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트레비 분수는 정녕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다웠다. 시원한 물소리의 청량감이 분수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마셔도 될 정도로 깨끗하다는 로마 분수의 청결함이 기분을 더욱 상승시키고 있었다. 시원함에 덧붙여 분수대의 조각은 너무나 환상적인 신화의 나라였다. 이 많은 인파만 아니라면 투명한 물속으로 뛰어들어 수영하고 싶을 정도로 분수의 물은 깊었다.

분수대의 중앙에는 이탈리아 분수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바다의 신 넵튠(Neptune)과 그의 아들이자 전령인 트리톤(Triton)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넵튠의 상징인 삼지창은 웬일인지 보이지 않지만 그의 오른손에 흔적만 남은 잘린 조각이 삼지창이 아닐까 싶다. 물을 다루는 신 넵튠은 거대한 조가비 조각 위에서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탄 채 바다를 호령하고 있었다.

오른편의 트리톤은 그의 상징인 고둥을 불고 있었다. 트리톤은 상반신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물고기 모습의 하반신은 분수대의 물속에 담그고 있었다. 한 쌍의 트리톤은 거친 바다와 잔잔한 바다를 상징하는 두 마리의 말을 다루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었다.

마치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있었던 듯 자연스러운 바위 아래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분수대의 물은 넵튠 아래에서도 나오고 분수대 양편의 바위 조각 아래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분수의 물줄기는 로마 신화의 조각품과도 잘 어울리고 있었다.

희고 노란 조명 속의 트레비 분수가 환상적으로 빛나고 있다.
▲ 저녁의 트레비 분수. 희고 노란 조명 속의 트레비 분수가 환상적으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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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면 트레비 분수가 유독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도 바위에서 끊임없이 물이 힘차게 흘러나와 커다란 연못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분수대를 만들면서 낙차를 크게 하기 위해 주변의 땅을 깊게 팠기 때문에 물의 흐름이 매우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마치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듯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에 많은 여행자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늘로 물줄기가 솟는 로마 시내의 다른 분수들과 달리 트레비 분수는 자연의 모습과 같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트레비 분수가 트레비 분수인 것은 트레비 분수에 전해오는 한 전설 때문이다. 트레비 분수에는 여행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전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트레비 분수 앞에 모인 여행자들은 대부분 트레비 분수의 유명한 전설을 신봉하고 있었다.

모든 여행자들은 분수를 뒤로 하고 오른손에 든 동전을 자신의 왼쪽 어깨 너머로 힘차게 던진다. 그들은 동전을 던지면서 자신의 소원을 빈다. 그런데 이 소원은 모든 여행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소원이다. 자신이 따로 소원을 정할 여지는 없지만 여행자들은 이 소원을 따르면서 아주 즐거워하고 있었다.

젊음과 활기 넘치는 분수 주변으로 가게들이 성업 중이다.
▲ 낮 시간의 트레비 분수. 젊음과 활기 넘치는 분수 주변으로 가게들이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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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을 던져서 동전이 한 번에 바다의 신 넵튠 쪽의 상단 분수대에 들어가면 로마로 다시 돌아올 수 있고, 두 번째 동전이 이 분수대 상단에 들어가면 원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이루게 되며, 세 번째 동전을 던지면 싫어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있다고 한다. 언제부터 생긴 소원인지는 모르지만 네 번 째 동전이 성공하면 헤어졌던 인연이 다시 연결된다는 것인데 소원의 내용도 컴퓨터가 업데이트 되듯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다.

나는 몇 년 전 로마여행에서 두 번째 동전까지 던져서 성공했던 기억이 있었다. 내가 지금 다시 로마에 와서 동전을 던지고 있으니 첫 번째 소원은 이미 이룬 것이고, 아내와의 사랑도 이루고 결혼까지 했으니 두 번째 소원도 이룬 셈이다. 나는 트레비가 정한 소원 이외에도 내 개인의 소원을 하나 더 정해서 빌었었다. 그 소원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 로마에 신혼여행을 오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신혼은 아니지만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트레비 분수 앞에 서 있음에 행복했다.

아내는 동전을 던져서 첫 번째 소원까지 빌었다. 우리 가족의 가이드인 나는 아내에게 첫 번째 소원만 말해 주었다. 나와 결혼한 아내는 두 번째 소원을 빌 필요가 없다고 독단적으로 판단을 했다. 게다가 세 번째 소원은 아내가 더욱 빌면 안 되는 소원이었다. 딸 신영이는 두 번째 동전까지 성공했다. 딸 아이는 여행을 좋아해서 분명 로마에 다시 올 것이고 두 번째 소원도 필히 성공하기를 아빠로서 기원해 줬다.

트레비 분수가 로마의 대표 관광지로서 히트를 치고 있는 것은 분수의 아름다움 외에도 속세에 퍼진 이 신앙과 같은 전설 때문이다. 여행을 마치고 언젠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모든 여행자들에게 로마와 같은 선망의 여행지에 다시 올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여행자들은 트레비 분수 앞에서 로마로 다시 올 거라는 다짐을 하며 일상에서 일탈하는 여행의 꿈을 꾼다. 누가 이 전설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여행지에 대한 콘텐츠 마케팅으로 보면 기가 막힌 걸작이다.

분수 안에는 동전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이 육안으로도 잘 보인다. 동전을 던져서 분수대의 상단에 올려놓지 못하면 동전을 계속 던지기 때문이다. 사실, 분수대 상단에 동전을 던져서 올리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냥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넣어도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동전을 던지는 행위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로 여행자들은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트레비는 비싼 유로화를 던져야 소원을 빨리 들어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트레비 분수도 물질 만능에 빠진 것이다. 나는 농담으로라도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미웠다. 소심한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전혀 마음에도 없는 비싼 유로화를 던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경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액면가가 낮은 유로화 동전만을 트레비 분수에 던졌다.

내가 도착한 오늘도 수많은 여행자들의 동전 던지기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트레비 분수에 모이는 세계 각국의 동전들은 3백~4백 유로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이 수많은 동전을 만져보기 위해 물 속에 손을 넣으면 분수대 주변의 경찰들이 바로 와서 제지를 한다. 다행히 트레비 분수에 모인 동전은 정기적으로 수거되어 불우이웃 돕기에 쓰이고 있다고 한다.

저녁의 트레비는 희고 노랗게 빛나는 조명 빛이 은은했다. 예쁘게 빛나는 트레비 분수의 조각상과 물소리의 시원함을 즐기기 위해 저녁에도 여행자의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분수대 바로 앞자리는 자리를 잡기도 힘들 정도이다. 분수 앞 사방에 젊음의 열기가 후끈거리고 있었다. 저녁의 트레비 분수는 낮에 보았던 트레비 분수와는 또 다른 매력과 분위기가 있었다.

검은 청동 동상으로 분장한 행위예술가가 여행자를 만나고 있다.
▲ 거리의 행위예술. 검은 청동 동상으로 분장한 행위예술가가 여행자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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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분위기에 취해 로마를 떠나기 전에 다시 트레비 분수를 들렀다. 역시 여행자는 많았고 젊음이 넘치고 있었다. 분수 앞 길 모퉁이에서는 검은 청동 동상으로 자신을 분장한 행위 예술가가 길 지나는 여행자를 즐겁게 하고 있었고, 저녁 시간에는 문을 닫았던 주변의 카페와 식당, 기념품 가게들이 모두 문을 열고 있었다. 트레비 분수에만 집중되었었던 눈이 트레비 분수 앞의 가게들로 분산되어 트레비 분수가 더욱 풍요롭게 보였다.

나는 아내, 딸과 함께 트레비 분수가 보이는 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우리는 트레비 분수와 분수 앞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다. 왁자지껄한 여행자들의 외국어 속에서 시원한 트레비 분수의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낮 시간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 분수 앞 아이스크림가게. 낮 시간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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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 분수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래시계의 시간은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다시 로마의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 길을 걸으며 트레비 분수를 되돌아보았을 것이다. 나는 다시 로마로 돌아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탈리아, #로마, #트레비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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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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