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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연구소는 2009년 10대 히트상품으로 제주올레투어를 선정하면서 "누구나 익숙하게 여겼던 여행지인 제주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제주'를 다시 돌아보고 재방문하도록 유도했다"고 평했습니다다. 또 "도보여행 트렌드의 확산은 관광지 증명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여행에서 다양한 가치를 깊이 있게 체험하는 여행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다.

올레투어는 신개념 도보여행으로 전국적으로 걷기열풍을 주도하며 도보여행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제주도의 새로운 매력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왁자지껄 몰려가고 명승지위주로 사진찍고 오는 관광, 한사람이라도 더 불러들이려는 양적팽창의 관광패턴을 대중관광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관광트렌드를 대안관광이라고 부릅니다. 요즘 경제의 화두가 녹색성장이라면 거기에 대응하는 관광의 새로운 사조는 그린투어리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레는 원래 대문(정낭)앞의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어이다.
▲ 올레와 정낭 올레는 원래 대문(정낭)앞의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어이다.
ⓒ 윤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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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는 원래 집 앞 골목길을 이르는 제주 사투리였지만 이젠 걷기여행의 효시로 전국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한국식 걷기여행, 슬로투어리즘, 건강과 환경과 지역을 생각하는 신개념 여행방식이 바로 제주올레투어인 것입니다.

신개념 올레길을 개척한 사람은 제주출신으로 오마이뉴스편집장을 지낸 서명숙(현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에 의해서였습니다. 그이는 저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어 왔던 길입니다. 장장 800km가 넘는 이 길의 끝은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의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어집니다. 이미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어부였던 야고보를 상징하는 조개껍질이나 그 상징물을 배낭에 달고 걸어 온 이 길은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오늘날 기독교의 3대 성지순례처로 꼽히기도 합니다.

스페인에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있다면, 이제 한국에는 '제주 올레'가 있습니다. 골목에 갖혀 있던 올레가 세상의 중심으로 나온 것입니다. 2009년말 15개 코스가 개장되어 각각의 고유한 매력이 있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선호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제7코스입니다.

특히 바다와 접한 풍경이 눈길을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외돌개산책길, 돔베낭길처럼 유명한 해안산책로가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외돌개에서 월평까지 이어지는 약15km의 올레7코스는 총4~5시간이 소요되는데 종주를 할지 중간까지만 갈지 망설여진다면 평탄한 외돌개 쪽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군요.

자, 유서 깊은 외돌개에서 출발해 보실까요? 외돌개의 상징은 장군바위죠 할망바위라고도 합니다.

왼쪽의 바위가 장군바위(할망바위)이고 멀리 보이는 섬이 범섬이다.
▲ 장군바위와 범섬 왼쪽의 바위가 장군바위(할망바위)이고 멀리 보이는 섬이 범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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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바위의 남쪽 바다에는 범섬 즉 호랑이를 닮았다는 제법 큰 섬이 있습니다. 섬 오른쪽으로는 똑같이 생긴 두개의 동굴을 (호랑이)콧구멍동굴이라고도 부릅니다.

옛날, 고려시대에 한때 몽골이 제주도를 지배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이 대군을 이끌고 제주에 와서 몽골세력을 소탕하는데 몽골잔당들이 저쪽의 범섬에서 마지막 저항을 했다고 합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어느날 장군바위에 투구를 씌우고 갑옷을 입혔더니 몽골잔당들이 거대한 장군이 나타난 것으로 알고 항복을 했다는 전설이 있지요. 몽골세력이 마지막으로 저항했던 섬이 바로 범섬입니다.

외돌개의 상징은 장군바위입니다. 지질학적으로 제주도는 현무암층이 많은데 유독 이 지역만 암질이 약한 조면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파도의 침식에 의해 절리층이 잘려나가고 남은 자리가 바로 이 장군석입니다. 그래서 이런 지형을 바다가 잘라갔다고 씨스테이크 라고 부릅니다. 장군바위는 할망바위라고도 불리는데 옛날, 고기잡이 나간 할아버지가 풍랑으로 돌아오지 못하자 이를 기다리던 할머니가 망부석이 되어 돌로 굳어졌다는 슬픈 전설이 서려 있습니다.

외돌개 가장 가까이에 붙어 있는 봉우리는 삼매봉입니다. 지구에서 관측되는 별 중 해와 달을 제외하고 가장 밝다는 카노푸스 즉 노인성이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이 봉우리에서만 보인다는 군요.

외돌개에서 돔베낭골로 이어지는 길을 돔베낭길이라고도 하는데요. 아마도 올레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돔베는 도마의 제주사투리로 이 나무로 도마를 만들었다고 해서 돔베낭이라 부릅니다. 돔베고기라고 들어 봤어요? 돼지고기를 도마위에서 숭숭썰어 도마째로 올린걸 돔베고기라고하죠

걷다가 걷다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서귀포항 앞의 문섬도 보이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조랑말도 만나게 됩니다. 눈을 깜빡이는것이 아까울 정도의 해안절경이 펼쳐지네요.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섬. 조면안산암질로 이루어진 흰빛깔의 바위섬으로 정상부엔 삼림이 울창하다.
▲ 돔베낭길 해안가에서 본 숲섬(왼쪽)과 문섬.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섬. 조면안산암질로 이루어진 흰빛깔의 바위섬으로 정상부엔 삼림이 울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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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올레길에서는 바닷가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바닷가에는 용암이 굳어져 온갖 형태의 바위가 있습니다. 해안가 바위틈 여기저기에서는 시원한 용천수가 흘러나옵니다. 마셔도 되는 물입니다. 제주의 대지는 푸석푸석한 화산재 흙이라 물을 머금고 있지 못합니다. 흡사 마른 스펀지처럼 지하로 스며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제주는 강이 지하에 있다고도 하고 한라산을 거대한 지하수 저장탱크라고도 합니다. 제주에 내린 비는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에서 경사를 따라 흐르다 해안가에서  솟아납니다. 이런 물을 용천수라고 하지요.

한방울의 빗방울이 떨어져 용천수로 솟아나기까지 평균 20년정도가 소요된답니다. 즉 제주의 용천수는 화산암반 속에서 20년동안 여과된 물입니다. 서계적인 생수인 에비앙생수가 유독 한국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바로 제주지하수를 상품화한 '삼다수' 때문이랍니다.

마을을 거쳐 돌담길과 귤밭을 지나면 호근천에 다다릅니다. 호근천은 제주에선 보기 드물게 수량이 많고 민물고기가 서식하는 하천입니다. 징검다리를 건널 때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고향생각? 어릴적 추억? 네 누구라도 향수를 떠 올리죠. 얼룩 배기 황소도 생각나시나요?

징검다리를 건널때는 무슨 생각이 날까요?
▲ 호근천 징검다리 징검다리를 건널때는 무슨 생각이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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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베낭길에서 속골을 거쳐 공물로 가는 길은 원래 없었는데 흑염소가 다니던 길을 올레길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발길이 덜 닿아 옛길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올레길을 개척한 사람들은 '안티공구리' 즉 '콘크리트반대'를 외쳤답니다. 야자나무숲에선 이국적인 풍치가 느껴지지만 아직도 이런 흙길이 남아 있다는 것이 변하지 않은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쑥스럽고 반갑습니다.

옛길의 정취가 살아있다.
▲ 요즘 보기드문 흙길 옛길의 정취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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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길을 오래 걷다보면 발바닥은 불기라도 닿는듯 후끈거리고 관절은 덜거덕 소리가 날듯 뻑뻑해 지지만 흙길을 걸으면 일순 발바닥이 시원해지고 관절사이에 쿠션을 넣은듯 걸음이 폭신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 못미쳐 법환동 포구에 도착합니다. 서울에서 대전은 자동차로 두시간이나 걸리지만 외돌개에서 법환동까진 걸어서 두시간도 안 걸립니다. 같은 두시간도 걸으면 훨씬 짧게 느껴지는군요.

법환포구는 용천수가 풍부한 곳입니다. 용천수 마다 고유한 이름이 있는데 이곳 용천수는 막숙물이라고 합니다. 최영 장군이 범섬의 몽골세력을 소탕할 때 이곳에서 막을 치고 숙영했다고 해서 막숙물이 되었습니다. 세탁기는 감질난다고 이동네 아낙들은 아직도 막숙물에서 빨래를 합니다.

최영장군의 전설이 전해지는 이 용천수는 마을아낙의 빨래터로, 여름엔 어린이들의 물놀이터로 쓰이고 있다.
▲ 막숙물 최영장군의 전설이 전해지는 이 용천수는 마을아낙의 빨래터로, 여름엔 어린이들의 물놀이터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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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수의 평균온도는 15도 내외로 여름에는 시원하게, 한겨울에는 미지근하게 느껴집니다. 물의 온도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느낌이 변하는 것이지요. 이 정도 온도는 냉온정수기의 냉수온도와 비슷한 것입니다. 더운날 마시면 이가 시릴 정도고 한여름에 발을 담그면 뼈속가지 시원해 집니다. 이런 물들을 상수도의 원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제주도의 수도물 품질은 전국에서 아마도 세계에서도 으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주도의 정수기 보급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습니다.

포구 서편에는 밀물을 따라온 고기를 가두어 썰물에 잡는 원시적인 어로시설인 원담을 볼수 있습니다. 아니 원시적이라고 하면 지혜로웠던 옛 사람들을 욕보이는 말이지요? 오늘날 공장형 어업보다 훨씬 세련된 친환경적인 어로작업이라고 해야 겠습니다.

밀물을 따라온 고기를 가두어 잡는 원담
▲ 원담 밀물을 따라온 고기를 가두어 잡는 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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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생산 과잉섭취로 자연훼손과 신체비만이 넘쳐나는 요즘, 자연이 주는 만큼 외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던 옛사람의 여유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옛날만큼 잡히지를 않는다는군요. 보재기(어부)든 좀녀(해녀)든 바닷속이 예전같지 않다고 하네요.

계속 바다만 보셨다면 고개를 돌려 바다 반대편을 보세요. 웅장하되 위압적이지 않고 여성적이되 유약해 보이지 않는 어머니같은 한라산이 보입니다. 아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2002년의 추억, 월드컵 경기장도 보입니다.

왼쪽아래 보이는 흰 지붕이 월드컵 경기장이다.
▲ 한라산 왼쪽아래 보이는 흰 지붕이 월드컵 경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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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걸음을 멈추고 문명의 이기로 되돌아 가셔도 되지만 한창 탄력 받아 걸음을 멈추기가 아쉬우면 더 가셔도 좋습니다. 이곳에서 풍림리조트까진 다소 난코스입니다. 특히 밀물 썰물에 따라 길이 변하기도 합니다.

서건도는  썰물에는 연륙이 되고 밀물에는 섬이 되는 흡사 홍해를 가르는 모세의 기적이 매일 두 번씩이나 일어나는 곳입니다. 서건도라고도 하고 썩은 섬이라고도 합니다.

날물(썰물)에는 연륙이 되고 들물(밀물)에는 섬이된다.
▲ 서건도 날물(썰물)에는 연륙이 되고 들물(밀물)에는 섬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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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이나 갈림길에는 파란색 화살표나 리본이 갈 길을 일러줍니다. 밭둑길을 걷다가 올레길을 알려주는 표식을 만날 때는 개척자의 수고로움에 고마운 마음을 갖고 걸으시면 됩니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마음에 있었기에 내가 가는 이 길이 있는 것이지요.

법환에서 4~50분을 걸으면 은어의 고향으로 유명한 강정천 하구가 나타납니다. 나무다리를 건너는 짧은 희열이 그간의 노고를 잊게 해 줍니다.

연중 맑은 물이 흐른다. 제주의 하천은 주로 건천이지만 하류에는 제법 수량이 많은 하천들이 있다.
▲ 강정천 통나무다리 연중 맑은 물이 흐른다. 제주의 하천은 주로 건천이지만 하류에는 제법 수량이 많은 하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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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힘이 남으셨다면, 아직도 머릿속에 잡념이 있다면 더 걸으세요. 지금까지의 노정은 올레길의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인생을 아무리 허비해도 항상 절반이상 남아 있다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윤영국 기자는 제주관광대 겸임교수입니다.



태그:#제주도, #올레, #걷기여행, #제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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