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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너무 재밌다"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이명숙 대표의 말이다. 표정을 보면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닌 것 같이 보였지만 '정말 일이 즐거울까'하는 물음을 마음속으로만 가지고 정작 혀를 굴려보지는 못했다.

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일이 생기는 것이 절실하고, 일만 생기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일이라는 게 하다보면 늘기도 하고 손에 익지만 가끔은 싫증도 나고 귀찮아 지기도 한다. 솔직히 생계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면 일보다야 노는 게 더 재미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일이 재밌다고 하니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그렇게 재밌단 말인가. 그 의문을 풀어내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명숙 대표는 여자였다. 살림 하나 하나 느는 것이 주부들의 재미라면 이명숙 대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느는 것이 살림이 아니라 기계고, 직원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정명하이텍은 2001년 3월 '정명다이케스팅'으로 창립했다. 이명숙 대표는 그 전까지 테니스에 빠져 살던 가정주부였다. 남편이 공직에 있다 보니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고 아이들은 부모 속을 썩이지 않고 잘 자라주었다. 어쩌면 계속 테니스를 치며 편안한 주부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지만 이 대표는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그녀는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주변을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은행원이었던 경험을 살려 정책자금이나 대출에 조금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생산기술연구원이 가족이었다. 게다가 테니스를 치며 안면을 익힌 많은 분들에게 영업도 가능했다.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사업을 정말 많이 키웠을 것이다'고 말한 이명숙 대표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2005년 3월에는 '정명하이텍'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자기 공장을 매입했으며 신기술개발 우수기업 금상을 수상하게 된다. 2008년에는 부품소재전문기업 확인서를 획득했고, 기술혁신중소기업'INNOBIZ'로 선정되었다. 2009년에는 ISO 9001을 획득하고 품질경영 시스템 인증도 받았으며 모범여성기업인상, 중소기업청장상, 한국주조공학회 주조공학상을 수상했다. 올 해는 자본금 5억6천만 원, 자산 15억 연매출 21억 규모의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다이캐스팅은 알루미늄을 가공하는 사업이다. 틀에 따라 수만 종을 만들 수도 있고 한 가지를 수도 없이 찍어낼 수 도 있다. 주요 거래 기업은 (주)대우 일렉트로닉스로 냉장고와 세탁기에어컨 전자렌지 등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고 있고 조명장치나 LED등도 만들고 있었다.

일이 재미있을 만 했다. 매년 기계를 하나씩 들여올 때 마다 마음이 뿌듯했고, 기술을 개발해서 상을 받을 때 마다 회사가 자랑스러웠다. 어려울 때 똘똘 뭉쳐준 직원들이 고맙고 믿음직스러웠다.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겠는가.

하지만 이명숙 대표에게도 위기는 닥쳐왔다. 그것도 회사 내부문제가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외부의 강력한 힘이었다. 기업에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위기는 일감이 들어오지 않는 것일 것이다. 작년 미국에서 출발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 때 정명하이텍도 가장 큰 위기를 맞이했다. 단 석 달 만에 매출은 절반 이하로 줄었고 일감은 들어오지 않았다.

공단의 70%가 문을 닫았고 너무나 일찍 찾아온 겨울에 옷깃만 여미고 있어야만 했다. 날마다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들이 사무실 문을 기웃거렸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저히 도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당장 내 직원들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매년 매출을 공개하고 회사를 투명하게 만들어 직원들의 신뢰를 얻어 모두들 회사를 자기 회사라 믿고 있었다. 고통분담을 요구했더니 20일씩 돌아가면서 일을 하자고 했다. 급여가 깎일 텐데도 직원들은 좋아했다. 단 한명의 직원도 내보내지 않고 무사히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모두 직원들의 덕분이었다.

이명숙 대표는 그런 직원들이 너무나 고맙다. 그래서 직원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삶이 즐겁고 일이 재미있다.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 할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것이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정명하이텍의 독자브랜드 주방용품 '라이브 쿡'
▲ 라이브쿡 정명하이텍의 독자브랜드 주방용품 '라이브 쿡'
ⓒ 차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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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특허를 하나 신청해 놓았다.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주요부속품이다. 전에는 중국에서 판재로 수입해 와서 썼는데, 그것보다 훨씬 좋고 값싼 제품을 개발했다. 그리고 아마 광주전남 최초로 독자브랜드를 가지고 주방용품을 만들 예정이다. 많은 고민 끝에 주부들이 쓰기 딱 좋은, 외국의 유명 브랜드와 겨루어도 손색이 없는 주방용품을 개발해냈다.

이미 기계도 계약했고, 금형 발주까지 끝냈다. OEM방식으로 유럽으로도 수출할 예정이고 1달에 5만개 정도씩 쓰겠다는 외국 업체까지 나왔다. '라이브쿡'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도 판매할 예정이다. 직원들이 비전을 가질 수 있는 회사로 성장하겠다는 마음이 결실을 맺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 이명숙 대표는 직원들을 '우리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장성한 아들이 두 명인데 젊은 직원들도 이 대표에게는 자기 아들과 같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기술을 익히면 꼭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

"많은 기업인들이 회사 키울 생각만 하지 직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인색한 편이다. 젊은이들이 제조업을 기피하는 것은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실질적으로 직원들에게 기회를 주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당장 회사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사장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직원들에게 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아무런 자본금도 들지 않는다. 기계도 내주고 공장도 내준다. 영업이 필요하면 도와주고 손해를 봐도 메워주겠다. 사장으로서 계획하고 일을 해봐라. 나중에 정 안되겠으면 다시 회사로 복귀하고 자신감이 생기면 독립해도 좋다"

처음에는 망설이고 두려워했단다. 내가 사장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들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좋아한단다. 나도 잘만 하면 사장이 될 수 있다는 꿈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긴 것이다.

이명숙 대표는 여자였다. 그리고 어머니였다. 배 아파서 낳은 두 명의 아들이 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인 25명의 아들딸이 있었다. 그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인데, 얼마나 재미있지 않겠는가.


태그:#정명하이텍, #라이브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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