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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25년을 살면서 그렇게 사고를 많이 친 날은 없었다. 1박 2일 동안 크고 작은 6번의 사고(?)가 터졌으니 기록할 만한 이틀이었다.

때는 5월 14일. 녹음이 푸르르기 시작하는 그 때 나는 친구와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자연을 만끽하고자 선택한 곳은 경기도 양평에 있는 중미산 자연 휴양림. 산 속에 있는 모든 휴양림이 그렇듯 차 없이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길은 복잡했지만, '산속 통나무 집에서 보내는 하룻밤' 낭만에 부풀어 짊어진 배낭이 무거운 줄도 몰랐다. '산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그 정도 수고는 해야지'라며 떠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기차가 출발하는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10여 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가면서 먹을 김밥과 빵 등 이것저것을 샀다. 다 사고 보니 기차 출발 5분 전.

"야, 우리 늦겠다."

친구 손목을 잡고 뛰기 시작한 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열려 있던 플랫폼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곧장 기차까지 뛰었다. 다행히 1~2분의 여유를 두고 표에 적힌 자리에 앉았다. 기차는 이윽고 출발했고, "늦을 뻔했네" "아, 뛰었더니 힘들다"라며 도란도란 수다를 떨던 우리는 짐을 올리고 물로 목을 축였다. 10여 분쯤 달렸을까.

"어, 여기 내 자린데… 아 그냥 앉아요. 빈자리 많은데 난 딴 데 가서 앉지 뭐."

기차가 정차한 한 역에서 웬 아저씨 한 분이 오시더니 표와 우리 얼굴을 번갈아 보곤 다른 자리로 가시는 게 아닌가. 우린 표를 꺼내 다시 좌석번호를 확인한 후 이상하다는 듯 서로 마주보다 '아저씨가 뭔가 착각하셨나 보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나오는 기차 안내 방송.

"이 기차는 청량리역을 출발해 남춘천까지 가는 기차입니다. 다음 정차 역은 OOO입니다."

'남춘천???' 뭔가 이상했다. 기차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접속했던 코레일 홈페이지에는 양평 가려면 강릉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남춘천이라니…. 얼른 고개를 돌려 뒷자리에 앉은 아주머니 두 분께 물었다.

"이 기차 춘천 가는 기찬가요?"
"응, 남춘천 가는 기찬데…"

불길한 마음에 기차 역무원아저씨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마침 우리 칸으로 들어오려던 역무원 아저씨를 붙잡고 다급히 물었다.

"아저씨, 이 기차 양평 가는 거 아닌가요?"
"어… 이거는 안 가는데요." 

엉뚱한 기차에 올라타다

이럴 수가. 14일 12시 청량리역에선 두 대의 기차가 출발했고, 우리는 그 두 대 중 '청량리에서 양평' 가는 기차 대신 '청량리-남춘천' 기차에 오른 것이다. 기차 정차역과 시간이 적힌 종이를 보던 아저씨 왈.

"아, 지금 지나친 역에서만 내려도 지하철 타고 돌아갈 수 있는데… 다음 역이 금곡역인데, 거기서 12시 34분에 청량리 가는 기차가 지나가긴 하는데 안 서고 그냥 지나가요."

남춘천 가는 이 기차를 타곤 양평에 갈 수도 없고, 어디 내려서 무얼 타고 청량리로 돌아가야 할지 머리가 하애졌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를 묻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좌석에 앉아 내내 같이 고민해 주던 역무원 아저씨는 우리에게 '오승 확인증'을 끊어주고는 금곡역에서 내려 1시간 뒤에 있는 기차를 타고 청량리로 돌아가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량리에 도착해 다시 양평 가는 기차를 탈 땐 그 '오승 확인증'을 보여주고 타면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우린 짐을 싸서 금곡역에 내렸다. 금곡역 역무원 아저씨가 몇 분 보였고, 우리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어디론가 연락을 주고 받고 하더니 얼른 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원래 금곡역에선 서지 않고 빠르게 지나가는 기차인데 우리의 사정을 듣고 열차가 속도를 낮춰 잠시 섰다가 출발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처럼 청량리 가는 기차가 우리 앞에 섰고 우리는 역무원 아저씨 두 분께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란 인사를 몇 번이고 꾸벅꾸벅 했다.

기차가 서고, 버스가 되돌아 오고

기차를 잘못 탄 우리는 청량리로 되돌아 와야 했다.
▲ 오승확인증 기차를 잘못 탄 우리는 청량리로 되돌아 와야 했다.
ⓒ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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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양평역에 도착해 양평버스터미널로 향했고 1시간 정도 뒤에 있는 중미산 가는 버스표를 샀다.

"야, 나 한 번도 기차 잘 못 탄 적 없는데 이번에 그러네."
"아, 이번 여행 정말 다이내믹하다."

그래도 '재미있는 추억'인 거라며 서로서로 위안(?)을 하고 있던 우린 오랜 시간을 기다린 뒤 버스 출발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출발 시간이 5분이 지났는데도 버스는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 이상하다. 조금 늦나'라고 생각하며 옆에 계신 아저씨께 물었다.

"아저씨 중미산 가는 버스 아직 도착 안 했나요?"
"어?? 중미산 가는 버스 아까 갔는데."
"네? 저희는 출발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차 잘못 탄 건 '좋은 추억'이라고 웃던 우리도, 기운이 빠져 얼굴이 굳어갔다. 황급히 버스사무실로 들어간 아저씨는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김씨, 어디야? 어, 주유소 사거리라고? 여기 손님 두 명 더 있어. 그럼, 거기서 기다려… 어?? 다시 온다고? 알았어"

거짓말처럼 버스는 되돌아와 우리 앞에 섰고, 우리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며 버스로 달려갔다. 버스에는 어르신 몇 분이 타고 계셨고, "죄송합니다"라고 연신 꾸벅이는 우리를 보고 "버스 시간에 잘 맞춰 타야지" 하시면서도 허허 웃으셨다.

여행에서의 실수는 끝나지 않고 다음날에도 이어져 중미산 가장 짧은 코스인 'A-B-C'로 가려다 중간에 산에서 길을 잃어 3시간 30분이 걸리는 'A-B-C-F-B-A' 코스를 허벅지 통증을 이기고 비를 맞으며 내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에도 어김없이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 돌아오는 길엔 숲 해설사 선생님의 차를 타고 편히 올 수 있었다.

실수투성이었지만 따뜻했던 여행
▲ 중미산 실수투성이었지만 따뜻했던 여행
ⓒ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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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마음을 얻었던 여행

온통 사고투성이었던 여행이 지금 생각해도 좋고 웃음 나는 건, 우리의 실수를 같이 걱정하고 도움의 손을 뻗어준 따뜻한 마음들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때 우리를 도와주신 역무원 아저씨와 버스기사 아저씨, 숲 해설사 선생님 그리고 그 때 기차와 버스에 타고 계셨던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온갖 실수로 몸은 고됐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여행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저, 사고쳤어요>응모글



태그:#사고, #기차, #실수, #중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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