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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서평을 쓰는데 불행히도 '절대 읽지 말아야 할 책'이라는 제목으로 써야 한다니, 서글프다.

나는 이갑용을 잘 모른다. 이 책을 읽고서야 그가 현대중공업 골리앗 농성 주인공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의 얼굴은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의 가족에게 밥을 한 끼 얻어먹은 적도 있다. 이소선(전태일의 어머니)에게 식사를 대접하러 왔는데 마침 옆에 있다가 밥숟가락 하나 더 얹은 꼴이었지만.

나는 이갑용 같은 이를 별론 '땡겨'하지 않는다. 별다른 선입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가 민주노총 위원장을 하였고, 울산 구청장을 했다는 별 시답지 않은 이유 때문이다. 이건 순전히 내 개인 취향 탓이다. 아웃사이더 기질이 철저한 나는 무슨 '짱'을 했다 하면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도 아닌데 같이 악수를 하는 것조차 거북스러워한다. 지난 몇 년간 이소선의 구술 작업을 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내가 거북스러워하는 인물들을 만난다. 그런 위인들을 만날 때 될 수 있으면 내 이름 석 자 밝히는 것도 피하곤 했다. 이갑용도 그런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갑용의『길은 복잡하지 않다』
 이갑용의『길은 복잡하지 않다』
ⓒ 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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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굳이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까닭이 있다. 이갑용의 <길은 복잡하지 않다> 서평 제목을 '절대 읽지 말아야 할 책'으로 한 까닭에 개인적 원한이 없다는 변명을 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골리앗 전사라고 불리는 이갑용이 말하는 한국 노동운동 이야기다. 그가 198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하여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노동조합을 만나고, 이후 전노협과 민주노총 시절을 거치면서 온 몸으로 겪은 자기 이야기다. 이갑용 개인 체험이지만 결코 개인 체험으로만 이 책을 읽을 수는 없다. 그가 서 있었던 자리는 우연찮게 한국 민주노동운동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 시작은 이갑용이라는 한 노동자 이야기로 시작한다.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머리를 검사해서 목과 귀를 조금이라도 덮으면 가차 없이 그 자리에서 밀어버"리던 시절, "정해진 작업복에 안전화로 군인을 만들"던 시절, 정말 노예처럼 일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현실에서 시작된다.

이갑용은 노동과 노동자를 이야기하지만 그간 다른 책과 다르게 말한다. '착한 노동자'와 '나쁜 기업주'를 이야기하며 노동자는 '선'이라고 결론짓지 않는다. 미련스럽게 보일 정도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뱃놈'으로 시작한 노동자 이갑용이어서인지 앞뒤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쏟아낸다. 내 옆 동료보다 상여금을 좀 더 받기 위하여, 남보다 이삼십원 일당을 더 올려 받기 위해 '굽실거리'다 못해 비열하기까지 한 노동자의 인간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왜 그랬을까? '착한 노동자'만을 이야기해서는 이갑용이 바라는 "노동자 세상"이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갑용은 '계급'을 말한다. 노동계급을.

그가 만난 숱한 노동자들 이야기를 읽다보면 눈물을 흠씬 뽑아낸다. 여느 소설에서도 읽을 수 없는 살아있는 감동 드라마가 펼쳐진다. 섬세한 묘사나 화려한 문체가 없이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의 글은 가식 없이 정직하다. '노동계급'의 삶처럼. 이갑용이 말하려는 노동계급은 숱한 변신을 하는 '운동가'가 아니다.

나이도 많은데 묵묵히 끝까지 골리앗을 지킨 도장부의 강석용 형님은 "나는 노동운동도 잘 모르고 그저 미안한 마음에 골리앗에 올라왔다. 여기서도 나이 들었다고 대접해주고 같이 싸울 수 있게 해줘서 너무나 고맙다. 다른 건 못하겠지만 내려가서도 여러분 기억하면서 살겠다"라고 울림이 있는 말을 했다. 그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배신하지 않고 묵묵하게. - 본문 가운데서

그의 글은 노동자에 대한 동정의 눈물, 감성의 눈물을 자아내려는 글쟁이들의 글과는 차원이 다르다. 먹물쟁이들의 논리적인 글과도 비교해서는 안 된다. 온 몸으로 써내려 간 노동자 이갑용의 글을 읽다보면 "뼈가 아프"기 때문이다.

수많은 '그때'들이 후회스러워 나는 내 가슴을 친다. '뼈아프다'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가슴 속에 수많은 '그때'들이 후회로 요동칠 때면 절망과 안타까움 때문에 그야말로 뼈가 아프다. - 프롤로그 가운데서

이갑용은 20년에 걸친 '그때'들을 완벽에 가깝게, 솔직하게, 그리고 절절하게 그린다. '그때'에는 자랑스러운 날들도 있고, 정말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날들도 있다. 자랑스러운 날들 속에 감춰진 부끄러운 이야기도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갑용이 '진짜 노동자', '노동계급'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바보처럼 손가락질 당하고, 욕 얻어먹고 싶어 쓴 이야기다.

되돌리고 싶은 과거에 대해, 인정하기 싫은 현재에 대해, 그리고 돌아봤을 때 후회로 남지 않을 '지금'을 만들기 위해 말하지 못하고 묻어두었던 많은 일들을 쓴다. - 프롤로그 가운데서

이갑용의『길은 복잡하지 않다』표지
 이갑용의『길은 복잡하지 않다』표지
ⓒ 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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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책은 '절대 읽지 말아야 할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갑용이 누구인가? 골리앗의 전사이자 자랑찬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에다 노동자 출신 구청장이 아니었는가. 세상 알만큼 알고, '대화나 타협'도 몸에 익어있어야 할 지천명을 넘긴 이갑용. 왜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팔 이야기를 세상을 향해 한단 말인가. 이갑용은  "'유연한 좌파'나 '부드러운 직선'보다, 그냥 '좌파'와 '직선'인 삶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이갑용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치부를 고스란히 세상에 말한다. 국민파니 중앙파니 '정파'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며 '정파'의 패악을 솔직하게 고발한다. 진보세력이 존경해야 할 숱한 지도자들을 실명까지 들먹이며 부패를 까발린다. 좌도 우도 가리지 않는다. 때론 듣기 싫을 정도로 까칠하고 때론 이렇게 할 필요가 있는가 싶어 욕이 나올 정도다.

허나 어쩌랴! 이 부끄럽고 아픈 흔적이 모두 사실인데. 그리고 '그때'가 아닌 '지금'인데.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사라질 부스럼이 아니라 더욱 심하게 곪아갈 상처인데. '절대 읽지 말아야 할' 이야기지만 꼭 한번은 듣고 반성하고 반드시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안 될 오늘의 이야기다.

글은 허세가 아니다. 글은 상처의 치유이다. 이갑용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몸에 섞고 곪아가는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또한 한국 민주노동운동의 생채기도 치유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읽지 말아야 할 이 책을 읽고 밤새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기도 하고, 중간에 책을 찢고 싶을 정도로 아프기도 했다.

책 구절구절마다 이갑용이 보여 힘들었다. 책에서 반성을 하고, 때론 비판을 하고, 때론 대안이라고 무엇인가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개인 이갑용의 얼굴이 떠올라 괴로웠다. 그리고 책장을 덮은 지 사흘이 지났다. 차츰 <길은 복잡하지 않다>에서 이갑용의 얼굴이 지워졌다. 이갑용이 왜, 오늘, <길은 복잡하지 않다>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지 이해가 되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었기에 이갑용이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였지만, 민주노총 위원장이었기에 이갑용이 할 수밖에 없는 고뇌가 가슴에 다가왔다.

하지만 바란다. 이 책을 많은 이가 읽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 읽더라도 이갑용이 골리앗 전사였고, 현대중공업 위원장이었던 시절까지만 읽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바란다. 많은 이는 아니더라도 꼭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노동운동을 한다고 한다면, 자신이 진보세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진보정치를 한다고 여긴다면, 꼭 이 책을 끝까지 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갑용을 먼저 욕하시라. 그 다음에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시라. 이갑용의 말이 옳든 틀렸든 가슴에 어떤 울림이 있을 것이다. 그 양심의 울림에 귀 기울이고, 그 파장으로 양심껏 일하시라.

이갑용처럼 생각하고, 이갑용처럼 판단하고, 이갑용처럼 활동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노동운동가로서, 내가 진보세력으로서, 떳떳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활동하면 그만이다. 이갑용이 바라는 바도 '자신처럼'은 아닐 것이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하는 길을 찾자는 제안일 뿐이다. '금기'를 먼저 깨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가 아니었던가. '외로운', 그래서 아직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갑용이었기에 그 '금기'를 자살특공대처럼 넘은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외롭고 싶지도 않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다시 시작하고 싶다. - 프롤로그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이갑용이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맺는다. 다만 책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지 않은 게 아쉽다. 아쉽지만 할 수 없다. 부분을 읽고 전체를 진단할까 두려워서다. 제대로, 끝까지 책을 읽지도 않고, 다 아는 것처럼 이러니저러니 하는 '불량 독자'들의 세 치 혀로 또 다른 '말의 논쟁'을 최소한 이 책에서만큼은 없기를 바라는 소박한 바람 때문이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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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세상>에도 함께 기고 합니다



길은 복잡하지 않다 - 골리앗 전사 이갑용의 노동운동 이야기

이갑용 지음, 철수와영희(2009)


태그:#이갑용, #민주노총위원장 , #길은복잡하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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