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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시즌 스노보드 빅에어 월드컵경기' 개막을 앞둔 11일 오전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뒤편 스노보드 점프대에서 눈 다지기 작업이 한창이다.
 '2009~2010시즌 스노보드 빅에어 월드컵경기' 개막을 앞둔 11일 오전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뒤편 스노보드 점프대에서 눈 다지기 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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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보드가 광화문을 타고 내려와 세종대왕 뒤통수를 찌르는 형상이다. 세계적으로 서울시를 홍보하기에 참 좋기도 하겠다."

오늘(11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2009~2010 스노보드 빅에어 월드컵'의 모습에 대한 문화정책 전문가들의 비판은 혹독했다. 광화문 앞에 34m(아파트 13층 높이)의 스노보드 점프대를 설치한 것은 한 마디로 "정신 나간 짓"이고 "국제적 망신"이라는 것이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서 이번 대회를 개최하는 배경을 '서울과 대한민국 위상 강화'로 꼽으며 홍보 효과를 강조했지만, 문화정책 전문가들은 "서울의 역사와 전통이 아닌 문화재 훼손을 홍보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대회를 하루 앞둔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을 찾은 시민들도 "점프대가 보기 안 좋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일부 "전통과 현대 문화의 만남"이라는 긍정적 반응도 있었지만, 대부분 "저렇게 흉물스러운 설치물로 경복궁을 가리는데 무슨 홍보가 되겠냐"고 우려를 나타냈다. 배석상(66)씨는 "백악관 앞이라면 저런 걸 세우겠냐"고 일침을 가했고, 이혜진(29)씨는 "서울을 홍보한다면서 왜 역사문화공간을 가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복궁·북악산은 가려졌는데... "점프대 자체가 볼거리"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 주변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점프대 주변의 경복궁은 국가 지정 사적이며 백악산(북악산)도 지난 7일 문화재청으로부터 명승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번 점프대 설치에 대한 허가를 아예 구하지도 않았다. 대신 3명의 전문가로부터 "점프대가 문화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검토를 받았다. 절차상으로는 합법이지만, 관례에는 어긋나는 일이다.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이전까지 창덕궁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집을 짓거나 탑골공원 근처에 건물을 올릴 때도 문화재위 허가를 받아야 했다"면서 점프대 영향검토를 맡은 전문가를 공개하라고 서울시에 요구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에 대해서도 권한에 따라 점프대 철거명령을 내리라고 주장했다.

문화 전문가들이 스노보드 점프대 설치를 문화재 훼손으로 보는 것은 단지 사적인 경복궁 때문만은 아니다. 광화문광장 자체가 주요 문화유산이라는 것이 문화운동 진영의 오래된 주장이었다. 즉, 서울시는 문화유산 위에서 국제 스포츠 대회를 여는 셈이다.

스노보드 점프대 공사현장 뒤편으로는 청와대 본관의 모습이 보인다.
 스노보드 점프대 공사현장 뒤편으로는 청와대 본관의 모습이 보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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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광화문광장 자리, 즉 세종로 1번지 16차선 도로는 조선시대 주요 관아가 길 양쪽으로 있던 육조거리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건설하면서 너비 58자(尺) 규모로 뚫은 세종로는 나라의 상징적 중심이었고, 1914년에는 거리 기점이 되는 도로원표가 설치되어 거리적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린 광화문은 1968년 박정희 정권 당시 원래 위치보다 약 13m 뒤로 옮겨 다시 설치됐고, 문화운동가들은 광화문광장 조성 당시 육조거리 복원을 요구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는 "육조거리에 스노보드 점프대를 차려놓고 홍보를 한다는 건 정신 나간 짓"이라면서 "외국인들이 겉으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광장의 박제화'를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택 국민대학교 사회체육학과 교수 역시 "적어도 이곳에서 국제 스포츠대회를 여는 것은 궁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내부에서도 "돌풍 영향 있을 수 있다" 보완 요구

광화문광장의 역사적 의미 접어놓는다 해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점프대는 광화문에서 광장을 향하도록 설치되는데, 스노보드의 진행 방향이 절묘하게 세종대왕 동상 뒤쪽으로 떨어진다. 스노보드가 세종대왕 뒷머리에 꽂히는 모양새가 된다. 국제스포츠대회를 열면서 한국 역사상 최고의 군주에게 스스로 결례를 범하는 셈이다.

직접 광장에서 대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높은 점프대 때문에 경복궁과 북한산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서울시 계획대로 전 세계인들이 방송 등을 통해 높은 위치에서 찍은 점프대 뒤 도시 전경을 본다고 해도 "서울 시내엔 점프대 설치할 곳이 하나도 없어서 도심 가운데 저런 것을 세웠냐"고 비웃는다는 것이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스노보드 점프대 자체가 볼거리로 큰 이슈가 된다"면서 "서울시 전경이 노출되도록 방송사들과 협의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지난 9일 보도자료를 통해 "도심의 멋진 풍경이 전세계 100여개국 이상 방영되어 경복궁·광화문·북악산이 어우러진 전경이 자연스럽게 전 세계에 소개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16차선 도로 한복판에 들어선 점프대의 안전성도 논란으로 남는다. 광장에서 점프대 시설 점검 상황을 지켜본 시민들은 하나같이 "선수들이 다칠 것 같다, 관중들도 많은데 점프대가 무너지면 큰 사고 아니냐"고 걱정을 내비쳤다.

심지어 같은 서울시 기관에서도 같은 우려를 표했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는 지난 9일 대회 마케팅담당관에게 공문을 보내 "행사기간 중 순간적 돌풍 등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과도한 변형 및 이에 따른 안정성 등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구조기술사의 검토의견을 통보했다.

이 공문에서 도시기반시설본부는 "현장 확인 결과 하중에 대한 구조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면서 '서포트 하부 잭 베이스 고정, 브랜싱 추가 설치' 등을 요구했다. 또한 "현장책임자(총감독관)에게 12월 4일 현장에서 보강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책임자도 보완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12월 8일 현재까지는 보완이 안된 상태"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 행사 담당자는 "대회 시설물은 세계스키연맹(FIS)로부터 전부 승인을 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행사를 열 수가 없다"면서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는 문제의 공문에 대해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부 기술부서에 자문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나온 의견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 의견도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더 안전해질 수 있다'는 추가적 얘기"라면서 "타당성을 다 검토하고 반영할 사안은 다 반영했다"고 말했다.

역사상 처음 도심의 스노보드... 자랑거리일까

광화문 네거리에서 바라본 광화문 광장.
 광화문 네거리에서 바라본 광화문 광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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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찬반 논란 속에 스노보드 월드컵은 개최 준비를 마쳤다. 11일 오후 6시 개회식을 시작으로 12일과 13일 양일간 세계 톱선수 슈퍼매치와 월드컵 예선 및 결승을 치르게 된다.

대회 하루 전인 10일 광화문광장에는 종일 비가 내렸지만, 11일 오후에 다시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대회 개최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서울시 측은 "최종 결정은 FIS가 한다"면서 "선수들은 날씨나 안전에 대해서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대회는 국가나 도시를 브랜딩하기 위한 스페이스 마케팅과 결합해 런던·모스크바·스톡홀름 등 세계 대도시에서 개최됐다. 애초 대회 취지에서부터 홍보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이같은 대도시들이 도심에서 대회를 개최한 적은 없었다. 서울시는 "도심에서 이러한 큰 규모로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것은 스노보드 경기역사상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이를 자랑거리로 내세웠지만, 비판하는 입장에서 보면 '유례 없는 비상식적 행사'인 셈이다. 이들은 "사상 처음인 게 당연하다, 어떤 나라가 그런 짓을 하겠냐"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일본은 천황궁 앞 공터가 어마어마하게 넓지만 거기 점프대를 설치하진 않았다, 도심에서 대회를 열지 않았던 다른 나라들은 멍청해서 그랬겠냐"고 꼬집었다.


태그:#스노보드?빅에어?월드컵대회, #광화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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