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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1월23일자 김대중 주필의 칼럼.
 <조선일보> 11월23일자 김대중 주필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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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의 실태를 다뤄 국내외에서 14개 상(賞)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상물 '천국의 국경을 넘다'(이하 '천국')는 전세계의 방송망을 타고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정작 우리 국민들은 그것을 우리 지상파에서 볼 수 없었다." -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2009년 11월 23일)

"<조선일보>는 <천국의 국경을 넘다>가 지상파 방송 3사(KBS, MBC, SBS)에 의해 방영이 거부된 것처럼 암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 지상파 방송 3사의 담당자들은 푸티지(촬영 원본 그대로의 자료영상)를 넘기는 조건으로 방영 제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대 <조선일보>로선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유수 방송사들은 영상 소스는 훌륭하지만, 구성과 편집이 아니다 싶을 땐, 푸티지만을 구입하여 자신들이 보충 취재한 것을 함께 편집하여 방영하곤 한다.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BBC 방영 사례가 딱 그 경우다." - 독립PD 이성규

위 두 글은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이하 <천국>)에 대한 상반된 주장이다. 첫 번째 글은 <조선일보>의 '간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김대중 고문의 칼럼이고 두 번째 글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독립PD 이성규씨가 블로그에 올린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천국>은 탈북자 실태를 소재로 <조선일보>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제작자인 <조선>으로선 상당히 애착 가는 작품이고 방송사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싶은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따라서 신문지면을 통해 수시로 홍보를 하는 것은 물론 기존 방송사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슈화 시키고도 싶었을 것이다.

'여의도선수'도 모르는, 14개 상 휩쓴 '다큐멘터리'?

그러나, 이런 <조선>의 바람과는 다르게 몇몇 지방방송사들을 뺀 지상파 방송사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모양이다. 이에 대한 김대중 고문의 주장과 이성규 PD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대한민국의 방송사들인 KBS, MBC, SBS, OBS, YTN 등은 제작팀의 끈질긴 교섭과 노력을 외면하고 끝내 방영을 거부했다. 방영을 거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 당국의 비위를 거스르면 자기들의 대북사업에 지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우파 성향'이라는 <조선일보>가 제작한 것이라는 것이다. " -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이 거대 신문사는 '디지털조선'이라는 걸 통해 몇 년 전부터 영상물 제작 프로덕션을 해오고 있었다. 그들의 콘텐츠는 대체로 지방 방송사에 의해 방영되곤 했는데, 그들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여의도의 비평은 '쓰레기 혹은 숱한 허접 이상은 아니다' 정도다. 이것은 정치적 성향을 떠나 여의도에서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들의 한결 같은 비평이다." - 독립PD 이성규

<천국>이란 다큐멘터리 한 편을 놓고 펼쳐지는 상반된 주장은 마치 천국만큼이나 멀게 느껴진다. <조선> 주장에 따르면 "국내외 14개 권위있는 상을 휩쓸고 세계 각국의 유수한 방송사가 특집 편성으로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 지상파 방송사들은 <조선일보>가 제작했다는 이유로 방영을 거부하고 보이콧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에 직접 참여한 이학준 기자는 지난 11월6일자 '[오늘의 세상] '천국의 국경을 넘다' 국제방송협회 최우수상' 기사에서 <천국>이 국제방송협회가 주는 2009년 최우수 탐사보도 다큐멘터리 수상했다고 알렸다.

기사는 "조선일보 탈북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가 국제방송협회(The Association for International Broadcasting)가 주는 2009년 최우수 탐사보도 다큐멘터리 수상작으로 선정됐다"며 "탈북자의 인권실태를 탐사보도한 <천국의 국경을 넘다>는 북한 여성의 인신매매, 탈북자들의 목숨을 건 1만㎞ 중국 탈출 등을 최초로 알렸다"고 썼다. 또 "지난해 3월 조선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영국 BBC, 미국 PBS, 일본 TBS, 독일 ARD 등 17개 방송사에서 방영, 호평을 받고 있으며  카메라웁스크라, 로리펙상, 아시아인권언론상, 한국기자상, 한국언론상, 삼성언론상 등 국내외 14개 언론상을 수상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의 이런 주장에 대해 이성규 PD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렇게 반박했다.

"'국제방송협회'에서 한국의 다큐멘터리가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여의도에선 그 내용조차 모른다. 다들 '그런 일이 있었어?'한다. 왜냐하면 동네 방송협회도 아닌 어찌됐든 국제적 명성을 가지고 있는 방송 관련 단체가 주는 '상'이다. 그런 엄청난 곳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여의도 선수들이 모르다니. 그리고 그런 경사를 다른 곳에선 보도조차 하지 않다니. 조선일보가 아무리 지탄을 받는 신문기업이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그래서 '국제방송협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필자가 아무리 영어가 짧다고 하지만, 스트레이트성 기사 정도는 검색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조선일보 기사에 따른 내용을 '국제방송협회'에서 찾을 수 없었다. 금년 시상식에서 한국의 어느 방송사 어느 제작사도 수상을 한 흔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근데 찾았다. 그런데 정작 상을 받은 방송사는 영국의 'BBC'였다."

조선일보가 수상했다는 '국제방송협회 다큐멘터리상'은, 알고보니 BBC가 받은 것이었다.
 조선일보가 수상했다는 '국제방송협회 다큐멘터리상'은, 알고보니 BBC가 받은 것이었다.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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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방송 매커니즘과 기본철학 먼저 배워야

<조선>은 지금 종합편성채널에 목숨을 걸고 있다. 인쇄매체의 한계를 뚫을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가 종편채널인데 미디어법이 이를 뒷받침 해주었으니 더 이상의 호기가 있을 수 없다.

이를 위해 이미 몇 년 전부터 <디지털조선일보>를 통해 방송진출에 대비해왔고 신문의 방송겸영까지 줄기차게 주장해온 결과, 종편 진출 기회를 얻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방송사 진출의 빌미를 제공해줄 수 있는 큰 건 하나를 찾고 있었는데, 그걸 다큐멘터리 <천국>으로 판단한 것 같다.

그같은 추정이 가능한 것은 <조선일보> 칼럼에 나와 있는 한 대목 때문이다.

"<천국>의 방영에 얽힌 부끄러운 얘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북한문제와 관련한 우리 방송계의 현황을 알리고 미디어법을 개정해서라도 방송 기득권자 이외에 신문사 등 다른 매체도 방송을 할 수 있어야 하는 필요성과 타당성을 새삼 일깨우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오늘날 국민에게 균형된 감각과 판단능력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목적은 분명해졌다. "방송사는 기득권이고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으므로 국민을 위해서는 신문도 방송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콘텐츠 제작능력을 갖춘 조선일보가 방송사를 소유함에 적격이며 그건 이미 <천국>같은 대작(?)의 다큐멘터리에서 확인되었다"라는 것이다.

이런 <조선>의 주장을 접하며, 방송을 현재 지상파 방송사들이 영원히 독점해야 한다고 딴지를 걸 생각은 없으나 적어도 <조선일보> 같은 신문사가 방송사를 낚아 채기는 아직 전략적인 미스가 상당히 뒤따른다고 생각된다.

방송에서의 막장드라마, 다큐멘터리에서의 영상조작, 게스트들의 말장난과 말실수 등을 가차없이 난도질 하는 신문의 재미를 방송에서도 계속 보기 위해서는 방송 매커니즘과 방송의 기본철학을 새로이 배워야 한다. 독점적인 지위로 신문사를 끌어간다고 해서 방송사를 잘 운영하는 건 절대 아니다. 더구나 그토록 '윤리'와 '진실'을 신조로 삼는 <조선일보>가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 한편으로 방송사 소유의 명분으로 삼거나 수상경력을 과대하게 포장해서 국민을 오도하는 식으로 매체진출의 야욕을 보인다면 막장드라마를 만든 방송사 이상의 욕을 듣게 될 것이다.

"방송허가를 빌미로 정치게임을 하지 말라"고 외친 <조선일보>는 정말로 방송진출을 기화로 말장난을 하지 말아야 한다. 엄청난 지면 공세와 홍보 그리고 방송사에 대한 집요한 설득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지상파를 공략 못했다면 그건 분명한 제작능력의 결핍이지 결코 <조선일보>가 만들어서 거부를 한 게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스태프 수천명이 만든 드라마도 내쳐지는 마당에

조선일보가 제작한 <천국의 국경을 넘다>.
 조선일보가 제작한 <천국의 국경을 넘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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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상파 방송사들은 서로 친밀한 연대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상품성이 있고 가치가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 드는 게 방송사의 생리고 보면 <천국>같은 대작이자 훌륭하다는 다큐멘터리를 방송사가 거부하고 있는 것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조선일보>는 해야 한다.

그래서 방송에 대한 매커니즘을 다시 이야기 하고 싶다. 방송사 기자 수백명이 제작해온 뉴스거리는 고작 30개 안팎의 단신으로 방영된다. 스태프 수천 명이 제작한 드라마도 시청률에 의해 가차없이 내동댕이쳐진다. 거기에 독립PD들이 1인 3역과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 몇 년에 걸쳐 만들어온 프로그램도 방송사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내던져진다.

그런데 고작 몇 년을 방송준비하다가 다큐멘터리 한 편 잘 만들었다고 방송할 준비를 다 했다거나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을 외면한 방송사들이 <조선일보>가 제작했기 때문에 거부했다고 주장하는 칼럼을 보면 신문은 몰라도 방송프로그램 만들기는 아직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일보>가 다큐멘터리 <천국>의 홍보보다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은, 일개 독립 PD가 이야기하는 진실이 아닌,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작품의 수상배경을 밝히는 일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홍련 기자는 현재 독립PD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다큐멘터리, #독립PD,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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