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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한 평생이 아닌 두 평생, 세 평생이 있다면 어찌 하겠는가. 어떤 이는 '한 평생도 벅찬데 무얼 두 평생, 세 평생이나 살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두 평생, 세 평생이 아니라 백 평생, 만 평생이 있어 꼭 한 평생만큼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여기 한 평생이 아닌 두 평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그는 한 평생은 학생들만 가르치며 살아왔다. 그 한 평생이 끝나자 이제 두 평생을 살면서 한 평생 때 살았던 이 세상을 부드럽게 혹은 따끔한 말침으로 어루만지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두 평생에 접어들어서야 학생들 삶이 아닌 자신을 바라보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누구일까. 그가 김광호다. 김광호는 지금 두 평생을 살고 있다. 그는 요즈음 한 평생 살았던 나날들을 궤뚫어보고 있다. 그가 한 평생을 살면서 길러낸 제자만 하더라도 숱하다. 전 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해 장관, 장성, 관료, 회장, 사장, 교수, 회사원, 장사꾼, 벼락부자, 외교관, 발명가, 연예인, 가수, 음악가, 장애인, 서예가, 화가, 언론인 등 없는 직업이 없다. 

 

그래서일까. 그는 한 평생 때 길러낸 그 수많은 제자들을 되돌아보며 두 평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두 평생을 사는 기념으로 한 평생을 그리워하는 산문집을 펴냈다. 그 산문집 속에는 그가 그리워하는 제자들이 살아 꿈틀거리고, 그가 바라는 세상살이가 새록새록 숨쉬고 있다. 마치 칼바람을 맞고 서있는 헐벗은 나무가 긴 겨울을 이겨내고 기어이 봄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렇게.      

 

그 산문집에 한 세상이 엎드려 있다

 

"나름대로 남행북주하며 지나온 기억들을 담아 보려고 생각나는 대로 써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는지 걱정이 앞섭니다. / 폭염이 찔지, 장대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망설였지만, 단 한 번뿐인 성찬이기에 눈을 감고 누워서 감히 침을 뱉습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비켜서 주는 것임을 압니다."-'책머리에' 몇 토막

 

한평생 교사란 외길을 달려온 수필가 김광호(75)가 산문집 <티끌로 이루어진 인연>(바보새)을 냈다. 이 책은 38년 동안 고집스럽게도 교직에만 몸 담아온 어느 교사가 풀어낸 추억담이자 회억이다. 까닭에 이 책 속에는 한 세상이 들어 있다. 그 세상에는 별의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갑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 모두는 한때 한 스승 밑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마치 이 세상살이를 정으로 예리하게 쪼개 다시 빚어놓은 듯한 이 책은 모두 5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나의 인생 나의 가족', 제2부 '흐르는 강물처럼, 움직이는 마음', 제3부 '제자들과 나눈 희로애락, 38년간의 추억', 제4부 '살아 있음, 그 따뜻한 사랑의 메시지', 제5부 '진연의 끝, 진한 그리움'에 은빛 머리카락처럼 흩날리고 있는 80여 편 남짓한 산문이 그것.

 

제1부는 역사란 소용돌이 속에 힘든 나날을 지나온 어린 시절 풍경과 가족 사랑을, 제2부는 일상생활에서 겪는 자잘한 에피소드를, 제3부는 교사로 지내면서 제자들과 맺은 끈끈한 인연을 담았다. 제4부는 말로 다하지 못한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은 편지글을, 제5부는 퇴임한 뒤 해외에 있는 제자들과 만나 나눈 살가운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놓고 있다. 기쁨 속에 회한이 뒤섞인 목소리로.

 

수필가 김광호는 "그저 앞만 바라보며 숨차게 달려온 우리네 삶이, 크고 작은 인연의 연속이었다"고 나즉하게 고백한다. 그는 "어차피 인생은 한바탕 꿈"이라며, 그 꿈에는 "좋은 꿈, 나쁜 꿈, 괴로운 꿈, 고단한 꿈, 즐거운 꿈, 배고픔 꿈, 기름진 꿈, 평화로운 꿈, 행복한 꿈" 등이 서로 맞물려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 모든 꿈은 눈을 뜨면 그저 허망할 뿐이다.

 

"또 붙었느냐! 에미 힘이나 좀 들어주지"

 

"내가 여섯 살 때인 1950년 6.25를 맞았다. 9.28 서울 수복 직후 천식으로 아주 힘들어 하셨던 아버님을 대신해 국민방위군 빨치산 감시초소에서 짧은 따발총(긴 것도 있었다)을 메고 보초를 섰다. 1951년 1월 4일 정부로부터 다시 후퇴(1.4 후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잠을 자고 아침에 주먹밥을 먹고 난 뒤 나는 103사단 수색중대본부에 소속되었다"-18쪽, '아버님 대신 보초를 서다가' 몇 토막

 

글쓴이 삶도 참 기구하다. 그는 장충국민학교 1학년 때 아버지 대신 보초를 서다가 망우리, 여주, 충주, 문경새재, 경산, 경주, 감포를 거쳐 울산향교 옆에 있는 부대에 소속된다. 일곱 살이란 어린 나이에 다 닳아 구멍이 난 미제 농구화를 신고 눈 쌓인 산에서 매일 죽창을 들고 훈련을 받았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게다가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구걸을 한다.

 

그는 그 뒤 귀향조치를 받고 서울로 돌아와 중학교 5학년에 들어간다. 같은 또래 벗들이 중학교 5학년(지금의 고2)이었기 때문이다. 그 학교에서 그는 열심히 공부를 한 끝에 Y대 상과에 합격한다. 웬만한 학생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지만 그는 머리가 아주 좋았던가 보다. 그렇게 대학에 합격을 하자 어머니는 그에게 축하한다는 말 대신 "또 붙었느냐! 에미 힘이나 좀 들어주지"란 말을 남긴다.

 

그때 그가 사는 집안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실직한 데다 폐결핵을 앓고 있었고, 누님 또한 매형 대신 2남2녀나 되는 자녀들을 먹이고 공부시키느라 과일, 채소장사로 피눈물 나게 고생하고 있었다. 여기에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에 숙부 아들까지 맡아 기르며, 외할머니와 시어른을 모시고 살아야 했다. 그랬으니, 그가 대학을 다니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으랴.        

    

그는 이제서야 말한다. "외아들이었던 나는 참으로 이기적이었다...이제 와서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찢어진다"라고. 그리고 "어머님, 죄송합니다"란 말을 조용히 내뱉는다. 그랬다. 어머니가 오죽 힘에 겨웠으면 "또 붙었느냐"라는 말을 내뱉었겠는가. 요즈음 어머니 같았으면 대학 합격을 위해 이른 새벽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고, 시험장 교문에 찹쌀떡과 엿까지 붙이지 않았겠는가.

 

 

손발 묶어놓고 혀끝 놀리지 마라

 

"틈틈이 TV에 비춰지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무엇이든 귀로 먹는다는 '환'이라는 동물같이 냉가슴을 앓으며 먼 산이나 바라보며 지내고 있다네. 정무수석이 되면서 야당 당사를 방문하는 모습을 보고, 흑이냐, 백이냐,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분명히 갈라놓고서 큰일을 하지 않겠다는 또 하나의 눈, 혜안을 얻었다는 느낌을 받았네"-198쪽, 'M군에게' 몇 토막

 

여기서 말하는 M군에 대해서는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누구인지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M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의원이 환자의 병증을 찾아 약 처방을 하는데, 환자의 맥을 짚지도 못한 채 처방전을 써 날리는 우를 범하지 않으리라 믿네"라며, 정치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제자에게 '믿음'이란 큰 선물을 안긴다.

 

그는 이 편지에서 정치인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를 포기하고, 죽 끓듯이 변덕을 부리거나 손발은 묶어놓고 혀만 나부랑대지 말라고 일침을 놓는다. 다리를 놓을 때 조약돌 하나 들지 않은 놈이 다리를 건너면서 잘못 놓았다고 투덜거린다며. 그렇다. 요즈음 정치인은 변덕이 죽 끓듯이 하는 듯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하지 않으면서도 남이 하는 일에는 늘 안티를 건다.

 

그는 "로마에 닿으면 그것이 길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시작이 곧 끝이요, 끝이 곧 시작이라는 그 말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 최초로 지은 경전이라는 <천부경> 첫머리와 마지막에 나온다. "시작이 있으나 시작이 없고(일시무시일, 一始無始一), 마침이 있으나 마침이 없다(일종무종일, 一終無終一)". 

 

죽음을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이하라

 

"이 글을 쓰는 동안 많은 상념이 오갔다. 때로는 눈을 감고 웃으며 편안하게, 때로는 심각하게 흥분하기도 하고, 드물게는 괘씸죄를 선고했다가 '그래, 용서해야지……' 하며 부처님 같은 자비심을 베풀기도 하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한다. 내 지나온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만큼 즐겁고 보람된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을까"-231쪽, '북 치고 장구 치고' 몇 토막

 

그는 "나만큼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마음이 들면 식탁으로 걸어 나올 때도 흐뭇한 표정으로 여유 있는 걸음걸이가 된다"고 말한다. 왜? 이 책을 받아 볼 놈(?)들이 짓는 표정과 수군거림, 누구 얘기인지 궁금해 하는 모습을 그려 보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을 꾸리다 보니 이놈, 저놈, 그놈들의 얘기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엄살을 떤다.

 

하지만 그는 요즈음 현실로부터 점점 밀려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올해 75살인데다 그동안 이 세상을 먼저 떠난 제자들만 해도 132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모든 것들이 찰나였다"고. 하지만 그는 지금도 같이 늙어가다 먼저 세상을 떠나려는 제자를 만나면 "죽음을 겁내지 마라.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이하라 나도 곧 뒤따라 갈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수필가 김광호가 펴낸 <티끌로 이루어진 인연>은 이 세상을 살면서 티끌처럼 가벼운 만남 하나도 티끌처럼 가벼이 여기지 말고 소중한 인연으로 삼아야 이 세상이 더불어 살아가는 밝은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가르친다. 이 책은 인생 뒤안길에 서서 지난 한 평생을 되돌아보며, 때로는 웃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에 잠기기도 하는, 한 사람이 살아온 자화상이자 새로운 세상을 향해 던지는 희망 찬 메시지다.   

 

김광호 (토마스)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평생을 경복고등학교와 선린상업고등학교, 대전상업고등학교, 북일고등학교에서 '손오공 선생님'으로 불리며, 교사로 일하다 1999년 8월 정년퇴직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티끌로 이루어진 인연

김광호 지음, 바보새(2009)


태그:#김광호, #바보새, #티끌로 이루어진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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