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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글에서  나는 "정치 권력이든, 자본 권력이든, 언론 권력이든, 또는 사회적 집단이 집단 이기주의를 위해 자기의 권력 확대를 꾀하건, 우리는 그 어떤 권력에 대해서, 특히 오만한 권력에 대해서 의연하고 당당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나의 2008년 신년사를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어떻게 왜곡했는지 자세하게 밝힌 바 있다.

이 신문들은 마치 내가 사장 취임이후 한 번도 권력비판 이야기를 하지 않고 가만있다가 정권이 바뀌자 느닷없이 '권력 비판'의 외마디 소리를 지른 것처럼 거짓 왜곡 보도를 했다.

이런 보도가 나간 뒤 나의 발언 진의에 대해 엉뚱하게도 두 가지 정반대의 해석이 나왔다. 하나는 이명박 정권 출범을 앞두고 내가 '돌연' 날을 세우면서 발언 수위를 높였다고 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의 해석, 즉 권력이 바뀌자 내가 살아남기 위해 현 노무현 권력을 짓밟고 새로운 이명박 권력에 아부하려는 카메레온 같은 추악한 이중성을 드러냈다는 해석이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이명박 정권에 아부?

후자의 해석을 아주 구체적으로 똑 부러지게 한 게 다름 아닌 한나라당이었다. 강성만 한나라당 부대변인이 2008년 1월 4일자 성명서를 통해 밝힌 내용은 참으로 희극적이기까지 했다.

"노무현 정권 내내 코드인사로 분류되었던 정 사장이 정권이 바뀌자 도저히 정 사장이 한 이야기라고 생각도 못할 이야기를 하고 있어 혼란스럽다. 그런다고 해서 그 간의 행적이 탈색되고 새 정권으로 옷을 바뀌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새 정부는 정 사장이 판단했을 성 싶은 것처럼 그렇게 소신과 원칙이 없는 호락호락한 정부가 아니다. 차라리 지조나 의리라도 지키는 사람이었으면 낫겠다. 자신이 그토록 교언영색했던 권력이 이제 소멸하려 하자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고, 잽싸게 새 정권에 아첨 아부하며 카멜레온처럼 살아남아 보려는 태도는 정말 초라하고 비참해 보인다."

"새 정권에 아첨 아부하여 카메레온처럼 살아남아 보려는" 의도에서 내가 '권력 비판' 이야기를 '취임 후 처음으로' 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조선일보> 2008.1.4 사설. 정연주가 누구인가를 다섯번이나 물으면서 정연주가 얼마나 파렴치한 인간인가를 격문처럼 써내려갔다. 얼마뒤 KBS 노조 성명서에서 이 사설을 그대로 인용했다.
▲ 정연주가 누구인가 <조선일보> 2008.1.4 사설. 정연주가 누구인가를 다섯번이나 물으면서 정연주가 얼마나 파렴치한 인간인가를 격문처럼 써내려갔다. 얼마뒤 KBS 노조 성명서에서 이 사설을 그대로 인용했다.
ⓒ 조선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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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정연주가 누구인가'라는 사설에서 "역시 노무현 정권은 KBS 사장에 대단한 인물을 골랐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는가"라고 어이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을 보면, 이 사설을 쓴 사람도 위의 한나라당 성명서와 같은 인식을 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한나라당 성명서와 <조선일보> 사설의 다음 구절을 비교해 보면 일란성 쌍둥이의 기발한 상상력이 닮은꼴임을 짐작할 수 있다.

"도저히 정 사장이 한 이야기라고 생각도 못할 이야기를 하고 있어..."(한나라당 성명서)

"그(정연주)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는가"(<조선일보> 사설)

병든 영혼의 사람들 눈에 세상 일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다. 그 어떤 권력이건 비판하는 것은 언론 본연의 기능이라고,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이야기했는데, 그런 기본사실은 아예 외면한 채(아마 제대로 취재도 안했을 성 싶다), 그냥 자기들 방식으로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생뚱맞은 비판"이라고 거짓을 내뱉는 얼치기 기자들이나, 그걸 또 엉뚱하게도 "새 정권에 아첨 아부하며 카멜레온처럼 살아남아 보려는 태도"라고 생트집을 잡는 한나라당 대변인의 그 유치한 지적 수준이나,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는가"라고 입에 거품을 문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증오에 찬 상상력이나, 모두 이 코미디같은 시대의 서글픈 초상일 뿐이다. 어쩌면 스스로가 그렇게 기회주의적인 처신을 해온 터여서, 다른 사람들까지 그렇게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성명서, 그런 사설, 그런 기사가 가능할까.

당시 나는 한나라당의 성명서와 <조선일보> 사설 등을 읽으면서, 그냥 허허 웃었다. 증오와 저주로 영혼이 병들어 버린 바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한 편으로는 저들이 우리 사회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에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냥 허허 웃을 일만도 아니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의 시민적 자유의 공간은 크게 넓어졌다. 그 넓어진 자유의 공간에서 언론은 무임승차를 하여 언론자유를 만끽했으며, 그 과정에서 거대 자본을 가진 족벌 신문들은 자전거, 상품권 등으로 거의 무한의 판매 경쟁을 벌이면서 부수를 확대하여 거대 권력이 되어버렸다. 그 거대권력은 기득권이라는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해 별 짓을 다하는 조폭적 행태도 서슴치 않았으며, 그들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은 무자비하게 두들기고 매장시켜 버리는 '흉기'가 되어버렸다.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그 잔혹함을 이해하기 어렵다.

조중동 절독 운동 고려하겠다는 '박사모'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경선이 끝난 뒤 조폭언론에 격하게 저항한 집단은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 모임인 박사모였다. 경선 과정에서 조중동에게 불공정 게임을 직접 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의 회고담(<오마이뉴스> 2007년 10월 1일 기사 )을 보면, 직접 당해보지 않고는 조중동의 그 가학적인 왜곡과 적극적인 정치행위의 피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평생 <조선일보> 사람'으로 알려진 안병훈 선대위원장의 회고 가운데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나도 언론계 40년 했는데 절실하게 반성합니다..."막판에는 우리도 (언론들을) 다 포기했어야 했어요. 다 저쪽 편인 것 같으니까."

조폭언론의 횡포는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조폭언론의 횡포는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 오마이뉴스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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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중동이 요즘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박근혜 의원을 공격하자, 박사모가 과거의 상처가 도지는 듯 다시 분개하고 있다. 박사모의 정광용 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만약 조중동이 지금같이 국민을 호도하는 행위가 계속될 경우에는 심각하게 절독 운동을 고려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충남 충북 지역 시민사회 단체들도 "행정도시 백지화를 정당화하고 왜곡보도를 일삼는 언론에 대한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조중동 행태를 보면서 이게 무슨 언론인가 라는 의심을 갖게 하는 또 다른 행태가 있다. 상식으로 봐서 당연히 기사꺼리인데, 아예 기사로 취급을 하지 않은 무시의 행태가 있는가 하면, 어제 한 이야기와 오늘 하는 이야기가 정치 상황과 그들의 이해에 따라 정반대로 뒤바뀌는 이중성의 행태다.

무시의 행태는 일일이 열거하기 조차 힘들 정도다. 가깝게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즈음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에 지원하면서 "죽음으로써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의 혈서를 썼다는 일제 때 기사(<만주신문> 1939년 3월31일자)를 공개했는데, 조중동은 입을 맞춘 듯 이 기사를 무시했다.

주요 기사 무시하는 편향성

'국경없는 기자회'에서 해마다 '세계 언론자유 지수'라는 것을 발표하는데, 참여정부 때는 10 등급만 떨어져도 참여정부, 노무현 대통령과 연관시켜 질타를 했던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이 이명박 정권 들어서 지난해 47위에서 69위로, 무려 22 등급이나 폭락하여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보다도 못한 지위로 떨어졌음에도 아예 단신기사로도 내보내지 않았다. 69위가 얼마나 챙피한 자리인지 알기나 하는지. 우리보다 언론자유가 낫다는 나라를 한번 대충 보자. 가나 27위, 나미비아 36위, 루마니아 50위, 아이티 58위, 대만 59위, 보츠와나 62위, 탄자니아 66위, 토고 67위, 불가리아 68위, 한국 69위...

이명박 대통령 사돈의 기업인 효성 그룹의 잇딴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의 포근한 수사 태도처럼, 전혀 보도를 하지 않거나, 아니면 지극히 미온적이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의 사돈 기업이 이런 비리 의혹이 일어났다면 조중동은 어떻게 했을까.

기무사가 민간인 사찰을 한다는 폭로가 있어도, 족벌 언론에서 그런 기사를 보기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잡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정치 상황이 바뀌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바뀌고 난 뒤 보이는 이중적인 말 바꾸기를 보노라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부끄러움까지도 모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불과 얼마 전 자기들이 한 이야기를 정면으로 뒤집어버리니.

이명박 정권 들어서 고위 공직자 청문회 때 보인 조중동의 '너그러운 태도'는 참 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만약 그들이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때도 그런 너그러움을 보여줬거나, 이번에도 그때처럼 다부지게 비판을 했다면, 이중인격의 비난은 면할 수 있을 터다.

논술 준비하는 학생들이 이 사설을 보면 뭐라 할까

하도 사례가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몇 가지만 예로 들겠다.(민언련 분석을 참고했음. www.ccdm.or.kr)

'대통령은 또 인사청문회 결과를 무시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2006년 2월 9일자 사설이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편법 증여와 위장 전입 의혹부터 소득세 탈루, 경력 허위 기재, 국민 연금 미납, 상습적인 교통법규 위반까지 최고위 공직을 맡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일부 내정자들의 치부가 드러났다... 200년의 인사청문회 전통을 갖고 있는 미국에선 내정자들이 사소한 불법이나 도덕성에 상처받는 사안이 불거지면 자진해서 사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직을 맡겠다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인격 수양은 돼 있어야 할 것이다."

이랬던 <조선일보>가 2009년 가을 고위 공직자 청문회에서는 아주 유순한 양이 되었다. 9월 15일자 사설을 한번 보자.

"공직 후보자 검증에서 도덕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후보자의 업무 능력과 각종 현안에 대한 견해다. 미국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가 과거에 재직했던 자리에서 어떤 성과나 오점을 남겼느냐가 그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로 다뤄지고 있다."

참여정부 때는 "사소한 불법이나 도덕성에 상처받는 사안이라도 불거지면 자진사퇴하라"고 호통쳤던 <조선일보>가 이명박 정권 들어 고위공직자들의 불법과 편법이 줄줄이 터져 나오자 유순한 변론자의 위치를 넘어, 아예 능력이 중요하지 도덕성이 뭘 하는 식으로 새 논리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현란한 변신이다.

<조선일보> 2009년 9월 22일자 사설은 참 괴이하기까지 하다.

<조선일보> 2009년 9월 22일자 사설
▲ 노골적인 '이중잣대' <조선일보> 2009년 9월 22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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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면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법과 현실의 경계가 애매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언젠가는 구미 선진국처럼 사소한 위법행위로도 공직의 꿈은 접어야 하는 시대가 반드시 와야 하고, 올 수밖에 없다. 지금의 진통은 그런 시대로 가는 과도기여야 한다."

과도기니까, 그냥 덮어두고 넘어가자는 이야기 아닌가. 논술 준비를 하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신문사 이름은 밝히지 않고, 이 세 개 사설을 준 뒤, 이게 같은 신문사의 사설인지 아닌지를 밝혀보라는 문제를 내면 어떤 답이 나올까.  (다음 주에 계속 됩니다)


태그:#정연주, #조폭언론, #조중동, #박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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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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