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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말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언론에서 나의 거취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한국일보> 2007년 12월 24일자 기사는 이렇게 전했다.

'방송계에서는 KBS 정연주 사장의 거취가 가장 주목된다. 정 사장의 임기는 2009년 11월까지다. 그러나 한나라당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통령이 바뀌었을 때 KBS 사장이 바뀌지 않은 적이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교체설에 비중을 둔다.'

<동아> <조선>의 거짓 왜곡 보도

<조선일보> 2008.1.4 사설. 정연주가 누구인가를 다섯번이나 물으면서 정연주가 얼마나 파렴치한 인간인가를 격문처럼 써내려갔다. 얼마뒤 KBS 노조 성명서에서 이 사설을 그대로 인용했다.
▲ 정연주가 누구인가 <조선일보> 2008.1.4 사설. 정연주가 누구인가를 다섯번이나 물으면서 정연주가 얼마나 파렴치한 인간인가를 격문처럼 써내려갔다. 얼마뒤 KBS 노조 성명서에서 이 사설을 그대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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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기사는 담담하게 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은 달랐다. 흠집을 내서 기어이 몰아내는 데 앞장서겠다는 의욕이 넘쳤다. 대표적인 예가 2008년 1월 2일 새해 시무식에서 행했던 나의 '신년사'를 가지고 거짓과 왜곡을 서슴지 않으면서 검은 발톱으로 할퀸 내용이다. 그날 신년사에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KBS는 서로 다른 생각들, 가치, 이념들이 더 나은 것이 되기 위해 소통하고 대화하고 모아지는 광장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올해 KBS 경영 목표는 '공공 가치의 중심 KBS'입니다. 공공 가치는 우리 모두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의 가치, 그것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공가치의 바닥에는 우리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 즉 자유, 정의, 평화, 사랑, 생명이 깔려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당당하고 의연한 위상과 확실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정치적 변화의 과정에서 이 점은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공영방송의 당당한 위상을 갖추는 일, 확실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 이를 위해서 정치적인 독립성을 확실히 뿌리내리도록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치적인 환경 변화의 과정에서 우리는 흔들림 없이 공영방송 본래의 책무와 언론기관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언론기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역사적·사회적 책무가 있습니다. 정치 권력이든, 자본 권력이든, 언론 권력이든, 또는 사회적 집단이 집단 이기주의를 위해 자기의 권력 확대를 꾀하건, 우리는 그 어떤 권력에 대해서, 특히 오만한 권력에 대해서 의연하고 당당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언론기관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무 중 하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언론기관인 KBS 스스로 겸허해야 합니다. 우리는 낮은 곳에서 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고, 가진 것 없는 사람 편에서 오만한 권력, 지배하려는 권력에 대해서 가차 없이 비판해야 합니다.'

내가 평소에 생각해왔던 바를 그냥 담담하게 밝혔을 뿐이었다. 내가 늘 지니고 다니는 취재노트에 메모한 내용을 가지고 그렇게 신년사를 했다. 이런 내용은 비단 2008년 신년사에서만 특별하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이 검은 발톱을 드러내면서 할퀴기 시작했다.

기본 취재도 않는 기자들

 <동아일보> 2008.1.3 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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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가 먼저 치고 나갔다. 바로 다음 날인 1월 3일자 1면 기사에서 <현 정부 코드 기관들 정권 인수 인계 과정 '뻣뻣' '정권말 버티기'>라는 제목으로 국정홍보처, 청와대, KBS 등 관련기사를 다루면서 'KBS 정연주 사장 돌연 목청 높여' '오만한 권력 향해 가차 없이 비판해야'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나의 발언 가운데 "정치권력이든, 자본권력이든, 언론권력이든, 혹은 그 사회적 집단이 이기주의를 위해 권력 확대를 꾀하든 우리는 비판해야 한다"면서 "특히 오만한 권력에 대해 가차 없이 비판해야 한다"는 대목을 인용한 뒤 "정 사장이 2003년 4월 취임한 이래 연임을 포함한 두 차례의 취임사와 다섯 차례의 신년사에서 '권력 비판'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밝혔다(<동아일보> 2008년 1월3일자 동정민·손택균 기자).

'권력 비판'이라는 말을 처음 한 것이라니, 기본취재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것이 신년사 때건, 창사 기념사 때건, 또는 KBS 새내기들이 입사하여 수원 연수원에서 한 달 동안 연수할 때 첫 강의를 맡아서 언론인의 자세를 이야기할 때건, 언론의 기본적 기능, 즉 '사실 보도'와 '권력에 대한 비판 기능'을 늘 이야기해온 터였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문화 권력 등 기득권을 위한 강자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KBS는 이를 감시 견제함으로써 약자에 대한 구조적 제도적 차별을 철폐해야 하며...(2004년 신입사원 연수)

진실의 편에 서서 강자의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한편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2004년 창사 기념일 기념사)

KBS는 자유, 평등, 정의, 복지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적 강자의 권력 남용을 감시해야 하며... (2004년 기자간담회)

모든 변화의 과정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 사회의 성역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특히 권력의 성소는 없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권력으로 남을 지배하려 하거나, 남을 억압하려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청산돼야 할 것이고,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그리고 자연 도태되는 변화의 시대에 와 있습니다. 행여 언론이 권력으로 군림하려 한다면 마땅히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봅니다. (2006년 신년사)

공영방송 KBS는 정치와 자본 뿐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집단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사로서 사회적 비판 기능을 다함으로써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2006년 11월 연임 취임사)

모든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독립성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2007년 신년사)

이런 때에 한국의 중심 채널 KBS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자명합니다. 언론의 1차적 기능인 '진실을 전달하는 것' 그리고 '모든 권력을 감시하고 지켜보는 비판적 기능에 충실해야 합니다. (2007년 창사 기념일 기념사)

대충 뽑아본 발언들인데, 이래도 내가 '권력 비판'을 2008년 신년사 때 처음 했다고 하니, 이건 소설도 아니고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보도'를 하지 않은 언론이 어찌 언론인가

4년만에 돌연 '권력비판해야'
▲ <조선일보> 2008.1.4 2면 4년만에 돌연 '권력비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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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자 <조선일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정연주 사장, 4년 만에 돌연 "권력 비판해야"'라는 기사와 함께 사설에서 'KBS 사장 정연주가 누구인가'라며 거세게 몰아세웠다. 사설은 이렇게 시작했다.

'KBS 사장 정연주씨가 사내 신년사에서 "오만한 권력, 지배하려는 권력에 대해 가차 없이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노무현 정권은 KBS 사장에 대단한 인물을 골랐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는가.'

그리고는 '정연주가 누군가'라는 다섯 번의 질문을 던지면서 정연주가 얼마나 파렴치한 인간인지를 격문처럼 써내려갔다. (이 사설은 얼마 뒤 KBS 노동조합 성명서에서 거의 그대로 인용되었다. 당시 KBS 노조 집행부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 보인 성명서였다.)

같은 날 <동아일보> 서정보 기자는 '정연주 사장의 낯 뜨거운 자리보전용 신년사'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동아일보> 2008.1.4 34면 서정보 기자
▲ '기자의 눈' <동아일보> 2008.1.4 34면 서정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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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정연주 사장이 2일 신년사에서 "오만한 권력에 대해 가차 없이 비판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내부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정권 교체기에 왜 이런 발언을 했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 사장이
2003년 4월 취임한 이래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권력에 대한 비판'을 직접 언급한 게 생뚱맞다는 분위기다.

생뚱맞은 것은 내가 아니라 "취임 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고 거짓 왜곡보도를 하거나, 아니면 그냥 정연주가 미워서 제멋대로 마구 붓을 휘둘러대는 조폭 같은 <동아> <조선>의 기자, 논설위원들이 아닌가. 이게 무슨 언론인가. '사실 보도'라는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포기한 언론이 어찌 언론일 수 있을까. 그랬기에 조중동이 뭐라 비판을 하든, 나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무시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그런 비판이 아프지도 않았다.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하늘 앞에 떳떳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저주와 증오는 조중동을 보는 기득권 세력들의 머리를 세뇌시키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KBS 사장 재임 시절, 그리고 지난 1년 8개월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언론 보도의 당사자가 되어 직접 겪어 보니, 언론이 아니라 사회적 흉기가 되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증오와 저주의 지면

나는 지난해 6월부터 검찰이 흘린 일방적 정보를 받아쓴 조폭 언론들에서 이미 '연임을 위해 KBS에 엄청난 손해를 입힌 파렴치범', '인격 파탄자', '중범'이 되어버렸다. "KBS 정연주씨, 사장 더 하려 국민에게 1500억 손해끼쳤나'(<조선일보> 2008년 7월19일 사설) "배임액수 너무 커 사기업 사장이면 구속감"(<동아일보 2008년 8월 14일자 기사) 등의 기사가 한 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때는 어땠는가. 피의사실을 사전에 공표하지 못하게 엄연하게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데도 검찰은 거의 매일 브리핑을 했고, 언론은 생중계를 하면서 생매장을 하다시피 했다. 비판이 아니라 증오와 저주가 지면에, 화면에 넘쳤다.

언론의 1차적 기능인 '사실 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흉기가 되어버린 조폭언론을 어찌할까. 이런 흉기에 이제 방송 날개까지 달아주겠다니, 이 나라가 장차 어찌 될까. 이런 일방적 언론환경에서 민주주의의 요체인 다양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런 답을 내놓았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 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나의 신년사를 조폭언론들이 비틀어버린 다음 날부터 한나라당에서 비난발언과 성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는 <개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한, 희한한 성명서가 한나라당 대변인실 이름으로 나왔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태그:#정연주, #조폭언론, #사회적 흉기,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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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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