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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로 가족여행을 갔다. 강원도는 나에게 낯설기만 한 곳이다.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날씨는 쌀쌀했다. 들판에서는 수확이 한창이었다. 아직 들판을 지키고 선 벼도 머리가 무거운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길가에 줄지어 선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었다. 단풍나무도 형형색색이었다. 무엇보다 높은 하늘이 형형색색으로 물든 나무와 조화를 이루어 즐거움을 배로 키워주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단풍의 색깔이 더 아름다웠다. 추위도 더 느껴졌다.

 

강원도에 도착해서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통일전망대에 가서 북한 땅도 바라보았다.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든 연못 이야기도 들었다. 동해바다는 끝도 없이 펼쳐졌다. 화진포에 있는 김일성별장도 가보았다. 그곳의 바닷바람은 정말 매서웠다. 설악산 백담사도 가보았다. 계곡물이 정말 깨끗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대관령에 있는 목장이었다. 목장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넓은 초원, 양치기 소년, 양을 모는 개... 여러 가지 동물들이 무리지어 다니며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뉴질랜드에도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뉴질랜드는 얼른 가기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아빠께서 대관령 목장에 가보자고 할 때 나는 정말 기뻤다. 소원의 일부가 이루어지는 그런 느낌!

 

 

우리가 찾아간 목장은 대관령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삼양목장이었다. 목장 입구에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산으로 올라갔다.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풍경이 아주 멋있었다.

 

전망대에 내려서니 드넓은 분지가 펼쳐졌다. 그 위에는 풍력 발전기가 돌고 있었다. 대략 50여 개는 되는 것 같았다. 높이도 내 키의 20∼30배는 돼 보였다. 풍차를 연상시키는 그 모습이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그 풍경이 너무 멋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촬영모드로 바꿔 쉴 새 없이 찍어댔다. 핸드폰 메인 화면으로 쓰고 싶은 풍경이었다. 열을 올려 돌아다니며 여기도 찍고 저기도 찍고 수십 장은 찍었다. 아니 100장도 더 찍은 것 같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신 아빠께서 "우리 슬비도 디카 하나 따로 있어야겠구나"라고 하셨다. 그동안 나는 내 전용 디카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 그다지 필요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내 용돈을 모아서 사겠다는 것도 반대를 하셨었다. "그 돈 있으면 다른 유익한 일에 쓰라"고 하시면서...

 

 

내가 열심히 추억을 남기며 사진을 찍는 모습에 부모님의 마음이 바뀌신 것 같았다. 엄마께서 "슬비가 이렇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지 몰랐다"면서 "네가 모은 용돈으로 디카 하나 장만하라"고 천사표(?) 말씀을 남기셨다.

 

그 말에 나는 더욱 열심히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엄마께서는 "젊어서 다르긴 다르구나. 어떻게 이런 곳을 힘도 안 들이고 뛰어다니니?"라고 묻기도 하셨다. 그러면 나는 "저희가 좀 많이 젊죠!^^"라고 대꾸했다.

나는 "엄마! 저 디카 사는데 돈 좀 보태주시면 안 돼요?"라고 했다가 금방 마음이 변했다. "아니요. 됐어요. 돈 보태주셨다가 저번처럼 뭔 일 있으면 빼앗아버리니까. 엠피쓰리도 뺐는데, 디카를 빼앗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네요. 그냥 제 돈으로 살게요. Don't Touch!!!"라고 했다.

 

그 말에 엄마와 아빠께서 배꼽을 잡고 웃으셨다. 사실 엄마는 끄덕하면 엠피쓰리를 내놔라, 핸드폰 내놔라, 전자수첩 내놓아라고 하신다. 내가 뭘 잘못했을 때 벌칙으로 그런 비겁한(?) 방법으로 나의 물건을 빼앗아 버리신다. 나는 그게 몹시 서운했다. 엄마가 사주셨다고 내놓으라는데 내놓지 않을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디카만은 내 돈으로 살 생각이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멋있었다. 동물농장에서 노니는 동물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멋있었다. 똥냄새가 몸에 베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또 자신이 싸놓은 흔적(?) 위에서 풀을 뜯어 먹고 구르고 하는 모습도 조금 그랬다.

 

풀을 뜯는 양의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가져다 대면 몸을 돌려 똥구멍을 보여주는 녀석도 있었다. 비위 상하게시리! 하지만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양도 있었으니!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똘망하게 얼짱 각도의 포즈를 취하며 핸드폰 카메라의 렌즈를 주시하는 양이었다.

 

그 양의 사진은 많이 찍었다. 친구들한테 보여주며 자랑하고 싶었다. 양떼들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갑자기 옛날 이야기인 '양치기소년' 생각이 났다. 그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혼자서 웃음이 나왔다.

 

 

젖소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서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였다. 웃긴 것은 타조였다. 풀을 뜯어 주는데 손가락이 위험했다. 그래서 나무판자 하나를 구해서 거기에 먹이를 올려 주었다. 한번은 줄랑 말랑 하면서 약을 올렸더니 타조들도 열을 받았나 보다. 그 긴 목을 쭉 뻗어 덥석 물어가곤 했다. 한번은 풀을 똘똘 말아 주었는데, 너무 많이 주었는지 바로 삼키지 못했다.

 

그 타조는 내가 넣어준 먹이를 오랫동안 씹고, 또 다른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조금씩 넣어준 풀은 바로바로 먹어치웠다. 처음 경험해 본 타조 먹이주기가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했다. 산양이 있는 곳은 악취가 많이 나서 접근하기 싫었다.

 

대관령 목장을 다녀온 뒤, 더욱 더 뉴질랜드 목장에 가보고 싶어졌다. 거기서 양을 모는 개와 양치기 소년도 보고 싶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갖가지 동물들도 보고 싶다. 넓은 초원에 벌렁 누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잠도 청해 보고 싶어진다.

 

"너! 그러다가 몸에 동물 똥이랑 진드기 다 달라붙는다!" 엄마의 한 마디에 바로 경직되고 만 나였지만,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뉴질랜드다. 디카도 사야 하고, 뉴질랜드도 가야 하는데 내 용돈을 언제까지 모아야 하는지 벌써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슬비 기자는 광주동신여자중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태그:#대관령목장, #강원도, #풍력발전기, #휴대폰카메라,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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