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른바 '나영이사건'을 계기로 어린이 혹은 장애인을 상대로 저질러진 성범죄자들에 대해 법원이 '주취 상태였기 때문'을 이유로 잇달아 관대한 처벌을 내리는 판결에 대한 공분이 일고 있다. 법원이 음주 상태의 성범죄에 대해 관대한 판결로 일관하는 것은 범죄자들의 주취 상태가 형법 제 10조에 정한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너무도 인간미(?)가 넘치는 법원의 양형기준을 보자니, 한 세대를 풍미했던 라디오 드라마 '법창야화'의  "죄를 미워하더라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던 오프닝 멘트와 수년전 모 국회의원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음주를 핑계로 동료를 두둔한 사건이 함께 떠올랐다.

파렴치한 범죄를 '술 탓'으로 돌리던 한나당 의원들의 태도를  [여봐라! 저 괘씸한 술을 당장 하옥 하렸다!]란 제목의 글을 통해 비꼬아 비판했는데, 수 년이란 시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은 상황 덕분에 그 글을 다시 인용하게 되었다.

괘씸한 술을 당당 하옥하라?

찬탈의 일등공신이었던 홍윤성은 뇌물 챙기기와 상습적인 부녀자 성폭행 등으로 인한 상소가 이어졌지만 세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조의 총애를 등에 없은 홍윤성의 만행은 날로 강도를 더해가 친척의 재산 강탈 유부녀 성폭행 등으로 백성의 원성을 사게 되자 세조도 더 이상은 홍윤성을 싸고 돌 수는 없게 되었고 친히 홍윤성을 심문하게 되었다.

"네가 나의 총애를 등에 없고 백성의 재산을 약탈하고, 가노로 하여금 무고한 인명을 살해하도록 한 것이 사실이냐?"
홍윤성이 대답했다.
"네."
세조가 다시 물었다.
"네가 양가집 처자를 겁탈하고 남의 부인을 겁간한 것이 사실이냐?"
다시 홍윤성이 대답했다.
"그러하옵니다."
세조의 추궁은 추상같았다.
"네가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런 추악한 일을 저질렀단 말이냐?"
그런데 홍윤성의 변명이 가관이었다.
"전하 ! 다름이 아니오라 신이 당시 술에 취해있어서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세조의 노기는 탱천하였다.
"내가 일찍부터 너를 신임하여 항상 곁에 두고 너의 두주불사(斗酒不辭)를 질책하지 아니하고 친히 경음당(鯨飮堂: 술을 고래처럼 마신다는 뜻)이란 호까지 하사했거늘 어찌 짐을 이리 능멸할 수 있단 말이냐?"
세조의 추상같은 일갈에 중신들은 두려움에 떨며 악신 홍윤성의 종말을 예감했지만 판결은 뜻밖에도 어이없었다.
"윤성이 저지른 간악무도한 죄는 천륜과 인륜을 모두 저버린 죄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도다. 여봐라! 경음당으로 하여금 천륜을 저버린 죄를 저지르게 한 저 술통을 당장 하옥하여 엄벌에 처하도록 하라!"

범죄 전 음주는 '심신미약 상태', 음주운전은 '살인행위'?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 세조의 판결과 오늘날 법원이 '음주를 심신미약의 상태'로 보는 법리는 한 치도 다름없다고 볼 수 있으니, 법원의 괴이한 법 해석은 모든 예비 범죄자로 하여금 범행에 앞서 반드시 음주 코스를 거치도록 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것이다. 이대로 가면 향후 성범죄 재판에서는 '[권위있는(?) 술집에서 발행한 음주확인서]가 어떤 유능한 변호사의 변론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법원이 성범죄자의 음주를 형법 10조의 '심신미약의 상태'로 인정하고 있는 반면, 도로교통법에서 음주운전은 '잠재적 살인'이라고할 만큼 엄단해야할 범죄로 보고 가중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무지렁이 천민의 천박한 사고로는 음주 후 성범죄가 '심신미약의 상태'라고 한다면 음주 후 운전 역시 '심신미약의 상태'에서 저질러진 어쩔 수 없는 실수로 봐야할 것이고, 음주운전이 엄단해야할 범죄행위라고 한다면 음주 후 저질러진 성범죄 역시 엄단해야할 범죄행위여야만 한다고 판단된다.

만약 술 때문에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술을 마시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세간의 상식일진데, 고고하신 법관들의 견해는 이와 전혀 다른 것 같다.

참새는 도무지, 대붕의 뜻을 헤아릴 수 없어서 말이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나영이사건, #성범죄, #형법, #도로교통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