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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급식을 먹고 있는 학생들
 학교 급식을 먹고 있는 학생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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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무개(15)군의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다. 아버지는 서울의 일감이 없어 여수에 내려가 새벽 인력시장에서 일을 찾는다. 그나마도 텃세에 밀려 하루를 공치는 날이 많다. 지금은 생활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워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는 형편. 월세를 아끼려 작년에 은행대출을 받아 2천만 원짜리 전세로 옮긴 것이 더 '악재'였다. 은행 이자도 마련하기 어렵고 의료보험마저 현재 5개월이 밀려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중학교 3학년 누나와 이군의 급식비와 학교운영비는 마련하기가 어렵다.

다행히 이군은 학교급식비 지원을 받고 있다. 이들의 가정형편을 안 담임교사는 이군에게 급식비 지원을 위한 '사실확인서'를 써줬다.

이군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다. 서울시 남부교육청 산하 13개 중학교에서 담임교사가 사실확인서를 통해 '밥 굶는 아이'들을 도운 경우는 무려 500여 명에 달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실이 입수한 해당 학교의 '사실확인서'에는 이들 모두가 갑작스럽게 어려워진 가정 형편에 따른 급식비 부담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담임교사가 작성한 사실확인서는 이군처럼 "서류상 드러나지 않는 저소득층 자녀"에게 급식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쓰이는 근거 자료다. 서울시교육청의 '2009년 학교급식 기본방향'에 따르면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 자녀 등 기준에 맞지 않는 학생은 신규 선정된 학생(1학년 신규 법정 지원대상자+2·3학년 신규 법정 지원대상자)의 10% 수준에서 추가 지원토록 돼 있다.

문제는 담임교사가 볼 때 급식비 지원이 절실한 학생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학교에선 3~4년 전부터 담임 추천 대상자가 초과할 경우 복지심사위원회를 열어 추가 중식 지원대상자를 뽑아왔다.

그러나 지난 9월 남부교육청이 '인원 초과'를 이유로 갑작스럽게 관내 학교 교원과 급식담당자에게 주의 조치를 내리는 한편, 2학기부터 해당 학생들의 급식 지원을 위한 예산은 지원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교사나 아이들에겐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관련 기사 : 서울남부교육청, 아이들 굶길 생각인가)

일선학교의 반발이 이어지고 언론보도까지 쏟아지자 서울시 교육청이 한 발 물러섰다.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달 11일 공문을 발송해 오는 2학기 급식비 지원을 계속 하기로 했다. 이로써 아이들은 '당장'의 걱정을 덜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내년엔 다시 밥걱정을 해야 한다. 문제가 된 지침이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론에 한 발 물러선 교육청... 그러나 급식비 지원은 올해까지만 한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에서 입수한 급식비 지원을 위한 '담임교사 사실확인서' 중 한 학생의 사례. 서울시 교육청은 이 사실확인서를 통해 추천할 수 있는 급식지원대상자를 신규발생 법정지원대상자의 10%로 제한하고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에서 입수한 급식비 지원을 위한 '담임교사 사실확인서' 중 한 학생의 사례. 서울시 교육청은 이 사실확인서를 통해 추천할 수 있는 급식지원대상자를 신규발생 법정지원대상자의 10%로 제한하고 하고 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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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무엇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밥 걱정을 할 아이들을 매일 지켜봐야 하는 담임 교사들이다. 교육 당국은 아이들에게 사실확인서를 쓴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시 한 번 지원자격을 심사할 것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입을 상처는 생각지 않은 처사였다.

A중학교의 이명남 교사는 "다행히 2학기 급식 지원이 된다고 하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며 "올해 지침 위반을 이유로 일부 학교에서만 행정조치로 주의를 받았지만 내년에는 모든 학교에서 이런 징계를 받지 않기 위해 3월 초부터 지침을 깐깐하게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선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언론보도를 보고 아이들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그 역시 2학기 급식지원분이다. 또 그 쪽의 도움을 받는 아이들은 내년에 급식지원 대상자로 자동 승계가 되지 않기 때문에 내년에 같은 문제, '지침 상 인원초과'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남부교육청에서도 이 문제 때문에 구로구청·영등포구청·금천구청 등에 도와줄 것을 호소했지만 움직임이 없다고 들었다."

이 교사는 이어, "현행 10% 제한 지침으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아이의 수는 상당히 미미하고 지역 별로 편차도 큰 편이다"고 지적했다.

"우리 학교의 경우 지침에 따르면 급식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아이는 6명이다. 하지만 전체 35학급인 우리 학교에서 한 반에 두 명 꼴로 급식비 지원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발생하고 있다."

B중학교의 김호정 교사 역시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니더라도 갑작스럽게 회사에서 잘리거나, 파산하는 경우엔 포함되지 않는다"며 "차라리 '임금미지급 몇 개월'이라던가 구체적인 사유를 명시하는 것이 낫다"고 현행 급식법의 문제를 짚었다.   

서울시에만 있는 '담임교사 사실확인서' 10% 제한 지침... 폐기 서명운동 진행중

현재 서울남부교육청 산하 일선 학교의 교사와 교사들은 담임교사 사실확인서 급식지원대상자 10% 제한 지침 폐기 및 현실화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서울남부교육청 산하 일선 학교의 교사와 교사들은 담임교사 사실확인서 급식지원대상자 10% 제한 지침 폐기 및 현실화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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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담임교사 사실확인서 급식지원대상자 10% 제한 지침'을 폐기 혹은 현실화하는 것이다.

권영길 의원실의 확인 결과, 이 10% 제한 지침은 여타 16개 시·도에는 없는, 서울시 교육청에만 있는 지침이다. 현재 해당 학교의 교사와 학부모들은 이 지침을 폐기하거나 현실화할 것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명남 교사는 "분명 이 학생들을 지원할 수 있는 돈은 있다"며 "현재 우리 학교는 학력신장학교로 한 학기당 2000만 원의 지원을 받는데, 지침이 초과된 학생들의 급식비는 한 학기 당 810만 원 정도밖에 안 든다"고 강조했다.

"요새 경기가 안 좋은 것은 교실의 쓰레기통만 봐도 안다. 재작년이나 작년만 하더라도 아이들이 매점에서 사 먹은 음료수 캔, 과자봉지 등이 많았는데 올해는 없다. 아이들이 주전부리할 돈도 없다고 보면 된다.

보릿고개 같은 옛날이야 같이 굶었지만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라면서 아이들이 굶는 것을 외면하는게 맞나? 아이들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길을 막는 것은 살인행위나 다름없다. 아이들을 사회가 같이 키운다는 생각이 없다."

김호정 교사도 "현 정부를 지지하는 선생님도 이 문제에 대해선 '복지한다면서 아이들 밥도 안 먹이냐'고 말하신다"며 "다른 데 쓸 돈은 많은데 왜 먹는 문제, 이런 기본적인 문제에 방점을 찍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교사의 말대로, 현재 서울시 교육청은 '학력 향상 중점학교' 1억 원, '사교육 없는 학교' 1억 원, '좋은 학교 자원 학교' 7천만 원, '방과 후 시범학교' 4천만 원 등 각종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교육청 "예산작업 뒤 변화 있을 것"... 시민단체 "급식심의위원회부터 열어야" 

한편,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2010년 예산 작업을 하는 중"이라며 "제한기준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매년 급식 지원 대상 범위가 늘어나는 만큼 항상 탄력적으로 예산을 짠다"며 "언론에서 관련 예산이 없어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강변했다. 또 "어떤 기준을 잡든 간에 기준을 벗어나 못 받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다"며 "그간 언론보도가 너무 편향되게 나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옥병 전국학교급식네트워크 상임대표는 "급식법 대상 범위가 늘어나는 것과 서울시 교육청의 10% 제한 지침은 관계가 없다"며 "오히려 서울시 교육청은 해당 지침의 내용에 대해서 심의할 수 있는 법적 기구인 학교급식심의위원회를 올해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10% 제한 지침을 각 일선 교육청에 내려 보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배 대표는 이어, "빈곤층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급식미납자가 2006년에 비해 10배 가까이 늘어났는데 오히려 보건복지부는 아동 무상급식 예산을 삭감하고 교과부도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시 교육청의 10% 제한 지침을 푸는 동시에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태그:#학교 급식, #서울시 교육청, #급식비 지원, #급식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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