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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개봉 된 장화홍련의 포스터 문근영, 임수정씨 뒤로 보이는 일본식 건물이 바로 보성 율어면 유신리에 지어졌던 건물이다
 2003년 개봉 된 장화홍련의 포스터 문근영, 임수정씨 뒤로 보이는 일본식 건물이 바로 보성 율어면 유신리에 지어졌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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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소설 태백산맥 문학비가 서 있는 보성 율어의 주릿재에 올라 해방구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6년여 전 근처에 세트장을 마련하고 영화를 찍었다는 '장화 홍련'이 생각나 어딘가 하고 궁금해 재를 넘었다.

장화홍련은 지난 2003년도에 보성 율어면 유신리 저수지 옆에 일본식 가옥 한 채를 짓고 촬영에 들어갔고 경기도 양수리 세트장에서 마무리 작업을 한 공포영화다. 그리고 그해 여름 개봉해 관객동원(315만 명)에도 성공했으며 해외에서도 제법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영화는 가족이라는 근본적인 관계가 훼손되면서 가장 공포스런 관계로 변화는 과정을 보여주는 가족괴담이다. 영화는 어느 산골에 승용차 한 대가 일본식 가옥으로 지어진 집으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저수지가 있는 깊은 산골 음산한 건물 내에서 아버지와 새엄마, 그리고 수미 수연 두 딸만이 살면서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중반부 까지는 공포영화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작게는 가족, 크게는 사회에 대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영화다.

그런데 공포영화가 대개 그렇듯 촬영장에 대한 뒷얘기는 항상 양념처럼 따라다닌다. 장화홍련 촬영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보니 묘한 공포감 같은 것이 전해졌다. 당시, 주민들은 건물(촬영장)을 지으려던 저수지 옆에 대해 "빨치산 격전지며 주위에 무덤들도 있어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말렸고 실제로 촬영도중에도 제작자 중에서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들이 있다.

철거된 지 4년여, 지금은 밭과 무덤이 자리해

6년이 지난 지금 촬영장 건물은 철거된지 오래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당시 촬영장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흔적 다리를 감싼 나무판넬, 공포스런 분위기의 인형, 길 끝에 자리했던 건물, 지금은 밭과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6년이 지난 지금 촬영장 건물은 철거된지 오래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당시 촬영장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흔적 다리를 감싼 나무판넬, 공포스런 분위기의 인형, 길 끝에 자리했던 건물, 지금은 밭과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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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어면은 이미 알고 있듯 여순사건과 6·25 당시 빨치산의 본거지인 해방구로 진압군과 빨치산의 격전지다. 그래서 시쳇말로 지금도 밭을 갈기 위해 땅을 파면 뼈가 수시로 발견된다고 하는 지역이다. 그만큼 사연이 많고 한이 서려있는 땅이다.

장화홍련 촬영 현장은 유신리 마을에서 동네를 돌아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저수지길로 올라가 낮은 능선을 오르면 조그만 다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약 300미터 정도 더 가면 나온다. 촬영 장소였던 집은 이미 4년여 전에 철거되고 지금은 밭과 무덤이 서 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공포영화의 촬영지로 이곳을 선택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며 더구나 저수지 옆이라는 장소 설정과 그곳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 단 한 채는 공포감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했다. 기본적으로 좀 무서운 땅에서 공포영화를 촬영했기에 이후 그 현장에는 음산한 기운이 더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개봉 후 보성군에서는 영화 촬영장을 영구보존해 관광지로 개발한다고 공언했다가 무슨 일인지 3년이 채 안 돼 급하게 철거하고 말았다. "왜 철거하게 됐는지 아시냐"고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그냥 얼버무리는데 아무래도 흉가처럼 느낌이 썩 좋지 않아서였던 모양이다.

필자가 방문해 보니 입구인 다리에 영화 촬영조건에 맞춰 덧붙여놓은 판자조각만이 일부 남아있었다. 어찌 보면 장화홍련 촬영장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그것뿐인 듯 보였다. 그런데 선입견 때문인지 밭도 이상하고 무덤들도 이상한 느낌을 줬다. 또 밭에 참새를 쫓겠다고 걸어놓은 물건들 중에 사진에서 보듯 인형 목을 매달아 놓아 섬뜩하기도 했다.

장화홍련, 율어 해방구, 낙안군은 줄거리가 같아

장화홍련의 율어 촬영장은 빨치산의 격전지로 지금도 논.밭의 땅을 파면 뼈가 종종 나온다고 말할 정도로 한의 땅이다
 장화홍련의 율어 촬영장은 빨치산의 격전지로 지금도 논.밭의 땅을 파면 뼈가 종종 나온다고 말할 정도로 한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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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얘기로 돌아가 보면, 장화홍련을 '남성적인 세계 안에서 희생된 여성들의 슬픈 난투극'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새 엄마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을 방관하는 아버지,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품어 안으려 하면서도 밀쳐내는 새엄마, 죽은 엄마만을 그리워하면서 새엄마를 저주하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수미와 수연 두 딸.

그런 가족사의 비극영화가 이념을 앞세워 피를 흘리면서 싸워야만 했던 비극의 땅 율어 해방구에서 촬영됐다는 것도 우연치고는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외세에 의해 형제가 갈린 땅 낙안군이 재 너머에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석연찮게 촬영장은 이미 4년여 전에 눈에서 사라졌지만 장화홍련 영화의 내용만은 남아 수미와 수연이라는 두 딸이 낙안과 벌교로 오버랩 되고 이미 죽은 친엄마가 낙안군과 겹쳐지며 새엄마가 순천시와 보성군이라면 그저 방관하고 있는 아버지가 문득 낙안군의 통합을 외면하는 국가는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나 영화촬영장 흔적이라도 남아있을까 기대감으로 가 봤던 보성군 율어면 유신리 저수지옆 장화홍련 촬영장, 현장에는 알 수 없는 묘한 공포감(?)이 남아있어 오싹했지만 되돌아오면서 그래도 영화의 내용과 의미가 장소와 맞물려 한번쯤은 찾아왔어야 할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예고: [09-051] 낙안군 음악인 오태석과 채동선을 찾아서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낙안군, #남도TV, #장화홍련, #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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