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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춘당 고택의 전경 고층 아파트와 상가에 완전히 포위되어 고립된 '섬'과 같다.

조선 후기 우암 송시열과 함께 정계를 좌지우지한 송준길이 산 곳, 동춘당

 

오랜만에 찾아간 동춘당, 공사장 울타리에 포위돼 있었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입구는 높다란 바리케이드로 가로막혀 있어 자동차는 물론, 사람조차 통행할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혹시 허술한 틈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성벽처럼 감싼 울타리를 빙빙 돌았다.

 

이내 대로 변 굴삭기 등 공사 차량이 오가는 간이 통로를 찾아냈고, 그 틈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각종 건설 자재가 쌓여있고 파헤쳐진 돌무더기가 곳곳에 널브러져 있어 주변이 무척 어수선하다.

 

동춘당은 조선 후기 우암 송시열과 함께 '양송(兩宋)'으로 불리며 정계를 좌지우지했던 송준길의 호이자, 그가 나고 자라 말년을 보낸 고택의 별당 이름이기도 하다. 동춘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현재 보물 제209호로 지정돼 있다.

 

담까지 두른 별채인 동춘당 뒤편으로 지금도 후손이 살아가고 있는 고택이 자리하고 있고, 고택의 수문장인 양 지키고 선 아름드리 감나무 바로 옆에는 사당인 별묘와 가족묘가 나란히 서 있다. 집터로만 보면 웬만한 마을 못지않은 널찍한 공간이다.

 

동네 사랑방처럼 친근하면서도 단정하고, 검박하면서도 격조가 느껴지는 동춘당. 여느 고택 별채와는 달리 외따로 세워진 까닭이 궁금하다. 고택을 중심으로 마을이 들어서 있었을진대, 요즘 같으면 흡사 마을 회관이 자리했음직한 곳이다. 말하자면 근방을 대표하는 마을의 얼굴 격이었을 것 같다.

 

장난감 퍼즐 조각을 오밀조밀하게 짜맞춰놓은 듯한 조그마한 건물이지만, 툇마루에 기대 내부를 들여다보면 확 트인 공간감을 느낄 정도로 넓다.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내릴 듯한 육중한 대들보를 받기 위해 마룻바닥에 기둥 하나쯤 서 있을 법 한데, 신기하게도 꿋꿋이 버틴 채 매달려 있다.

 

동춘당 주변 부속 건물들, 생기 잃은 채 박제화된 느낌

 

동춘당 전경 보물 제209호로 지정되어있다.

동춘당 현판 우암 송시열이 써준 것으로, 왼쪽에 '화양동주'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동춘당의 대청은 주인장이 멀리서 온 귀한 손님을 맞아 차 한 잔 나누는 장면보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둘러앉아 마을과 나랏일을 상의하는 모습이 더 어울리는 공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곳 별채 같으면 관상용 정원을 가꿔놓았을 만한 넓은 곳에, 그냥 나무 그늘이 좋은 빈터 그대로 남겨두었다.

 

문화재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는 '보물' 동춘당과 후손이 살아가고 있는 고택과는 달리 주변 부속 건물들은 생기를 잃은 채 박제화된 느낌이라 아쉽다. 은진 송씨의 가묘도 그렇지만, 불천위를 모신 별묘 또한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어 들어가 볼 수 없다. 더욱이 담조차 높아 안을 들여다보기조차 만만치 않다. 문화재 해설사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그곳이 어떤 곳인지조차 도무지 알 길 없다.

 

송씨 가묘 옆으로도 범상치 않은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동춘당의 손자인 송용억이 지은 살림집이다. 대개는 위, 아래 혹은 앞뒤로 배치되기 마련인데, 사랑채와 안채가 여느 곳과는 달리 좌우로 나란히 배치돼 있어 이채롭다. 담 안팎으로 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어 꽃피는 계절이면 화사한 꽃대궐이 될 듯하다. 그러나 이곳 역시 문이 잠겨 있어 들여다볼 수 있을지언정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런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게 있다. 동춘당을 중심으로 채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이렇듯 많은 옛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는데도, '사적지'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춘당은 국가지정문화재로, 동춘당 고택과 송용억 가옥은 도지방유형문화재로 서로 별 관련 없다는 듯 따로따로 지정, 관리되고 있을 뿐이다.

 

세월의 무게로 쇠락했다고는 하나 지어진 후 불에 탔다거나 전란 중에 크게 훼손된 흔적이 없는데다, 모두 지정문화재로 등록돼 있으니 각 건물 때문은 아닌 듯하다. 고택들을 에워싸고 있는 주변 경관이 크게 달라져 그 가치를 잃어버렸다는 게 그 이유일 듯한데, 과연 이곳의 옛 모습은 어땠을까 궁금하다.

 

고층 아파트가 배산, 6차선 도로가 임수 역할

 

동춘당은 공사중 공사명 '동춘당 옛 모습 찾기'. 과연 동춘당의 봄날은 다시 찾아올까.

동춘당과 고택, 가묘와 송용억 가옥 사이 살림집들이 옹기종기 있었을 자리는 빈터로 남아 황량할 지경이다. 풍수지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권세가의 옛집일진대 뒤로 산이 푸근히 감싸 안고 앞으로는 내가 돌돌 흐르는 곳에 자리하기 마련이지만, 뜨악하게도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현재 모습으로 보건대, 외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아파트가 배산(背山)이 되었고, 자동차 경적 소리 시끄러운 왕복 6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임수(臨水) 역할을 하고 있다. 흡사 고층 아파트와 상가 등 잿빛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움푹 팬 웅덩이 같다.

 

주변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집 앞에 가꿔진 예스러운 정원인 양 즐거워하며 만끽할지 모르지만, 고택을 지키며 여전히 살아가는 후손들 입장에서는 동물원 우리에 갇힌 신세 마냥 '감상 당할' 위치에 놓여있다. '백세청풍'의 가풍을 이어가며 한때 이 지역 주인이자, 자랑이었던 동춘당이 지금에 와서는 공원 내 볼거리와 얘깃거리로 만족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동춘당이 위치한 이곳의 행정구역명은 송촌동이다. 은진 송(宋)씨가 모여살던 동네(村)라는 뜻이다. 현재 마을 이름을 제외하면 집성촌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0여 년 전만 해도 희미하나마 명문 양반가의 품격과 옛 마을의 정취가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예 수백 년 전 전설처럼 아득할 뿐이다.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동춘당 고립

 

동춘당 내부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내부는 십수 명이 둘러앉아도 비좁지 않을 만큼 널찍하다.

고택의 사랑채 고택의 사랑채에는 벽에 그대로 쓴 '백세청풍'의 글씨가 희미하다. 고택의 현재를 말해주는 듯하다.

대전광역시로 인구가 대규모로 유입되고 시가지가 빠른 속도로 팽창하면서 빼어난 경관을 뽐냈던 송촌동 주변은 개발붐을 피해갈 수 없었다. 대청호가 내려다보이는 계족산성과 이어지던 동춘당의 지맥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잘렸고, 대전천을 거쳐 금강으로 흘러가는 앞내는 복개되어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산허리를 깎아내고 물길을 덮더니 아예 상하좌우 콘크리트 숲으로 동춘당과 주변 건물을 철저히 고립시켜버렸다. 광역시권이 아닌 어느 한적한 시골이었다면 번듯하게 남았을 유적이, 이제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운운하기조차 어색하게 되었다.

 

지금의 이름 또한 '동춘당 공원'이지만, 현재 진행 중인 새 단장 공사가 끝나면 주민들을 위한 '진짜 공원'으로 탈바꿈된다고 한다. 여느 곳처럼 근사한 연못과 분수대가 세워질 것이고, 산책로에는 푹신한 보도블록이 깔릴 것이다. 주변엔 사시사철 화사한 꽃밭이 조성돼 눈길을 끌게 될지도 모르겠다.

 

삭막한 도시에 이만한 초록색 정원이 새로이 꾸며지는 것을 두고 반대할 주민은 없을 것 같다. 인근 고층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산책 삼아 이곳을 즐겨 찾을 것이고, 주변 학교 아이들의 소풍 장소로도 손색이 없을 거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주변 상권도 살고 아파트 시세도 올라갈 거라며 들뜬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기대와 말들 속에 정작 동춘당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은 빠져 있다. 시공사가 내건 공사 개요도와 현수막에는 엄연히 '동춘당 옛 모습 찾기'라고 명명돼 있는데도, 동춘당을 비롯한 옛 건물들과 주변의 옛 경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별채 이름인 '동춘'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春)과 같아라(同)'는 의미이다. 과연 '콘크리트 더미'에 고립된 채 고개 숙인 동춘당이 굴삭기와 덤프트럭의 힘을 빌어 '봄'의 파릇함을 되찾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기우일지는 모르지만, 현대식 공원으로 탈바꿈되느니 지금 힘겹게 남아있는 그 모습만이라도 지켜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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