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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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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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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과 <티베트방랑>은 한국에 1993년 출간되었던 책이다. 그 후 이 책들은 출판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절판되었고, 중고시장에서 정가보다도 비싼 가격에 거래되어 왔더랬다. 그런데 반갑게도 여행기 출판 붐을 타고 후지와라 신야의 책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그의 비교적 최근작인 <황천의 개 (2006)>와 초기작 <동양기행 (1981)>이 작년에 출간된 데 이어서, 그의 처녀작인 <인도방랑 (1972)>이 올해 재출간된 것이다. 양장이던 구간본에 비해 무게도 가볍고, 번역도 매끄럽다.

이제 <티베트방랑 (1977)>도 곧 재출간 될듯하고,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그의 책 <동경표류 (1983)>와 <아메리카기행>, 그리고 사진집 <메멘토모리 (2008)>가 출간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여행기중독자는 특히 그의 <동경표류>에 기대를 걸고 있다. 부디 같은 번역자가 번역해 주시길. (번역자 이윤정씨는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인도로 떠났고(여기에는 일본인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유수한 작가들과 여행자들도 포함된다), 여행자들은 그의 책을 '위험한 책'이라고 불러왔다. 도대체 왜, 무엇이 위험하다는 것일까?

뜨거운 사진

누군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마크 트웨인이 비록 허클베리 핀 대신 다른 작품만 썼다고 해도 우리는 그가 여전히 미국 해학의 선두에 위치하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에, 그가 허클베리 핀 한 권만 썼다 하더라도 역시 그의 작가적 명성은 불변할 것이 틀림없다."

후지와라 신야에게 <인도방랑>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과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그는 사진, 여행기, 자서전, 소설 등 광범위한 작품 활동을 통해 일본에서 특급작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처녀작 <인도방랑>만으로도 그의 명성은 살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인도여행은 1969년에서 1972년까지의 3년간. 27년 전 기록이지만 그의 사진과 글이 촉발하는 울림은 여전히 위험하다. 69년 당시, 작가는 스물다섯의 미대생이었다. 무작정 인도로 떠났다가 3년 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와 <인도방랑>을 썼고, 그 반향이 컸다고 한다.

그는 그 뒤로 10년 간 여행에 몰두하며 <티베트 방랑>, <소요유기>, <동양기행> 등의 책을 써냈다. <소요유기>라는 사진집으로 77년 '기무라 이에헤 사진상'을 받으며 사진작가로 인정을 받았고, 82년 <동양기행>으로 '마이니치 예술상'을 받았다고 한다. 강력한 글발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진으로 먼저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여행기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여행기에 실린 그의 사진들은 확실히 글을 압도하는 이상한 기운을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시체를 감싼 하얀 천 끄트머리에 비죽하게 나와 있는 검은 발과 그 뒤에 서 있는 아들인 듯 보이는 청년의 모습, 어둑한 갠지스 강 수면 위 인간의 갈비뼈에 앉아 얼마 남지 않은 살점을 뜯어먹고 있는 까마귀, 강물에 떠내려 온 퉁퉁 불은 시신을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있는 개들...

그가 갠지스 강가 화장터에서 찍은 사진들은 인간의 시신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너무도 생생하게 포착하여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인도인의 일상과 풍경을 담아 낸 사진들에서도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열기가 감지된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작가는 인도로 떠나기 전까지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인도로 떠나기 전, 그의 형에게 "여기를 누르면 사진이 찍힌다"는 설명을 들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모든 사진작가 지망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순수한 정열이 기술과 지식을 뛰어 넘은 것일까? 전설이 또 다른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일까? 만약, 평자들이 말하는 대로 그의 사진이 이 세상 너머의 무언가를 담아내고 있다면, 그 비결은 무엇일까?

작가는 인터뷰에서 그 비결에 대해 '그저 그렇게 찍힌다고밖에 말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조금 얄밉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적어도 여행기중독자가 보기에 이 작가는 뭔가를 숨기는 방식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측컨대, 그 비결은 그의 사진이 먹잇감을 재빨리 해석하고 포장해내는 '프로의 사진'이 아니라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아마추어의 순수함으로 담아 낸 '날것' 그대로의 사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때로는 조금 흐릿하고, 때로는 어두침침하기도 한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저 에네르기 충만한 땅 인도의 어느 구석, 느닷없는 풍경과 마주친 한 청년이, 풀려버린 다리를 추스르고, 흐릿해지는 파인더를 가까스로 응시하다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셔터를 누르는 그런 장면이 말이다. 그리하여 피사체가 뿜어내는 열기와 그때 그곳에서 작가가 느꼈던 열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사진들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마저도 뜨겁게 달구는 것이리라.

"머리를 강으로 향하고 장작 속에 안치된 죽은 자의 머리맡에 흰 옷을 걸친 소년이 선다. 소년은 서 있다. 엄연히… 그리고 장작더미 사이로 튀어나온 죽은 자의 발 두 개. 이 두 명의 인간… 나는 카메라를 들고 어느 쪽에다 렌즈의 초점을 맞출지 망설였다. 그리고 일순, 죽은 자의 발바닥 살갗이… 그 세부… 주름 … 들러붙은 흙덩이… 햇빛을 반사하는 그 섬세한 광택… 죽은 자의 모든 것이 카메라 네모난 시야 속에 선명하게 잡혔다. - 비하르주 파트나에서" 

그리고, <인도방랑>의 에세이들은 그 사진이 '우연히 찍힌' 것이 아니라, 한 청년이 치열한 고뇌와 깨달음을 통해 '찍어 낸' 것임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차가운 머리

<인도방랑>은 '무조건 떠나라'라고 덮어놓고 여행을 예찬하는 책도 아니고, '인도에 가면 모든 해답이 있다'고 환상을 주입하는 책도 아니다. 그는 인도 열풍을 주도한 장본인임에도 불구, 사람들이 유포하는 '명상'이니 '신비'니 하는 '인도의 환상'을 서늘하게 비판한다.

"저 인도의 자연을 접한다는 건 평온을 얻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엄청나게 아나키적 정신이 되어가는 겁니다. 인도의 자연을 모방하면 인간사회의 관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버리지요. 사실은 대단히 위험한 겁니다. 알다시피 예로부터 어느 나라 문화든 일본에 들어오면 모조리 곱씹혀서 예쁘장하게 변해버려요. 이번에는 인도가 완전히 그 코스에 걸려들고 만 거지요. - 84년 저자 인터뷰 중 "

독자들은 뭄바이 기차역의 아수라장에서 출발하여, 히피들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다가 느낀 자괴감을 거쳐, '콜람 해변'에서 '어리석음에 의해 지탱되는 인간의 삶'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갠지스 강에서는 불타는 시체들과 살아남은 자들의 몸짓에 전율을 느낄 것이고, '라자스탄 지방'의 '팔로디 사막'을 건너면서는 생사의 순간에 떠오르는 엉뚱한 환영을 만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사막 너머의 마을 '푸시가르'에 이르러서 저자를 둘러싸고 있던 뿌연 먼지가 걷히는 순간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좋은 것도 보았다.
거대한 비냔나무에 깃들인 숱한 삶을 보았다.
그 뒤로 솟아오르는 거대한 비구름을 보았다.
인간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코끼리를 보았다.
'코끼리'를 정복한 기품 있는 소년을 보았다.
코끼리와 소년을 감싸 안은 높다란 '숲'을 보았다...
세계는 좋았다.
대지와 바람은 거칠었다.
꽃과 나비는 아름다웠다. - 푸시가르에서"

후지와라 신야는 눈앞에 펼쳐진 죽음의 풍경이야말로 산자와 죽은 자의 참을 수 없는 모순인 동시에, 자연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살풍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사이에 화해는 없을 것이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마찰뿐이다. 구르는 돌멩이를 보며, 오른쪽 눈을 감든, 왼쪽 눈을 감든, 그 마찰의 열기 속으로 몸을 던지든, 그것은 철저하게 인간의 몫인 것이다.

여행기중독자는 이 '모순과 아름다움의 절묘한 긴장관계'가 이 책을 아름답게도, 위험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모순에 빠져도, 아름다움에 취해도, 그리고 작가처럼 그 사이의 격렬한 마찰 속으로 몸을 던져도, 위험하긴 마찬가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작가는 그 열기를 받아들이는 순간에 힌두교를 알게 된 것 같다. 흡사 아수라장 같은 사회 속에서도 믿을 수 없이 건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인도인의 실체를 깨닫게 된 것 같다.

"겁 없이 말하자면 지평선을 보는 것, 그것이 힌두교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이나 바위를 집어 들어보는 것, 이것도 힌두교다 … 힌두교는 황무지에서 자라난 도덕이고, 자연이 부여하는 도덕에 대한 사실(寫實)이며, 사실(事實)에 대한 허용이다. 그들의 방식은 정리된 인간의 언어 나부랭이를 믿기보다는 언제나 모순을 토해내는 물체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언제나 혼돈으로 가득하기는 해도 대단히 온전하다… 그리고 나는 걸었다. - 푸시가르에서"

역시, <인도방랑>은 위험한 책이다.

덧붙이는 말

전례 없이 연속적으로 일본작가의 책을 추천하게 되었다. 사실 여행기중독자는 일본을 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 중 하나이다. 동경의 거리를 걸으며 "나는 적진에 와 있다"고 생각했고, 일본의 여행기들을 읽으며 시기와 질투에 휩싸이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아마도 일본의 새로운 선택에 대한 기대감이 나로 하여금 다른 한쪽 눈도 뜨고 싶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저자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을 보면서 오른쪽 눈꺼풀을 조금 더 열어보기로 마음먹어 본다.

"첫 한국 여행 이후 여러 번 한국을 방문하면서 드는 생각은, 해가 갈수록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수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정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나는 젊은이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을 허물어뜨리고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이 책이 그런 젊은이들의 등을 떠미는 작은 힘이 되길 바란다 - 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작가정신(2009)


태그:#인도방랑, #후지와라 신야, #작가정신, #인도여행, #사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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