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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지도 열정적이지도 않은 '찌질한' 10대 남학생 남상준. 어느 봄날 그는 '자아 놀이 공원'에 초대 받아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그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건물들이 있고, 놀랄만한 첨단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리학 이론을 반영하여 만든'(!) 환상적인 놀이 시설이 있다. 프로이트의 빙하 놀이관, 융의 UFO 전시관, 스키너의 입체 게임관, 매슬로의 피라미드관, 에릭슨의 서바이벌 게임장 등이다.

말만 들어도 신기한 이들 놀이 시설에서는 상상을 자극하는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오고 흥미로운 사건들이 벌어진다. 프로이트의 빙하 놀이관에서는 기이한 가장행렬(이드)이 펼쳐지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 조명(초자아)의 지시에 따라 거인(자아)을 조종한다. 스키너의 입체 게임관에서는 스키너의 이론이 반영된 로봇이 인간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매슬로의 피라미드관에서는 홀로그램 비서의 안내로 인생의 단계를 미리 체험하고, 에릭슨의 서바이벌 게임장에서는 팀원들과 함께 정체성의 혼란을 헤쳐 나간다. 주인공 남상준은 이들 놀이 시설을 체험하면서 심리학 지식의 도움으로 자아를 발견하고 한 뼘 더 성장하게 된다.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반영하여 만든 자아 놀이 공원에는 신기한 자아 탐구 시뮬레이션이 펼쳐진다.
▲ 자아 놀이 공원 가상 지도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반영하여 만든 자아 놀이 공원에는 신기한 자아 탐구 시뮬레이션이 펼쳐진다.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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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계 최초의 심리학 지식소설 <자아 놀이 공원>의 내용이다. 올해 3월에 출간된 이 책은 참신한 서술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에게 심리학 지식을 놀이 공원 체험을 통해 유쾌한 방식으로 알려 준다는 점, 그리고 심리학 지식을 단지 머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은 점이 그랬다.

이 참신한 지식소설 <자아 놀이 공원>을 쓴 이남석 작가를 만나 보았다. 그와 함께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과정, 작품의 의미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기존 성장소설은 어둡게 그려지는 측면 있어

<자아 놀이 공원>은 자아 찾기와 자아 성장을 무겁게 풀어가거나 난해한 상담 이론으로 잘난 체하지 않고, 놀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작가에게 왜 진지한 자아 성장의 문제를 놀이로 풀었는지 물어 보았다.

신선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심리학자
▲ 이남석 신선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심리학자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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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자아 성장'이라고 하면,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이 주로 강조되곤 합니다. 골치 아프고, 힘든 면이 너무 강조되죠. 성장소설들도 성장통을 인상적으로 그리곤 합니다. 성장소설이 고통이 많고 어둡게 그려지는 측면이 있지요.

그렇지만 자아 성장이 고통이라는 건 어쩌면 편견이 아닐까요? 자아 성장은 유쾌한 놀이일 수도 있어요. 이성복 시인의 시 <그 여름의 끝>처럼, 다 겪고 나면 장난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아이가 기어 다니다가 처음에 일어설 때는 힘듭니다. 그러나 뒤에 생각해 보면, 장난 같지 않겠습니까? 대부분 자신의 힘들었던 기억도 나중에 돌이켜 보면 장난처럼 얘기하게 됩니다. 그것을 제대로 겪었다면 말이죠. 그러나 자아 성장의 과정을 어정쩡하게 거친 경우에 반복되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결국, 저는 자아 성장은 놀이와 같다고 봅니다. 그것은 놀이처럼 유쾌한 일이지요. 그래서 놀이처럼 재미있게 자아를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이 책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말 가운데 성장의 과정을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 어정쩡하게 거친 경우 반복되는 고통을 겪는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도 사실 성장을 두려워해 '인생의 반복되는 NG'를 경험하곤 한다.

어쨌든 이남석 작가의 말을 들어 보니, <자아 놀이 공원>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지식 성장 소설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그는 성장에 관한 기존의 편견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의 자살 소식에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지식소설 구상해

작가가 평소에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갑자기 책을 쓰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에게 <자아 놀이 공원>을 쓰게끔 동기를 부여하게 된 사건이나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이번에는 이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러자 '주민들의 소식통'인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다가 들은 가슴 아픈 얘기를 전한다.

작가가 사는 곳 주변에 고등학교가 있는데, 그곳에서 한 학생이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시험지 답안을 밀려 쓴 것이 원통하고 속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어 자식의 자살에 충격 받은 그 어머니도……. 작가는 이 사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자아 놀이 공원>을 쓸 결심을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배우는데, 그 안에서 맨 처음에 배우는 게 '자아 발견과 자아실현'이거든요. 자아 형성은 인생에서 중요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겪어야 자아가 좋게 형성된다는 내용을 배우지요.

그런데 공부 잘하는 그 학생은 그것을 지식으로서만 알고 있었던 거예요. 단지 시험 문제에서 답을 찍는 것은 잘 했겠지만, 그것을 자기 삶과 연결하지는 못했죠. 그래서 쉽게 그런 선택을 했던 거예요. 만약 '내가 어떤 사람이다' 하는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 학생에게 확고한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었다면, 비극적인 사건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내 자아는 무엇일까?" 하고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그런 책이 필요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그 생각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지식소설을 구상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아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해

<자아 놀이 공원>은 유명한 고전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놀이로 풀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특히 '자아 정체성'이라는 말을 만든 에릭슨의 이론을 비중 있게 다룬다. 책을 읽어본 이들도 에릭슨의 서바이벌 게임장이 가장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한다.

작가는 왜 에릭슨을 더욱 중요하게 다뤘을까? 그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먼저 첫째 이유를 들어 보자.

"보통 '자아'라고 하면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자아 형성하겠다고 혼자 고민하는 일도 종종 보게 되지요.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아란 내 안에 있던 것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그것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에요. 자아 형성에 영향을 주는 이는 가족이나 친구를 비롯해 다양하게 있어요. 그래서 자아를 얘기하려면 사회적 관계를 얘기해야 합니다. 이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람이 에릭슨입니다."

그의 말처럼, 자신을 지키겠다고 자신만의 성을 쌓고 자신을 그 안에 가두는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작가는 그것은 제대로 된 자아 형성이 아니라고 말한다. 고립이 아닌 '관계'를 통해 성장하라고 말한다. 이것이 에릭슨의 이론을 더욱 중요하게 다룬 첫째 이유였던 것이다. 둘째 이유도 들어 보자.

"우리는 보통 한 번 성장하면, 또는 자아 정체성이 한 번 형성되면 다 되는 것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성장이 어느 한 시기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요. 전 생애에 걸쳐 발달해야 하는 것이에요.

자아 정체성의 위기도 살면서 계속 되지요. 에릭슨은 인간에게 여덟 번의 자아 정체성 위기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청소년 시기는 그 중 한 번이지요. 따라서 자아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되지요. 에릭슨은 이것을 강조한 사람이에요. 이것이 마음에 들어서 에릭슨을 중요하게 다루었죠."

자아 정체성이 한 번 형성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에릭슨은 그동안 정체성 위기에 잘 대처하지 못해 실패한 이들에게도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한 번 실패했더라고 다시 설 기회가 언제든 있다고 강조한다.

에릭슨을 전혀 몰랐던 이도 <자아 놀이 공원>을 한 번 보게 되면, '멋쟁이' 에릭슨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껍질을 찾는 소라게처럼 성장하길

표지
▲ 자아 놀이 공원 표지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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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작가에게 자아 성장을 대하는 어른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물어 보았다. 어른들은 일반적으로는 자아 성장이 중요하다고 얘기하지만, 막상 자기 자녀가 자아 성장을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하면, "그딴 고민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 하고 말한다. 작가는 이런 어른들에게 '삶은 과정'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고 한다.

"삶은 과정입니다. 삶이 결과라고 한다면, 부모가 제시하는 법관이나 의사가 되면 끝입니다. 또는 어느 대학을 가면 끝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죽는 순간까지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쓸데없는 고민이 아니라, 평생을 지고 가야 할 고민입니다. 청소년 시기에 해결하지 않으면, 나이 먹고 나서는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아이는 성장해서 어른이 되고,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야 한다. 이건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이것이 대학 입학 이후로 미뤄진다. 그래서 대학을 가서도 계속 방황한다.

요즘엔 대학마저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하면서, 대학생이 '고등학교 4학년'이 되어 버린다. 자아 성장의 문제는 또다시 취업 이후로 미뤄진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도 자신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몰라 다시 방황한다. 성장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으니, 반복되는 고통이 찾아오는 것이다.

소라게는 성장하면 기존의 소라 껍질을 벗고 새로운 껍질을 찾는다. 기존의 껍질에 계속 갇혀 있으면 힘들게 고통 받다가 죽고 만다. 어느 순간 다시 찾아오는 반복되는 고통을 맞을 것인가? 성장하는 소라게처럼 새로운 껍질을 찾을 것인가? <자아 놀이 공원>이 오늘날 청소년들의 반복되는 고통을 끝내고 성장의 길로 안내하는 책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내용을 조금 손질하여 <1318 북리뷰> 2009년 가을호에도 실립니다. 서상일 기자는 사계절출판사 편집자입니다.



자아 놀이 공원 - 심리학자들과 떠나는 환상 여행

이남석 지음, 사계절(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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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자아 놀이 공원, #이남석, #자아 성장, #책따세 권장도서, #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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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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