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에는 수령이 최소 5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 하나가 있다. 고읍(古邑)이 낙안군의 옛 치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금, 이 은행나무는 옛 치소로서 최소한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읍리 은행나무는 높이가 40미터에 이르고 둘레만도 10미터에 가까운 거대목으로 밑동에서 자란 싹이 여러 가지로 뻗어 나와 줄기를 이루고 있어 언뜻 보기에는 두세 개의 나무가 군락을 이룬 듯 보이지만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한 나무다. 

 

사실 중국에는 3000여 년이 된 은행나무가 있고 국내에도 용문사 은행나무는 1000여 년이 됐다고 추정하기에 500여년 된 고읍리 은행나무가 독자들에게 얼마나 주목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곳 은행나무는 유독 '젖기둥'이라고 하는 '유주(乳柱)'가 많아 학계에서는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나무다.

 

유주는 나무가 공기를 뿌리로만 흡입하기엔 부족해 가지에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데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몇 안되는 은행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신비로운 현상이다. 예로부터 아이를 낳으려는 여인들이 나무 아래에서 공을 들였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는 형태가 남성의 성기를 닮았기 때문이다.

 

 

벌교읍 고읍리 은행나무는 지금 모습이 본래의 모습은 아니다. 낙안군이 순탄치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듯 지난 80년대, 양초를 올려놓고 제를 지내다가 화재가 발생해 원 줄기는 소실되고 고사하는 나뭇가지들까지 생겨 모양새가 많이 왜소해졌다고 한다.

 

주민들 증언에 따르면 "6-70년대엔 그 위용이 하늘을 찌를 듯했고 웅장해 은행나무가 한번 울기 시작하면 그 소리가 마을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을 정도였다"고 한다.

 

화재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고읍리의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 제90호로 국가보호수'였다는 사실은 주민들의 증언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후 지정해제되고 전라남도 기념물 제147호로 격하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모습에 대해, 은행나무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유학렬씨는 "매년 가지들이 잎을 맺지 못하고 하나씩 부러져 나가고 있어 주민으로써 죄스럽고 죽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화재가 난 지 30여년이 지났기에 아물만도 한데 사정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희망 한가지는 있다. 화재로 불타고 자신의 몸이 하나 둘 썩어가는 속에서도 고사하지 않고 오늘도 고령의 은행나무는 땅속에서 새로운 가지들을 수 없이 뻗어 내 놓고 있다.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기 이전인 약 2억 5천만 년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해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린 만큼의 끈질긴 생명력이다.

 

단지 이런 삶에 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은행나무가 생존을 위해서는 큰 터전이 필요한데 이곳은 골목길과 집이 나무를 둘러싸고 있어 새롭게 움튼 가지들이 계속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는 점이다.

 

행여, 다른 곳에 있는 은행나무에 비해 더 많이 유주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이유가 새롭게 자라나는 가지들을 살리기 위한 방편인지, 새 가지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보호하고 아껴달라는 신호인지는 모르지만 은행나무의 이런 몸짓을 행정과 주민들은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예고: [09-031] 소설 태백산맥 문학관을 찾아서
남도TV


태그:#낙안군, #남도TV, #낙안, #벌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