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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석 달동안 엄청난 슬픔속에서 제대로 헤어나오기도 전에 다시금 더 깊은 상실감에 빠지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 내린다.  군부독재가 회오리치던 그  캄캄하고 척박한 땅에다 그는 피눈물과 땀방울로 민주주의 씨앗을 뿌렸다. 꽁꽁 언땅을 비집고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드디어 꽃을 피워 냈다. 

우리는 오천년만에 처음으로 민주주의와 자유가 들꽃처럼 활짝 핀 시절을 10년씩이나 누렸다.  목숨바쳐서 국민한테 안겨 준 민주주의를,  물과 공기처럼 거저 얻다 보니까 소중한 줄도 고마운 줄도, 따라서 지킬 줄도 몰랐다.  사람도 민주주의도 다 잃고 나서야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일 줄은….

1980년  6월, 이민 보따리를 싸기 한  달쯤 앞서인 어느 날,  어마어마한 뉴스가 신문으로 라디오로 테레비전에서 터져 나왔다.  빨갱이 김대중이 나라를 뒤집으려고 음모를 꾸미다가 들켰다고 한다.  저녁 뉴스에서는 아나운서가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김대중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려고 했을까요?  큰 일 날 뻔 했네요.  하마트면 우리나라가 공산화될 뻔했잖아요.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네요." 

대답하던 사람도 길가에 수많은 사람들도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던 우리 식구들도 모두 놀랐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어쩔 뻔 했어. 
어머나! 그러게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은 모른다잖아. 

그리고 한 달 뒤,  일곱 달 먼저 떠난 남편 뒤를 따라서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엘에이 공항에 닿았다. 나는 우리나라가 큰 일 날뻔했던 뉴스를 마중나온 남편을 보자마자 재빠르게 알려 주었다.  먼 나라에서 사니 나라안 소식을 어찌 알겠어?

"글쎄, 김대중이 빨갱이였대." 

그런데 남편이 놀랄 줄 알았더니,

"아니야, 다 중상 모략이야."
"어떻게 알아?  나라밖에서 살면서.."
"한국에서만 몰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곳에서는 뉴스를 생생하게 볼 수가 있어. 광주에서 일어난 피바람도…쯧쯧." 

나는 그 때까지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대학생들이 시위하며 몰려 다녀서 게엄령이 또 선포됐던 그 일?  아이 나는 몰라! 
아이 셋 데리고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민주주의씩이나….  

1982년 쯤,  우리는 친정 식구들이 사는 뉴욕에다 자리를 잡아볼까하고 거친 사막과 대륙을 가로 질러 대서양 귀퉁이에 있는 부르클린이란 도시에서 몇 해 동안 살았다.   

우리가 다니던 부르클린 한인교회에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거쳐갔다.  서경석 목사는 그 교회에서 교육 목사로 일했고,  김동길 교수와 한완상 박사와 사모님을 비롯해서, 감옥을 들락날락했던 사람들이 와서 시국 강연을 할 때에 국가보안법으로 갇힌 양심수들 석방을 바라는 뜨거운 기도가 교회당 가득이 넘쳐났다. 

전두환 대통령이 뉴욕을 오는 해에는 친정 아버지와 엄마도 시위대 앞장에 서서 '전두환 살인마는 물러가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를 누비셨다.  식구끼리 모여 저녁을 함께 할 때에 아버지는 김대중 선생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우리가 민주국가를 이루고, 통일이 온다고 주장하시면서 전두환 대통령을 지지하는 형부에게 소리를 지르시기도 하셨다.  물론 아버지는 '김대중 선생 후원회원'이시고  달마다 정성껏 후원회비를 내셨다.

87년에 단일화에 실패를 하고 노태우씨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그렇게 믿었는데… 그 놈이 그 놈이구나. 쯧쯧."  하시며 실망을 감추지 못하셨다.  형부는 고 것 보십시요… 하셨겠지.  그래도 아버지는 꾸준히 김대중 선생을 좋아하시고 지지하시다가 1996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1997년, 투표권도 없는 우리 부부는 대통령 선거 개표가 끝날 때까지 손에 땀을 쥐고 이 곳 엘에이에서 밤을 새우며 김대중 선생님이 대통령되는 새 날을 맞이하였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님과 김 정일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뉴스를 보면서 뉴욕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엄마,  좋지요?" 
"그래.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아 하셨을까?" 
"이제 통일이 곧 올 거예요.  엄마, 건강하게 사셔야 해요."

엄마와 나는 눈물을 끝없이 흘리며 한평생 두고온 고향, 북녁땅를 그리시다가 이산의 한을 품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했다.

2006년 북쪽에서 핵실험을 하자 햇볕정책을 비난하는 기사들이 이 곳 엘에이 신문을 도배했다.  나는 11월 22일자, 한국일보 여론마당에 기사하나를 실었다.

햇볕정책 계속되어야

북한의 핵실험 후 한반도 안팎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크고 작은 돌팔매가 북을 향해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중 들려온 6자회담 재개 소식은 한줄기 햇살이 되어 급한 시름을 덜어준다. 외국 언론들은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북핵 위기를 불러왔다고 비난하고 한국 주요 언론은 햇볕정책과 퍼주기가 북핵 위기를 불렀다고 비난한다.

한반도에 닥친 이 위기를 절호의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감정보다 냉정한 눈으로 우리가 지금 서있는 곳과 앞으로 가야 할 곳을 찾아보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미움과 반목으로 60년이란 긴 세월을 보내고 있는 한국은 탈냉전시대인 오늘까지도 여전히 소모적인 대결로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화해와 교류, 협력으로 북한을 변화시켜 한반도에 평화와 공존이 자리를 잡도록 하는 것이 햇볕정책이다.
북한은 공산 독재국가이다. 빠른 시일 안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진지 겨우 6년이 지났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등을 통해서 민간 및 경제교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햇볕정책은 국민의 여론 수렴을 통해서 만든 제도화된 정책이다.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이 있기 전에는 우리는 햇볕정책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독일도 어느 날 갑자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이 아니다. 동서독이 화해와 교류로 20년 동안 꾸준히 협력하면서 이룩했고 지금도 호된 통일 비용을 치르고 있다.

실타래처럼 꼬인 북핵 위기의 해결은 미국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부시 정부는 6자회담을 빠르게 열어 북의 요구를 함께 협상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안전 보장과 경제 협력을 약속하는 대가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북의 형제들이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들은 어쩌다 북에 태어났고 우리도 의지와 선택과는 상관없이 운이 좋아서 남한에 태어난 것이 다를 뿐이다. 참혹한 운명에 처한 동족을 우리가 도와야 한다. 내 민족을 먼저 사랑하고 화해할 줄 알아야 이웃 민족과도 어깨동무하면서 세계화에 발을 맞춰 나갈 수가 있을 것이며, 지금 돕는 것이 통일 비용과 통일 후유증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또한 이것은 어느 날 경의선과 동해선을 타고 좁은 반도의 반쪽을 벗어나서 옛 선조들이 말을 타고 누볐던 광활한 만주 벌판과 유라시아 대륙을 누비고 다닐 우리 후손을 위한 투자비용이기도 하다.

김대중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 큰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 막 뉴스를 봤는데요.  알고 계셨어요?"

나는 대답을 못하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엄마, 울지 마셔요.  김 대통령은 참 훌륭하신 분이시고 우리가 그 분 뜻을 이어나가야지요.  할아버지도 김 대통령을 참 좋아하셨지요?  그런데 한 번은 할아버지가 욕을 하신 적이 있었지요?  왜 그러셨어요?"
"후보 단일화를 못해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된 일이 있었지."

저녁에 작은 아들이 일터에서 돌아왔다. 

"엄마, 내가 보기에는 김대중 대통령은 순수한 정치가예요.  자기 정책을 이루기 위해서 전두환도 용서하고 박정희 기념관 세우는 일도 도왔지요."

여섯 살 때에 이민을 왔으니 한국말을 잘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듣고 보니 참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그 분이 타고난 정치가이기는 하지만 순수한 정치가 이기 앞서 순수한 사람이라서 용서를 한 것이지 정책을 이루려고 그러신 것은 아니다."
"알았어요. 내가 잘못 말했네요.  그런데  87년에 후보단일화를 이루었다면 군사정권에서 가만히 있었을까요?"

김대중 대통령님, 비록 몸은 떠나셨지만 넋은 우리들 마음에 살아 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대통령님과 한 시대를 살게 된 것 제게는 더없는 행운이었습니다. 편히 쉬십시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내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대중 대통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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