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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1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헌화를 마친 추모객이 눈물을 흘리며 나오고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1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헌화를 마친 추모객이 눈물을 흘리며 나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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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식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광장에는 나이와 지역, 성별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그들 중 20대는 드문 편이다. 아무래도 김대중 전대통령이 한창 활동할 때 지금의 20대들은 많이 어렸기 때문이 아닐까.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이들의 소회도 소위 말하는 '386 세대'와는 조금 다를 것이라 짐작된다.

조문을 위해 서울광장을 찾았거나, 찾을 생각인 20대들과 대화를 나눠 보았다. 그들이 기억하는 김대중은?

"일단 어렸을 때의 기억은 고생 많이 한 할아버지 대통령, 햇볕정책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대통령이다. 광주, 전남지역 출신의 민주투사.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김새별, 23)

"대단한 분이다. 나 같으면 스스로도 책임 못 지고 사는데, 어떻게 그렇게 다른 많은 국민들을 위해 사셨는지. 모두 용서하셨지 않나.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서환희, 24)

"어릴 때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서거 아쉽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을 당시 지금 20대들은 학창시절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정치를 잘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추억을 한두 개 정도씩은 가지고 있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통일 말하기 대회에서 '더 따뜻한 햇볕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발표해서 최우수상을 탔었다."(김새별)

"초등학교 때 당선하셨다. 나도 일산 사는데, 김 대통령이 일산 사실 때다. 그래서 많이 기억에 남는다. 또 월드컵 때 좋아하셨던 모습, 4강 때였나? 모자 쓰시고 손 흔들면서 좋아하시는 모습이 되게 좋았다."(서환희)

"금강산 관광 시작할 때, 흰색 배가 뱃고동을 울리며 나아갔었다. 아마 동해에서 금강산 갔던 것 같다. 또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갔을 때 김정일이 나와서 마중하던 모습이 기억난다."(박호석, 25)

20대들은 김 전 대통령을 잃은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분향을 위해 줄서 기다리던 허보람(25)씨는 "서거를 예상하지 못해 더 슬펐다. 내 할아버지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더 마음이 그렇다"며 김 전 대통령 서거를 슬퍼했다.

이준영(28)씨는 "개인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참 좋아하지만 특별한 감정 같은 건 없다. 내가 너무 어리기도 했고"라는 담담한 반응이었지만 "사실 시기가 애매한데, '행동하는 양심'등의 발언으로 현 정부에 각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는데 이 시기에 상을 당하니까 좀 기가 막히다. 좀 더 오래 살았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마당에 국민의 마음 기댈 곳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새별씨도 "조금만 더 사시지. 정권 바뀌는 것 보고 돌아가셨으면 좋았을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하고 또 이렇게 돌아가시니까 허무하고 힘이 빠진다. 민주주의 수호의 상징이지 않으셨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대북 퍼주기, IMF 극복 무리수... 그러나 미래를 바라본 정치인"

20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질곡 많은 정치사를 함께 '살아온' 세대와는 다르다. 대부분 그에 대해 '공부해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조금 더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측면이 있을 터. 그래서인지 고인의 서거를 아쉬워하는 와중에 '3김 시대', '동교동 패밀리'등의 구식 정치와 'IMF 극복을 위한 무리수' 등 경제 정책 일부, '햇볕 정책'의 실현 방식 등에 대한 평가도 잊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햇볕 정책이 조금 모호했다고 본다. 그 분의 잘못이라기보단 후임 정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만, 햇볕정책이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을 깔고 갔는데, 임기 내에 개선시키지 않아서 후임 정권에 와서 힘들어진 측면이 있다."(유병수, 23)

"6.15는 정말 인상 깊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이 현재 실제적으로 집권하고 있는 한 '정권'이라고 실체를 인정하고 그 '실체'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생각한 거다. 물론 과거도 중요하지만,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인식한 것이므로 큰 인식의 전환이고 진보적인 결정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동포'로 바라본 첫 번째 정권이다."(이준영)

"다 잘하실 순 없지만, 너무 경제를 부흥시키려고 하다 카드대란 등을 불러온 일이 아쉽다."(서환희)

"마음껏 말하고, 시위하고... 당연한 줄 알고 살았던 것"

특히 20대는 '민주화를 위해 피 흘릴 필요가 없었던' 세대답게,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던 학창시절 민주화의 혜택을 공기처럼 입고 살았다고 회상한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최근에 와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돌아보게 되었다는 대답도 많았다.

"20대들이 학창시절부터 계속 민주정부였기 때문에 자유롭게 우리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고, 심지어 대통령에게 쌍욕까지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부터 저기(서울광장 주변)도 경찰이 많고 이런 모습 보면서 다들 그렇겠지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던 게, 얼마나 많은 분들이 (민주화를) 누릴 수 있게 노력했나 이런 것을 지난 1년 동안 많이 느꼈다."(서환희)

"서거하신 당일 서울광장을 아버지와 함께 찾아 조문을 했다. 분향소 차려지길 기다렸는데 시민들보다 경찰이 더 많았고, 경찰들과 시민 간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점점 사회의 갈등이 더 뚜렷해지는 느낌이다. '경찰들이 언제 저렇게 시민들 사이에서 불신의 상대로 전락했나?' 생각도 들었고, 현정권 들어서 표현의 자유도 더 보장받지 못한다는, 시민사회의 힘을 퇴보시키려 한다는 불안감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분노하고 어른들, 할아버지들도 '쟤네들이 언제 정신차리나' 이런 얘기 한다."(김새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디서 마음대로 시위하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었다. 김대중 집권 시기부터는 그래도 사람들이 할 말 다 하고 집회도 마음껏 했다. 민주주의에서 의무만 강요 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대였다."(이준영)

덧붙이는 글 | 조은별 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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