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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역 광장에 마련된 임시분향소를 찾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려는 목포시민들.
 목포역 광장에 마련된 임시분향소를 찾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려는 목포시민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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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목포사람'으로 남겠다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전해지던 18일 오후, 그의 제2의 고향이자 정치적 고향인 목포는 의외로 담담한 침묵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 시민의 말처럼 "이미 병원에 가실 때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정치인 김대중'을 성장시킨 곳도 목포였고, 사선을 넘나드는 김대중을 끝까지 지켜준 곳도 목포였다. 그 역시 목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틈날 때마다 주저없이 밝히곤 했는데 내용은 한결 같았다.

"몸은 떠나 있어도 나는 목포사람으로 살고, 목포사람으로 죽을 것이다." 

영원한 '목포사람 김대중'을 떠나보낸 남아있는 목포사람들의 심경은 어떨까.

목포역 광장에는 임시분향소가 마련됐다. 정식분향소는 밤새 공사를 해 19일 오전부터 시민들의 조문을 받을 계획이라고 했다. 급작스런 서거소식에 임시분향소도 저녁 8시 무렵에서야 시민들의 조문을 받을 수 있었다.

분향소를 설치한다는 소식을 들은 목포시민들은 오후 5시 무렵부터 삼삼오오 목포역 광장에 모여들었다. 시민들은 분향소 설치공사를 지켜보기도 하고, 언제부터 분향이 가능한지 묻기도 하며 조문차례를 기다렸다.

저녁 7시 30분 무렵 아직 임시분향소에 조화용 국화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상협(69)씨는 손자와 함께 이른 조문을 했다. 이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랜 미국망명생활을 끝내고 귀국해 해남·영암을 거쳐 목포에 오기로 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지역마다 사람들이 발길을 잡아끄는 바람에 예정된 시각보다 여덟시간이나 지체됐었다"고 회고했다.

이씨는 "내가 가톨릭 신자인데 그때 김 전 대통령을 기다리던 우리의 모습은 마치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를 듣고 꿈과 희망을 얻고자 했던 유대인의 모습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김 전 대통령이야말로 진정한 국민의 정신적 지주였다"면서 "내일부턴 더 많은 시민들이 목포역 광장에 나와 고인을 추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문용 국화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임시분향소에서 추모묵념을 하고 있는 이상협씨.
 조문용 국화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임시분향소에서 추모묵념을 하고 있는 이상협씨.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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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임시분향소에 분향을 한 뒤 시민상주 역을 하고 있는 민주당 관계자의 손을 잡고 흐느끼고 있다.
 한 시민이 임시분향소에 분향을 한 뒤 시민상주 역을 하고 있는 민주당 관계자의 손을 잡고 흐느끼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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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때문에 한 해 국상을 두 번이나 치른다"

김석현(32)씨는 "급작스런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는 다르게 이미 병원에 가실 때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기는 했지만 놀랍고 충격적이긴 마찬가지"라고 서거소식을 전해들은 충격을 전했다.

김씨는 "남북관계의 진전이야말로 김 전 대통령께서 일구신 최대 업적"이라며 "이 업적이 계승되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씨는 "(김 전 대통령께서 살아계셔서) 여러 노력을 더 하실 수 있었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남북통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아쉽다"고 거듭 안타까워 했다.

정명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승로사 학생과 지희선 학생은 독서실에 가는 길에 목포역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들렀다. "아버지가 보낸 문자를 받고서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알게 됐다"는 승로사 학생은 "북한에 식량 보내주고, 이산가족도 만나게 해주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신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지희선 학생은 "원래 정치 이런 데 관심이 없는데 김 전 대통령은 목포가 자랑하는 목포사람이고, 좋은 일을 많이 하신 분이어서 분향하고 싶었다"고 분향소를 찾은 이유를 말했다.

경남 진주에서 온 김두익(56)씨는 홍도 구경을 갔다오는 길에 김 전 대통령 서거소식을 접했다고. 김씨는 "한 해에 어떻게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시나"며 "죽기를 각오하고 살아계셨다면 더 많은 일을 하실 분인데"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정정식(47)씨는 딸 다운(10) 어린이와 함께 목포역 광장으로 나왔다. 정씨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도 그랬지만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 수 있나"며 "할아버지처럼 다정하게 국민들을 어루만져주신 분이셨는데 이렇게 가시니 마음이 그렇다"고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목포역 광장 임시분향소를 만드는 일을 돕고 있던 한 시민은 "국상을 두 번이나 치르게 됐다"며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을 자살로 몰고 갔고, 그 충격으로 김대중 대통령도 이렇게 허망하게 빨리 가게 됐다"고 MB정권에 대한 원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영명(66)씨는 "아무리 인명이 재천이고, 인간이 어쩔 수 없다지만 하도 많은 일을 해오신 분이고 또 앞으로도 더 많은 일을 하실 분인데 하늘이 매정하게 데려갔다"면서 "목포사람들뿐 아니라 전 국민이 슬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운 어린이도 아빠와 함께 추모묵념을 하고 있다.
 다운 어린이도 아빠와 함께 추모묵념을 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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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가 넘어거면서부터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계속 이어졌다.
 저녁 8시가 넘어거면서부터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계속 이어졌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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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목포사람들 가슴에 남은 '목포사람 김대중'

"내 생애는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살아온 세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한 김경배(84)씨는 "다른 건 몰라도 목포사람으로서 김 전 대통령이 보여준 목포에 대한 사랑과 목포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각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씨는 "김 전 대통령을 잃은 마음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서럽다'는 것"이라며 "이제 누가 있어 호남을 대표하고, 이 나라를 대표할 것인지 마음이 안 좋다"고 안타까워 했다.

전금숙 전 목포시의회 의원은 임시분향소에서 조문을 안내하는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 나왔다. 전 전 의원은 "이번엔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시민들께 검은 리본을 달아드릴 것"이라며 "많은 시민들이 대통령님을 기억하기 위해 분향소를 찾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지난 67년 7대 국회의원 선거 마지막 유세에서 당시 김대중 후보는 전에 없는 사자후를 토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인 목포에서 최초로 국무회의를 여는 등 그의 낙선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누가 봐도 그 선거는 김대중-박정희의 전쟁이었다. 김대중은 훗날 자신의 분향소가 차려질 목포역 광장 유세에서 이렇게 외친다.

"유달산아 네게 넋이 있다면, 영산강아 네게 혼이 있다면 이 김대중을 버리지 말아다오!"

그렇게 운명공동체였던 목포와 김대중. 이성철(54)씨는 "대통령께서 목포를 평생 잊지 않으셨듯 목포 또한 한번도 김대중 대통령을 잊은 적이 없다"면서 "유달산 올라가면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는데 오늘은 소주 한잔 먹고 올라가서 가슴으로 '목포의 눈물'을 불러야겠다"고 말했다.

'목포의 눈물'이자 '목포의 희망'이었던 '목포사람 김대중'. 그를 먼저 보낸 목포가 '목포의 눈물'을 가슴으로 부르고 있다.




태그:#김대중, #목포, #유달산,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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