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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봄 어느 날, 채규구씨는 TV를 틀었다. 온 나라가 피겨요정 김연아에 열광하고 있었다. 빨간 드레스의 김연아가 '세헤라자데'에 맞추어 정열적으로 얼음을 지치고, 공중점프를 시원스레 해낼 때마다 관중의 함성이 커졌다. 김연아가 애용하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가 실린 음반도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림스키 코르사코프. 채씨는 그 이름을 한번 읊조려봤다. 그랬더니 불쑥 웃음이 나왔다. 웃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 씁쓸했다. 그가 '간첩'으로 몰렸던 82년, 검사들은 꼬투리를 잡기 위해 그에게 온갖 질문을 퍼부었다. 어느 순간, 검사가 윽박을 질렀다. "림스키 코르사코프를 듣는다고? '코프'면 러시아 사람이잖아? 이런 빨갱이!" '코프'와 '스키'를 좋아하면 빨갱이란다. 그럼 빨간 드레스 입은 국민요정 김연아도?

5. 김연아와 림스키 코르사코프, 그리고 오장환
- 블랙코미디를 구성한 허망한 소품들

해방기 문학의 빛나는 성과로 꼽히는 이 시집은 한때 간첩 조작사건의 불쏘시개로 쓰였다.
▲ 회한의시집 해방기 문학의 빛나는 성과로 꼽히는 이 시집은 한때 간첩 조작사건의 불쏘시개로 쓰였다.
ⓒ 미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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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와 코프의 추억(?)'은 냉전시대 시국사건 피해자들이 겪은, 웃지 못할 코미디다. 오송회 교사들이 기억하는 '코프와 스키'는 차라리 장난 수준에 속한다. <병든 서울>이라는 어느 시집 한 권은 그들에게 '코프와 스키'와는 비교도 안 될 상처를 남겼다.

82년 7월 누군가 군산 시외버스에 시집 한 권을 놓고 내렸다. 버스 안내양은 필사본으로 된 그 시집을 군산경찰서에 갖다 줬는데, 경찰은 시집을 뒤적거리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인민의 공통된 행복'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나라' 같은 시구에서였다. 인민. 북괴가 애용하는 '인민!' 그들은 부푼 가슴으로 내사에 착수했다. 알아보니 그 시는 '월북시인' 오장환의 작품이었다. 게다가 월북시인이라니! 그들의 눈에 '월북'은 이미 '월척'으로 바뀌었으리라.

전북대 어느 교수에게 그 시집을 보여주었더니 '지식인 고정간첩이 복사해 뿌린 것 같다'고 짐짓 심각한 진단을 내렸다. 드디어 경찰의 월척 낚기가 시작되었다. 석 달에 걸친 끈질긴 추적 끝에 82년 11월 경찰들은 군산제일고 교사인 이광웅, 박정석씨 등을 잡아들였다. 그 시집 필사본의 뒷표지가 군산제일고의 상장 종이였던 것이다.

월북작가의 작품을 소지하였다며 '이적표현물 소지죄'를 빌미로, 고문을 자행하고 자술서 쓰기를 강요했다. 평소 사회비판적 의식을 갖고 있던 젊은 교사들을 국보법 위반으로 엮으려고 맘먹으면 엮을 것이 천지였다. 봄날 뒷산에서 4.19를 추모했다, 술집에서 북한체제 이야기를 했다, 5.18 이야기를 했다 등등. 오송회 사건은 시집 <병든 서울>을 '결정적 단서'로 삼아 시작됐다.

그러나 시인 오장환(1918~1951)은 해방기 문단에서 빛나는 문학적 성취를 이룬 대표적 모더니즘 시인으로 꼽힌다. 특히 그의 시 '병든 서울'은 해방 직후 우리 현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그 시는 '해방기념조선문학상(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 최종심에 오른 작품이기도 했다. 시 속에 등장한 단어 '인민'은 해방 후 이 땅이 남북으로 대치되기 전 애용되던 말이기도 했다. 당대의 사실로 보아도 북한만의 언어는 아니었던 것이다.

오장환의 시집들은 87년 무렵부터 판금조치 목록에서 풀려 시중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오송회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5년 후였다. 한발 더 나아가, 오 시인의 고향인 충북 보은의 보은문화원은 지난 1996년부터 매년 오장환문학제를 열고 있다. 보석 같은 문인 하나가 한 지역에 얼마나 큰 문화자원이 되는지를 잘 포착한 지방자치 시대의 생리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시를 읽고 낭송한다. 천재로 불린 오 시인의 시를 음미하면서, 한때 그의 시집이 간첩을 만드는 불쏘시개로 악용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다.

사막의 바람이 순식간에 모래를 날린다. 그들을 둘러싼 사건의 전말 역시 겨우 한 세대만큼의 세월도 안 되어 드러나 버렸다. 권력의 잔인한 칼부림에 자신의 젊음과 가족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겼는데, 어디다 하소연해야 할지 그들은 어지럽기만 하다. 한국사회는 어제를 허물어낸 잔해 위에 오늘을 지어 올리느라 바빴고, 그 사이 사람들은 독재권력의 잔혹사를 잊었고, 김연아와 림스키 코르사코프에 열광하고, 오장환의 시집을 탐독한다.

반공을 국시로 삼은 이 나라에서 '간첩죄'는 강력한 것이어서, 아무리 인정 많은 이웃이라도 간첩죄를 뒤집어쓴 그들에겐 측은지심을 느끼지 않았다. 가까이 하면 자신도 간첩죄를 쓸지 모르니 서둘러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동정하지 않아도 미안스럽지 않음'이 오송회 교사들을 대하는 이웃들의 태도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호가 닿지 않은 진공 같은 날들 속에서 오늘을 맞았다.

누구라도 자유롭게 소위 '동구권'으로 해외여행도 가는 마당에, 오송회 교사들은 오래도록 다른 시공간을 살도록 강요받았다. 94년엔가, 박정석씨가 동료 학원강사들과 함께 단체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나중에 일행 중 하나가 박씨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선배님. 실은 우리 모두 여행 다녀온 후 경찰서 불려가서 조사 받았어요. 박 선배님 언행에 특이점이 없었는지 묻더라고요."

어지러운 세월에 먹먹하기는 이들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복직한 어느 교사는 87년 6월 항쟁을 맞아 거리로 뛰어나갔다. 대학생이 된 제자가 그의 옆을 함께 뛰면서 멋쩍게 웃었다. "어릴 땐 주위에서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이 간첩인 줄로 믿었고, 만나면 돌로 찍어버리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오늘 제가 선생님과 함께 시위를 하고 있네요."

사건 당시 법정에 끌려가 거짓 진술을 강요받은 제자들도 있었다. 선생님께 빌렸던 시집 <병든 서울>을 버스에 놓고 내렸던 제자는 오래도록 멍든 가슴으로 살아왔다. 어느 제자는 그의 스승처럼 경찰서로 끌려갔다. 수사관들의 발길질과 구타는 선생과 학생을 구별하지 않았고, 멍투성이가 된 고등학생은 법정에서 자기 스승을 '고발'해야 했다. 그 학생은 2008년 11월 재심 재판정에 다시 증인으로 섰다. "그 당시 워낙 겁에 질려 검사가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하며 눈물을 흘렸다. 청춘을 죄책감에 내어준 채 중년이 돼버린 제자의 등을 스승은 말없이 다독여주었다.

6. 2008년 재심 받던 법정에 울려 퍼진 판사의 시
- 다시 '법원' 앞에서

사법부는 때로 법을 무기로 국민을 보호하기보다 옭아매었다.
▲ 그 이름 법원 사법부는 때로 법을 무기로 국민을 보호하기보다 옭아매었다.
ⓒ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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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진실화해위원회가 오송회 사건이 군사독재 시절의 '조작사건'이었음을 규명했다. 뒤이어 이들은 2008년 11월 광주고등법원에서 재심을 받았고,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만 28년만에, 그것도 사건 당시 1심보다 더 많은 형량을 내려 그들을 절망케 했던 바로 그곳 광주고등법원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교사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날 재심 재판장은 뜻밖의 판결문을 읽었다. "법원에 가면 진실이 밝혀지겠지 하는 기대감이 무너졌을 때 여러분이 느꼈을 좌절감과 사법부에 대한 원망, 억울한 옥살이로 인한 심적 고통 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동안의 고통에 대해 법원을 대신해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판부는 좌로도, 우로도 흐르지 않는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겠습니다."

통상적인 법정에서라면 도무지 듣기 힘든 판결문이었다.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도리어 옭아매던 '법'의 덫에 수없이 당해왔던 그들의 귀에는 마치 판사가 시를 읊는 것처럼 들렸다. 26년 전 그렇게 절규했어도 메아리 없던 재판정에 그날은 시가 울렸다.

그럼에도 그들의 회한이 봄눈처럼 녹아내린 것은 아니다. 누명은 벗었지만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국보법이 있는 한, 전 한 번도 자유를 느낀 적이 없었어요. 누가 창 밖에서 날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 사회엔 궁극적인 자유가 없어요. 내 의식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자유이지, 이 담배를 필까 저 담배를 필까 고민하는 것이 자유는 아니니까요."

그래서인지 오송회 사건 교사들에게는 여전히 법원 재판부의 반가운 고백보다, 이 한 편의 시가 여전히 더 진실에 가깝다.  <마침>

법원   

/ 김광규

지루하게 긴 생애를 살아
허리 굽은 노인이
종교를 믿지 않고
법원으로 간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사무실마다
쌓여있는 기록과 법령집들
미농지와 도장과 재떨이 사이에
법이 있으리라 믿으며
억울한 노인은 지팡이를 끌고
아득히 긴 화랑을 헤맨다

법을 끝내 찾지 못하고
어두운 현관문을 나서며
노인은 드디어 깨닫는다
법원은 하나의 건물이라고
검사실과 판사실과 법정 뿐만 아니라
구내 식당 다방 이발소 양복점이 있고
주차장에는 자동차들이 즐비한
법원은 호텔처럼 커다란 건물이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웹진 씨네트워크의 특집기획 연재물로 5·18기념재단의 취재지원과 진실화해위원회의 협조로 만듭니다. 오송회 사건은 총 3회로 맺습니다.



태그:#오송회, #조작, #국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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