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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라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온다.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다들 한마디씩 할 줄 안다. 그런데 직장인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라고 묻는다면 어떨까? 더군다나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밑줄 긋는 여자>의 성수선이라면 다를 것 같다. "온갖 컬러로 밑줄 그은 문장들은 내 일상 속에서, 내 출장길에서,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살아났다"라고 말하는 성수선은 직장인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수선이 누구이기에 그럴까. 문화평론가인가? 아니면 새로 부상한 북칼럼니스트인가? 아니다. 직장인이다. CJ와 LG전자를 거쳐 삼성정밀화학 해외영업 담당 과장을 맡고 있는, 해외영업의 노하우를 담은 <나는 오늘도 유럽 출장 간다>는 책을 펴내기도 했던 그녀는 영락없는 직장인이다.

 

화학 원자재를 팔기 위해 "오늘도 여권에 잉크 마를 날 없"다는 그녀에게는 독특한 이력이 하나 보인다. 온라인 서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또래에서 누구보다 바쁘다면 바쁘다고 할 수 있는 그녀가 틈틈이 책을 읽고 그것을 서재에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질문은 직장인이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맞닿아있다. 또한 <밑줄 긋는 여자>의 어떤 주제의식이기도 하고 이 책의 숨은 매력이기도 하다.

 

<밑줄 긋는 여자>는 성수선의 독서에세이다. 평론가들의 언어가 아닌, 책 좋아하는 사람의 언어로 쓰여 진 책인데 책을 펼치자마자 책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에 놀라게 된다. 또한 책을 단지 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어느 재료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도 놀라게 된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을 읽고 생각하는 장면이다. <남한산성>은 청나라가 조선을 침범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두 가지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소설이다. '죽어서 살 것인가'와 '살아서 죽을 것인가'라는 의견이다. 전자는 청나라를 상대로 계속 싸워 명예를 지키다가 죽자는 말이고 후자는 항복해서 자존심을 버리되 목숨이라도 살리자는 말이다.

 

이 역사소설에서 저자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직장인들의 어떤 모습을 본다. 누군가는 '굴욕'이라고 할지도 모르는, 스스로 몸을 낮추는 것이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나쁜 것은 영혼까지 파는 것이다. 몸을 낮추더라도, 영혼을 꼿꼿하게 지켜낸다면 어떤가.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의식의 확장이 중요하다. 성수선의 글은 묻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라고.

 

누군가의 에세이를 읽고 무조건적으로 응원해주는 것의 힘을, 누군가의 책을 읽고 힘든 과정을 거친 뒤에야 즐거움이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들은 어떤가. 성수선은 '독서'를 '삶'과 하나로 만들며 독서의 이유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준다. 직장에서 책이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하는 많은 장면들은 어떨까. 그것부터가 이미 직장인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있다.

 

<밑줄 긋는 여자>의 부제는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다. 부제에서부터 직장인의 책읽기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책 속에 담긴 진정성과 그것이 만드는 '울림'을 보건데 그 어떤 책보다 독서의 이유를 절실하게 깨닫게 해준다. 하기야 책이 가출한 열정까지 돌아오게 한다고 말하니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전문가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의 것보다 더한 진심이 담겨 있다. 성수선의 독서에세이 <밑줄 긋는 여자>, 근래에 나온 그 부류의 책 중에서 마음을 흔드는 힘이 가장 돋보인다.


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엘도라도(2009)


태그:#독서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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