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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클럽은 여름휴가가 다가오는 7월이 되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봄, 가을, 겨울에는 대체로 한산해서 원하는 기구를 이용해 운동하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여름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벤치 프레스라도 한 번 제대로 하려면 기구 근처에서 최소한 십 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러닝머신 또한 마찬가지여서 기다림에 지쳐 자전거나 다른 대체 방법을 찾는 경우도 많다.

트레이너 딱 한 명 있는 곳에서 1년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동네에서 운영되는 작은 사업장이어서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쌌다. 편한 차림으로 부담없이 가서 어슬렁거리며 운동 기구 몇 번 흔들다 보면 한 시간이 금방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술이나 텔레비전 감상으로 밤을 보내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살은 어렵지 않게 빠졌다. 6개월 동안 약 8킬로그램 정도의 감량에 성공했다. 뱃살도 많이 들어갔다.

하지만 여름만 되면 운동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작년도 그랬고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텔레비전, 잡지, 인터넷에서 극성스럽게 떠들어대는 몸짱, S라인 열풍 때문일 것이다. 썰물, 밀물 마냥 쑥 들어왔다가 쑥 나가는 인원들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대개 시야에서 사라졌다. 1년 365일 꾸준히 운동하는 이는 대개 몇 명 정도로 정해져 있다.

급하게 몸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체계적으로 하기 보다는 무리하는 쪽을 택한다. 트레이너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아령이 됐든, 벤치 프레스가 됐든 자신의 근력에 따라 들 수 있는 무게는 정해져 있다. 많이 든다고 좋은 게 아니라, 적당한 무게를 꾸준히 하는 게 좋다고 아무리 떠들어대도 소용없다. 무거워 휘청거릴 정도의 역기를 간신히 들어 몇 번 까닥거리다가 내려놓고는 팔뚝을 대형거울에 비춰본다.

 "아, 근육 좀 생긴 것 같지 않냐?"
 "휴가 때까지 죽어라 해야지."

두세 명의 사내들은 헬스장에서 보내는 시간의 삼분의 일은 떠들고, 삼분의 일은 여자를 훔쳐보고, 나머지 삼분의 일 동안에만 운동을 한다. 집중력 있는 한 시간이 산만한 두 시간보다 훨씬 나을 텐데. 트레이너에게 말을 건네도 그저 웃고 만다.

 "여름에는 저런 사람들 천지예요. 내버려 두세요."

땀에 흠뻑 젖은 운동복을 벗고 빨갛게 달아오른 몸을 보면서, 샤워기를 틀어 세찬 물줄기를 맞으며 그들은 짜릿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아, 오늘 하루도 보람찼구나.' 그런 사람들은 여름휴가가 지나고 나면 몸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갈 테고, 헬스클럽에 나오는 횟수도 급격히 줄어든다. 한 달에 다섯 번도 보기 힘들다. 그러다 계약기간이 다 되면 다시 연장을 하거나 다른 곳을 알아보거나.

 거울 앞 자신과 마주하자

이래서 못 한다, 저래서 안 된다는 핑계를 만들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운동은 이 악물고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하기 쉽지 않다. 특히나 매일 대부분을 사업장, 사무실에서 보내는 직장인들은 더욱 더 그러하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데 오늘은 쉬자고 생각하면 그게 다음 날이 되고, 그게 곧 일주일이나 한 달이 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몸짱 연예인들은 그저 약 잘 먹고 시간 많아서 그런 거니까. 몸 좋은 누구누구를 욕하고 씹는 재미로 맥주 한 잔 하면서도 늘어가는 건 운동실력이 아니라 뱃살뿐이다. 아니, 또 하나 있다. 변명도 늘어간다. 그렇게 벽을 쌓고 아무런 변화도 없이 남을 욕하기만 하면서 산다. 신세한탄은 술만 먹으면 끝이 없고, 마음만 먹으면 나도 권상우나 2PM의 재범 못지않게 만들 수 있다고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댄다.

근력운동을 할 때는 보통 대형거울 앞에 서서 한다. 잘난 척 한다거나 봐달라는 게 아니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힘들어하는 자기 자신과 똑바로 대면하기 위해서다. 내 몸의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어느 곳에 힘이 들어가는지. 그럴 때마다 더 이 악물고 한 개 더, 한 개 더. 당장 큰 진전이 없어도 실망을 하지 않은 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운동을 다니진 않기 때문이다.

이미지에 죽고 사는 현대사회는 사람들에게 겉멋을 부추긴다. 누구한테 잘 보이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더 많은 인기를 얻기 위해. 곁눈질도 해가면서.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유행(트렌드)이라는 신을 숭배해야 하니까.  

하지만 운동할 때는 어느 누구도 필요 없다. 거기에는 운동을 하는 본인만이 우뚝 서 있다. 건물 밖 달빛, 혹은 햇빛도 벽을 뚫고 들어와 그를 비출 것이다. 그가 주인공이다. 그건 유행이나 다수의 흐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로지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90년대 유행했던 노래의 가사처럼 세상의 주인공은, 적어도 그 때만큼은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운동을 하기 전에 해야 할 것은 준비운동만이 아니다. 누구를 위해 역기를 들고,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지.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면 언제나 쳇바퀴 돌 듯 똑같은 곳을 맴돌기만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뱃살아 미안해' 응모글



태그:#헬스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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