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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야심작이자 기대작인 <태양을 삼켜라>(매주 수·목 밤 10시)에 대한 기사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얼마 전까지 망설였다. 사실 기사거리는 많았다. <올인>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그 두 주역이었던 유철용 PD와 최완규 작가가 6년 만에 다시 뭉쳤고, 아프리카, 미국 라스베이거스, 제주도 올 로케이션 등으로 인해 볼거리가 가득하고, 게다가 지성·성유리·전광렬·유오성 등의 내로라하는 스타배우들이 총출동하는 <태양을 삼켜라>는 분명 쓸 게 많은 드라마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런 몇몇 화제성을 적당한 미사여구로 버무려 '기대된다'는 식의 기사를 쓰긴 싫었다. 그런 식의 '홍보성' 멘트는 딱 질색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기사를 쓰고 싶게 만드는, '이거다!' 싶은 게 필요했다. 그게 장점이든 문제점이든. 지지난주 3회까지의 방송에선 그런 게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기사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4, 5회가 방영되었고, 5회까지 시청한 뒤에서야 드디어 쓸 만한 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시청률 추이를 한 번 보자. 1회 시청률은 14.8%(TNS미디어코리아)로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첫 회 만에 동시간대 1위를 달성한 <태양을 삼켜라>의 상승세는 이후에도 계속 됐다. 2회 16.5%(이하 동일기준)에 이어 3회 18.5%까지 시청률은 상승일로였다. 전작 <시티홀>이 종영할 때까지 넘지 못했던 '마의 벽' 시청률 20%가 눈앞에 잡힐 듯했다. 그러나 4회에서 시청률은 다시 16.2%로 내려앉았고, 뒤이은 5회 역시 16.8%에 그쳤다.

 

시청률이라는 것은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 반응의 척도다. <태양을 삼켜라>에 대한 시청률의 추이를 살펴보면 시청자들은 방영 전부터 높은 관심과 기대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회부터 15%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작 <시티홀>의 후광 효과와 더불어 스페셜 방송에서 보여준 범상치 않은 스케일과 <올인> 효과가 맞물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관심과 기대는 이후 2, 3회를 통해 점점 올라갔다. 그런데 4회에서 시청률이 다시 떨어졌다. 20%를 목전에 뒀던 시청률은 다시 16%로 내려앉았고, 이은 5회에서도 소폭 상승했지만 제자리걸음과 다름없었다. 올라가도 시원찮을 시청률이 불과 일주일 사이에 2%나 떨어졌다는 것은 극의 내외적으로 발생한 어떤 '문제'로 인해 시청자 층이 이탈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 때문일까?

 

'대작' <태양을 삼켜라>, 왜 주춤거릴까

 

눈에 띄는 문제점으로는 우선 드라마의 이야기 전개가 시청자들의 예측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5분 뒤, 10분 뒤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빤히 보인다는 것. 시청자 입장에서 이것만큼 맥 빠지게 만드는 일은 없다. <태양을 삼켜라> 4회에서 태혁(이완 분)은 술에 취해 수현(성유리 분)에게 집적대던 자신의 친구를 잘못 때려 죽게 만든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죄는 정우(지성 분)가 대신 뒤집어쓴다.

 

물론 정우가 처음에는 출세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장회장(전광렬 분) 수하에 들어가지만, 그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이후 그들과 맞서 싸우게 된다는 극의 큰 흐름에 있어서 정우가 태혁(혹은 장회장)의 비열하고 야비한 이면을 목격하고 그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장치가 한두 개 쯤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자신을 대신해서 죄를 뒤집어 쓴 정우에게 태혁이 느끼는 일말의 미안한 감정이 훗날 수현을 사이에 둔 연적으로 발전하여 느끼게 되는 라이벌 의식, 혹은 열등감 등의 감정과 뒤섞여 나약했던 태혁이란 캐릭터를 '악역'에 가깝게 바꾸어 정우의 대척점으로 성장케 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는 점도 맞다.

 

그러나 그런 장치가 필요했다고 하더라도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간' 설정은 너무 상투적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태혁이 친구를 때려죽인 직후 '정우가 대신 감옥에 가겠구나'하고 예측했을 것이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발상과 설정을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라면, 더구나 최완규 정도 되는 작가라면 지금까지 그려졌던 것과는 다른, 상투적이지 않은 장면을 그렸어야 한다.

 

시청자도 예측할 수 있는 '뻔한' 전개가 문제

 

최근 30~40%가 넘는 시청률로 안방극장을 평정한 두 드라마 <선덕여왕>과 <찬란한 유산>을 보자. 이 두 드라마는 전형적인 영웅 탄생 이야기, 전형적인 캔디형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상투적이지 않은 장치와 설정을 마련해 극에 활력을 불어넣고 시청자를 즐겁게 하고 있다. 바로 '미실의 비밀'과 '백성희의 악행'이 그것이다.

 

지난 몇 회 동안 <선덕여왕>을 둘러싼 최대의 화두는 바로 '사다함의 매화'였다. 미실(고현정분)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사다함의 매화는 철저하게 베일에 둘러싸인 채 그 정체를 숨겼다. 극 중에서도 사다함의 매화가 무엇인지 아는 인물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미실의 적도 아군도 이것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 역시 사다함의 매화가 무엇인지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찬란한 유산>에서 캔디 고은성(한효주분)을 눈엣가시로 여기며 사사건건 방해하고 망치려 드는 백성희(김미숙분)의 악행은 늘 새로운 사건을 만들고 극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은성의 동생 은우를 내다버린 것에서부터, 은성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장숙자(반효정분)에게 찾아가 은성을 중상 모략해 그녀를 궁지에 모는 것까지…. 그녀의 악행은 회를 거듭할수록 어디로 튈지 몰랐고 시청자들은 그저 조마조마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태양을 삼켜라>에는 이런 의외성이 없다. 밑바닥 출신의 한 남자가 때론 배신당하고, 때론 의리 넘치는 동료 덕에 목숨을 구하고, 때론 가슴 아픈 사랑을 하면서 점차 성공해 나가는 익숙한 이야기. 이 익숙한 플롯의 흐름 속에 필요한 것은 의외성을 던지는 무언가, 또는 시청자가 물끄러미 브라운관을 바라보다 '어?' 하는 탄성을 내뱉게 만드는 1%의 반전이다. 적어도 지금의 <태양을 삼켜라>에선 그걸 찾아볼 수 없다.

 

성유리·이완, 두 주연배우의 어색한 연기

 

두 주연 배우의 부자연스러운 연기도 문제다. 극의 네 남녀 주인공 가운데 지성과 소이현의 연기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성유리와 이완의 연기는 함량 미달에 가깝다. 부잣집 딸에서 한순간 빈털터리로 전락한 뒤 유학자금을 모으기 위해 억척스럽게 돈을 버는 귀여운 억척녀 수현(성유리분)은 그러나 유쾌하고 밝은 외면과는 달리 내면에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상처가 가득한, 두 가지 면을 지닌 캐릭터다.

 

성유리의 연기는 아직 이 수현을 제대로 표현해내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전작 <쾌도 홍길동>에서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며 '국어책을 읽는 듯한' 연기 수준에서는 벗어났다는 평을 들었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부정확한 발음이 눈에 띈다. 내면 연기 역시 매끄럽지 못했다. 부모님의 기일에 맞춰 제주도를 찾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대목에서 그녀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상념에 잠긴 수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이완 역시 어설프긴 마찬가지다. 이완이 연기하는 태혁은 이후 극중에서 정우와 대립하며 그의 라이벌로 성장하는 인물.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과 그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장회장에게 반항한다. 그래서 그가 장회장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은 태혁이 자신의 진심을 장회장에게 털어놓는 중요한 대목이었다. 그런데 이완의 연기는 그런 태혁의 울분을 절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혀가 짧은 듯 약간은 새는 발음, 인상을 쓸 때마다 조금씩 생기는 미간의 주름 외에는 변함없는 표정, 고저 없는 목소리까지…. 죽은 어머니의 시신을 옆에 두고 거지처럼 살았던 자신의 유년 시절의 아픈 기억을 토로하는 태혁의 울분에 가득 찬 모습을 이완에게선 느낄 수 없었다. 그와 마주보며 연기하는 전광렬의 호연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그런 연기에 시청자가 공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태양을 삼켜라>, 외면받지 않으려면...

 

당초 <태양을 삼켜라>의 목표는 '마의 벽' 시청률 30%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3회 만에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보이면서 목표달성에 청신호가 켜졌지만, 이후 시청률은 다시 떨어지고 말았다. 물론 고작 2회 정도 시청률이 떨어졌다고 해서 다시 반등하지 말란 법은 없다. 무엇보다 6회부터 본격적인 라스베이거스 내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아프리카 로케이션 촬영분도 대기 중에 있다.

 

그러나 볼거리만으로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더 이상 시청자들은 화려한 볼거리나 인기 스타의 출연에 덮어놓고 올인하지 않는다. <태양을 삼켜라>가 화려한 볼거리, 큰 스케일 등의 외적인 면에 치우쳐 밋밋하고 상투적인 내용 전개와 개성 없는 캐릭터로 일관한다면, 마찬가지로 120억원의 제작비와 송일국·장진영 등의 스타 캐스팅, 라스베이거스, 키르키스스탄 등지의 해외 로케이션 등을 통해 '대작'임을 뽐내고도 10% 초반의 시청률로 무너졌던 비운의 대작 <로비스트>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


태그:#태양을 삼켜라, #올인, #지성, #성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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