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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악법이 날치기 통과되던 날, 적법성 여부를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은 애초에 막을 수 있었다. 선거철만 되면 보수적인 성향이 있는 이들의 투표율보다 진보적인 성향이 있는 이들의 투표율이 낮으며, 노년층보다 젊은 층의 투표참여율이 낮은 것은 선거혁명을 이룰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현실정치에 염증을 느낀 젊은 층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나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이번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아버님은 올해 87세로 아직도 지역사회와 관련된 활동을 쉬지 않으신다. 그뿐 아니라 그간 치러진 선거에서 투표권을 단 한 번도 행사하지 않으신 적이 없다.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맡겨두어도 좋을 것이라고, 젊은이들이 살아갈 나라를 노인들이 결정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의견을 드리면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기에게 주어진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왜 그걸 포기해? 그러니까 노인네들만 잡으려고 하지. 젊은이들이 투표권 포기 안 하면 자기들이 원하는 사람 뽑을 수 있는데, 기껏 권리주였을 때는 포기하고 나중에 촛불 들면 뭐해. 정신 차려야 해."


아무튼, 우리 집안은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으로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일이 터지면 그걸 화제로 올렸다가는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많다. 그런 경험 끝에 요즘은 아예 정치적으로 큰일이 터지면 아예 침묵을 한다. 피차간에 조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굵직한 사건들은 기어이 화제로 올려진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서는 다행스럽게도 내가 봉하마을이며 광화문이며 아이들까지 데리고 조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데다가 사람의 죽음을 놓고는 그리 쉽게 평가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그냥저냥 넘어갔다. 단지 타살이냐, 자살이냐의 문제로 조금 옥신각신하기는 했다. 나의 입장은 자살이지만 그렇게까지 몰고 간 이들이 나쁘다는 견해이고, 아버지는 그래도 자살은 아니라는 태도이셨다.


그런데 이번 미디어법에 있어서는 확연히 달랐다. 미디업법 직권상정이 있기 며칠 전 내가 속해있는 단체에서 국회의사당을 방문해서 미디어법에 대한 반대 뜻과 직권상정 반대 입장을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에게 전하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미디어법 반대 관련 집회를 하고 돌아왔다.

 

그걸 뻔히 아는 아버님이 마침내 폭발을 하셨는지 저녁을 드시다 말고 "빨갱이 새끼들, 너도 똑같아!" 하시며 민주당을 싸잡아 비난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정치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가족관계마저도 산산조각이 나는 희한한 나라구나 절망했다. 80평생을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오신 분인데, 설득을 시킨다는 것은 무리다 싶어 항의의 뜻으로 밥을 먹다 말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리고 며칠 서먹서먹하게 보냈고, 마침내 한나라당의 날치기 직권상정으로 미디어관련법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다. 80평생, 보수주의자를 자처하신 아버님, 당당하게 나는 이번에도 **당을 찍었고, **을 찍었다고 말씀하시던 아버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다.


"그놈들 하는 짓 보니까 이건 도가 넘었어. 나도 그놈들 편이었지만, 이건 말도 안 돼. 그런 나쁜 놈들이 어딨어 그래. 국민이 그렇게 많이 반대하면 이유가 있는 건데, 그렇게 밀어붙이는 것도 모자라서 대리투표까지 하고, 게다가 부의장이란 작자는 투표종료를 했으면 한 거지 뭐 다시 해서 법적인 하자가 생기게 해. 그런 놈들이 국민 세금으로 먹고사는 놈들이 맞아? 이놈들 내가 다음에 찍나 봐라. 상식이 없어. 기본이 안 된 거야. 이게 무슨 법치주의 국가야."


이게 무슨 조화인가?

 

굳이 나누자면 진보주의자 아들과 보수주의자 아버지가 부자의 연을 맺은 이후 정치적으로 유일하게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고맙다, 한나라당!'


그날, 오랜만에 부자는 힘을 합해 일했다. 장맛비가 많이 내린 탓에 건물 주변 이것저것 정리할 것이 많았는데 오랜만에 손발이 척척 맞는다. 아버님께서 기분이 좋으신지 한 말씀 하신다.


"젊은 사람들, 투표 많이 해야 해. 선거에서 이기면 데모할 일도 없는 거야. 노인네들 죽자사자 투표하는데 왜 이 나라를 이끌어갈 젊은 것들이 투표권을 포기해? 그나저나 노인네들 반성 많이 해야겠어. 이 판국에도 무조건 한나라당 잘했다는 노인네들도 많은 것 같더라. 난 그동안 한나라당이면 다 지지했는데 이번만큼은 아니야."


아버님의 그 마음이 얼마나 갈지 나는 솔직히 모른다.

 

그러나 내가 투표권을 가지게 된 이후 처음으로 어떤 입장에 대해서 하나 된 순간이었다.

언론악법 날치기 통과, 한나라당 고맙다!


태그:#날치기 통과, #언론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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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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