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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쌍둥이 자매로 설정된 덕만공주(이요원 분)와 천명공주(박예진 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쌍둥이 자매로 설정된 덕만공주(이요원 분)와 천명공주(박예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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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출쌍생 성골남진' 즉 '왕이 쌍둥이를 낳으면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른다'라는, 가만히 음미해보면 등골이 오싹해질 수도 있는 예언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또다시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쌍둥이 자매의 출생을 다룬 2부에서 부각된 바 있는 이 예언에서 공포감을 주는 부분은 앞의 '어출쌍생'이 아니라 뒤의 '성골남진'이다. 성골 남자의 씨를 말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재앙의 전 단계가 되는 일이기에 어출쌍생을 경계하는 것일 뿐, 왕이 쌍둥이를 낳는 행위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20일, 21일에 방영된 제17부와 제18부에서는 출생의 비밀을 캐려는 덕만(이요원 분)의 시도 때문에 왕실과 조정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이 과정에서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란 예언이 덕만의 출생 비밀을 밝히는 유력한 단서로 재차 부각되었다.

갓 태어난 덕만이 부모의 품을 떠나 평민의 신분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예언의 실현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가 공주 신분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 예언과의 관련성이 반드시 해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런 관련성이 입증되어 덕만이 신분을 회복한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이로우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성골남진을 초래할 어출쌍생의 주범인 진평왕 부부가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될 것이고, 그런 호기를 미실(고현정 분)이 놓칠 리 없기 때문이다.

'성골남진'이 정말 '어출쌍생' 탓일까?

'어출쌍생 성골남진'에 관한 드라마 <선덕여왕>의 위와 같은 설정은 그저 픽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은, 드라마 속 이 예언이 일정 정도는 실제적 사실관계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출쌍생(A)->성골남진(B)'이라는 예언 구조에서, B부분은 실제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골남진(聖骨男盡)은 <삼국유사> 권1 왕력(王曆) 편에 나오는 표현이다. 여기서는 선덕여왕이 즉위하게 된 이유를 두고 "성골 남자가 없어져서 여왕이 세워지게 된 것"(聖骨男盡, 故女王立)이라고 설명했다. 문제의 '성골남진'을 여왕 등극의 원인으로 제시한 것이다.

한편, 실제의 진평왕 시대에는 A부분인 '어출쌍생' 즉 '왕이 쌍둥이를 낳은 사실'이 문제된 적이 없었고 또 그것 때문에 '성골 남자의 대가 끊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존재한 적도 없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실제 존재했던 '성골남진'이라는 상황에 착안, 거기에 '어출쌍생'이라는 픽션을 덧붙여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진평왕의 공주들을 쌍둥이로 설정한 다음에, 그것이 '성골남진'의 원인이었다는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성골남진' 만큼은 실제 역사에서 존재했다면, 그런 상황에 대해 신라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드라마에서처럼 그들은 성골 남자의 대가 끊어지는 것에 대해 어떤 공포심 같은 것을 품었을까?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출쌍생'

신라 역사에 관한 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현재로서는 가장 권위 있는 사료이지만, 이런 책에서는 성골남진에 관한 신라인들의 반응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곤란하다. 이에 비해, 위작 논란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신라사회를 비교적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가 '성골남진'에 대한 신라인들의 반응을 그나마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사료라고 볼 수 있다.

<화랑세기>에 기록된 신라인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진평왕 시기에 '성골남진' 상황을 둘러싸고 전개된 후계자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화랑세기> 제13세 풍월주 김용춘 편에 소개된 사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첫 번째 왕후인 마야왕비와의 관계에서 적자가 생기지 않자, 진평왕은 자신의 사촌이자 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수(용춘의 형)에게 왕위를 물려줄 목적으로 용수를 장녀인 천명의 남편으로 만들었다. 
② 마야왕비가 죽은 뒤에 진평왕은 차녀 덕만을 후계자로 만드는 한편 천명과 용수를 궁 밖으로 내보냈다. "선덕공주(덕만)가 점차 자라니, 용봉의 자태와 태양의 외표가 왕을 이을 만했다"는 기록에서 나타나듯이, '용봉의 자태와 태양의 외표' 즉 제왕의 면모라는 측면에서 여자인 덕만이 남자인 용수보다 더 낫다는 점이 후계자 교체의 사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③ 그 후에 두 번째 왕후인 승만왕후가 왕자를 낳았고, 승만은 이 왕자를 후계자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④ 하지만, 승만이 낳은 왕자는 어린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용춘(훗날 선덕여왕의 남편)이 지방으로 좌천되는 선에서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네 가지 사실관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진평왕이 남자를 후계자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2차례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자인 덕만을 후계자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자기에게 적자가 없다는 이유로 사촌인 용수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지만, 나중에는 천명과 용수를 출궁시키면서까지 덕만을 새로운 후계자로 삼았다. 이때 남자인 용수를 제치고 여자인 덕만을 후계자로 삼은 근거는 제왕의 면모 즉 후천적 능력이었다.

그 후에 두 번째 부인인 승만왕후가 왕자를 낳았는데도 진평왕은 후계자 교체를 고려하지 않았다. 조급해진 승만왕후가 후계자 교체를 시도해 보았지만, 이로 인해 초래된 것은 왕자의 죽음뿐이었다. 승만왕후의 시도가 허무하게 끝난 사실은, 당시의 지배층 내에서 새로 태어난 왕자를 지지하는 세력보다는 여자인 덕만을 지지하는 세력이 더 강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성에 관한한, 서양보다 진보적이었던 '신라'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란 예언 때문에 시녀 소화(왼쪽)과 함께 신라를 떠난 어린 덕만(이요원분).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란 예언 때문에 시녀 소화(왼쪽)과 함께 신라를 떠난 어린 덕만(이요원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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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사실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왕에게 남자 후계자가 없는 '성골남진'의 상황이 신라인들에게 중차대한 위기로까지 인식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신라인들이 전통적으로 남자 국왕에 익숙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여자 국왕의 등극을 국가적 위기로까지 인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중차대한 국가적 위기로 인식되었다면, 용수에게서 덕만으로 후계자가 바뀌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또 덕만에게서 왕자로 후계자가 바뀌는 것을 막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남자 왕위계승권자들이 있었음에도 덕만이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고 또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신라인들의 의식 속에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은 최악'이라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남자가 왕이 되는 게 최선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이 존재했기에 그런 일들이 발생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속에서는 '성골남진'의 상황이 매우 중차대한 국가적 위기로 설정되었지만, 위의 사료들에서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이 실제의 신라인들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 만한 상황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이후에 태어나서 남성 중심의 유교적 가족질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남자 왕위계승권자의 부재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 만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현대 한국인들도 아직까지는 이런 관념에서 완전히 탈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신라인들은 유교보다는 신선도나 불교에 더 친숙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여성 신(神)과 여성 사제의 존재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고구려 첩자에게 유인된 김유신을 삼산호국여신(三山護國女神)이 구출했다는 이야기를 신라인들이 믿은 사실이나, 왕녀가 주관하는 국가적 제사에 신라인들이 참여한 사실 등을 볼 때에 그러하다. 

여성의 역할에 관한 한 신라의 신선도가 서양의 기독교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신선도의 경우에는 여성이 신이나 사제가 될 수 있었던 데에 비해, 기독교의 경우에는 성경 고린도전서 11장 3절에 나오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라는 구절에서 잘 드러나듯이 교회의 핵심 역할이 '머리'인 남자들에 의해 장악되었음 부정할 수 없다.    

신선도의 영향을 받아 여성의 종교적 역할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기에, 신라인들이 여성 국왕의 등극에 대해서도 별다른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신라인들에게는 '성골남진'이라는 것이 '호들갑'을 떨 만한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차선'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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