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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에서 덕만을 보필하는 죽방역을 맡은 배우 이문식.
 <선덕여왕>에서 덕만을 보필하는 죽방역을 맡은 배우 이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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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면서 웃음과 재미를 주는 등장인물이 있다. 고도(류담 분)와 짝궁이 되어, 덕만(이요원 분)의 곁을 지키는 죽방(이문식 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신라에 갓 들어온 탓에 아무 물정 모르는 덕만에게 "문노를 찾아주겠다"며 접근해서 소액의 사기를 친 것이 인연이 되어 덕만과 가까워지게 된 죽방은 이후 덕만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28일에 방영된 제20부에서는, 덕만을 도와 진평왕에게 비밀상소를 올린 일로 인해 죽방이 설원(전노민 분) 앞에 끌려가 문초를 당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누가 그런 일을 시켰느냐?"는 설원의 물음에 대해, 일단 자기 목숨은 건져야 하니까 죽방은 "덕만이 시킨 일"이라고 사실대로 불었다. 이로 인해 미실(고현정 분) 측에서 덕만의 정체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낭도 죽방의 활약상을 보면서, 우리는 화랑도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박중훈·정진영 주연 영화 <황산벌>에서 묘사되었듯이 화랑은 10대 청소년들이었고 그런 화랑을 따르는 낭도 역시 청소년들이었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기존 관념이다.

그런 통념을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나이 40이 넘어 보이는 죽방의 존재가 여간 어색한 게 아니다. 자기 자신도 그게 어색했던지, 덕만·죽방·고도가 낭도로 함께 편입된 장면이 묘사된 제8부(6월 16일 방영)에서 죽방은 "내가 이 나이에 낭도가 되어야 하느냐?"며 자랑 섞인 푸념을 하기도 했다. 어디를 보나, 드라마 속 죽방은 일반 낭도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예외적인 낭도'다.

나이 든 죽방은 어떻게 화랑이 되었을까

'화랑도' 하면 흔히 청소년 조직을 연상하는, 위와 같은 우리의 통념은 과연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그 출발점은 어느 역사학자의 해석이었다. 그 학자는 누구일까?

화랑도를 연구했다면 당연히 한국인 학자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 흥미롭게도 그는 미시나아끼히데(三品彰英, 1902~1971년)라는 일본인 학자다. 한국인 학자들을 대신해서 화랑도 연구를 개척한 그는 "화랑도의 기원은 삼한 시기 촌락공동체 내부의 청소년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화랑도의 기원을 삼한시대의 청소년 조직에서 찾은 것은 그의 인식 속에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선입견이란 '화랑도는 청소년 조직일 것'이라는 인식이다. 그런 선입견이 작용했기에 신라 이전의 청소년 조직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화랑도를 청소년 조직이 아니라고 인식했다면, 그는 분명히 신라 이전의 다른 조직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미시나아끼히데의 영향을 받은 탓에, '나의 조국'이란 노래에서 "삼국통일 이룩한 화랑의 옛 정신을" 찬미한 박정희는 20대 초반의 청년 예비장교들을 화랑도의 이미지와 연관시켰다. 우리가 드라마 속의 죽방을 보면서 '낭도가 왜 저렇게 늙었어?'라는 느낌을 갖는 것은 기본적으로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의 이미지 조작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오늘날 20대 초반의 청년 예비장교들은 과거의 그 어떤 군사조직 못지않은 값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화랑도의 이미지를 청년 군사조직에 국한시키는 것은 화랑도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화랑도를 청년 군사조직에 국한시킬 근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60살을 넘긴 뒤에도 화랑도 안에 머문 '찰인'

<선덕여왕>의 한 장면.
 <선덕여왕>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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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를 읽다 보면, 화랑도가 단순히 청소년 조직으로만 파악되기에는 '너무 늙은' 조직이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특히 우리는 화랑의 지휘를 받는 낭도들이 드라마 속의 죽방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김유신(595~673년)보다 10여 년 먼저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찰인이라는 낭도를 들 수 있다. <화랑세기> 제24세 풍월주 천광공(재임 643~647년) 편에 따르면, 찰인은 나이 60을 넘긴 뒤에도 계속해서 화랑도 안에 머물렀다. 그는 낭도 중에서도 하사관 격인 낭두(郎頭)의 위치에 있었다.

620년대 이후 화랑도의 주류가 가야파로 바뀐 분위기를 활용하여 화랑도의 실세로 떠오른 찰인(가야파)은 마치 상선(전임 풍월주)이나 된 것처럼 위세를 부렸다. 오늘날로 비유하면, 하사관이 전임 참모총장 행세를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찰인의 아들과 사위들이 낭두직을 많이 장악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화랑도의 중하위 조직이 찰인의 사람들로 채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처첩과 자녀가 백 명을 헤아릴 정도였다는 기록으로부터 그의 권세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찰인에 비하면 <선덕여왕> 속 죽방은 '어린애'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낭도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권세를 부린 것은 비단 찰인뿐만이 아니었다. 화랑도를 쇄신하기 위해, 아니 엄밀히 말하면 화랑도 내부의 가야파를 숙청하기 위해 개혁의 칼날을 들이댄 풍월주 천광공(대원신통파 미실의 증손)이 찰인을 파면한 다음에 낭두의 정년을 계급에 따라 60세·55세·50세·45세·40세로 한정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화랑도 안에는 노년과 중년의 낭도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었다.

노년과 중년의 낭도들이 많았다는 기록을 보면, 아직 40대에 불과한 드라마 속의 죽방은 그렇게 늦은 나이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환갑을 넘긴 찰인에 비하면 그는 '어린애' 같은 존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낭도들이 이처럼 나이가 많았다는 점은, 화랑도를 청소년 조직으로 인식하는 것이 역사적 실제에 부합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모여 정치·종교·군사 등의 여러 방면에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에 사회통합이라는 목표를 추구한 조직이라고 이해하지 않고서는 화랑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낭도들이 그처럼 나이가 많았다면, 그런 낭도들을 어린 화랑이 어떻게 통제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의문은 어렵지 않게 풀릴 것이다. 열 몇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양반 도령의 명령을 나이 많은 머슴들이 고분고분하게 따르던 조선시대의 상황을 연상해 보면 될 것이다.

'서로 신분이 같은 경우에는 나이가 중요하지만 신분이 다른 경우에는 나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점은 현대사회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60살 가까운 이사가 아직 10대에 불과한 '회장님 손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나 환갑을 넘은 교회 장로가 30대 목사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양쪽의 신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화랑도의 경우에도 드라마 속의 죽방 같은 나이 많은 낭도들이 김유신 같은 어린 화랑의 명령에 복종할 수 있었던 것은 낭도와 화랑 간의 커다란 신분 차이 때문이었다. 낭도는 누구나 될 수 있는 자리인 데에 비해, 화랑은 원칙상 귀족이나 왕족이 아니고서는 될 수 없는 자리였다.

화랑은 중장년 인물들이 대거 참여한 조직

<선덕여왕>의 한 장면.
 <선덕여왕>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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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같은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화랑도의 실질적 운영은 나이 어린 화랑이 아닌 나이 많은 낭도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리더인 화랑이 나이가 어려 실력이나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나이 많은 낭도들이 실질적 운영을 주도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위와 같은 점들을 볼 때, 드라마 속 죽방처럼 실무능력을 갖추어 화랑도를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낭도들과, 김유신처럼 높은 신분을 갖추어 화랑도의 상징적 구심점이 될 수 있는 화랑들이 모인 조직이 화랑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시나아끼히데나 박정희 군사정권의 주장처럼 화랑도가 단순히 청소년 조직이었다면, 설령 왕실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다 해도 화랑도가 신라사회의 중추적 조직으로 떠오르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 속의 죽방처럼 실무능력을 갖춘 중장년 인물들이 대거 참여한 조직이었기에 신라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강력한 사회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 드라마 속의 죽방은 '예외적인 낭도'가 아닌 '평균적인 낭도'를 대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화랑도는 오로지 군사적 목적만으로 '젊은 예비장교'를 키우는 청소년 조직이 아니라, 사회적 통합이라는 목표 하에 '전체 연령대'가 모인 신라 특유의 사회조직이었던 점을 인식할 때에만, 우리는 드라마 속 죽방의 역할이 결코 어색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태그:#선덕여왕, #죽방, #화랑도, #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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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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