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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비 무서워서 애 못낳겠다'는 소리가 엄살이 아님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강남의 한 영어유치원에 1년 보내는 돈이 국립대 등록금의 4배 수준이라지요? 정부에서는 사교육을 잡는다고 '학파라치'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효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교육비는 점점 부모의 재력에 비례해 극과 극을 향해 치닫고 있는 듯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총 5회에 걸쳐 '사교육? 死교육!' 기획기사를 내보냅니다. 사교육의 메카라 불리는 대치동 학원가 풍경, 사교육비 극과 극 현장, 부모들이 체감하는 사교육비에 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편집자말]
풍선의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른다. 어딜 눌러도 마찬가지다. 현재 사교육 시장의 모습이 이와 같다.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정부가 밤 10시 이후 학원 영업 금지 등의 대책을 내놨으나, 이는 풍선 옆구리를 누르고 있는 꼴이다.

갖은 탄압(?)에도 수그러들 줄 모르고 여전한 사교육의 수요는 다른 쪽으로 뻗어 가고 있다. 바로 고액 과외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시교육청 등이 발표한 개인과외 교습자 수 증가 수치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05년 2만9718명에 불과하던 개인과외 교습자가 2007년 3만7139명에서 2008년엔 4만3355명으로 늘었다.

다년간 고액과외를 해온 전문가를 만나, 부유층의 고액과외 실태와 사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시간당 5만~10만 원, 월수 천만원의 고액 과외 교사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한 장면.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한 장면.
ⓒ 코리아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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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3시, 더운 매연을 맡으며 찾아간 강남의 모임전문 공간에서 그를 만났다. 20대 후반의 말쑥한 얼굴을 한 카일(가명)씨는 이곳이 제법 익숙해 보였다. 알고보니 두 시간에 5000원 정도의 사용료를 내는 이 장소에서 자주 과외를 한다고.

"제 발음 이상하지 않나요?"라는 질문도 해온다. 오랜 유학 생활을 했기에 한국 발음이 어색할까 걱정이 된단다. 조근조근한 말투였지만 노트북에 정리된 자료들과 그의 답변에서 고액과외 전문가다운 내공(?)이 느껴진다.

그는 현재 부유층 자녀를 대상으로 고액 영어 과외를 하고 있다. 어학원 두 곳에서 강의도 병행한다. 미국에서 중·고교를 다녔고 모주립대에서 재무회계를 전공했다. 2년 전 어학원에서 토플 강의를 하게 되면서 사교육 시장에 진출했다. 모 외고에서 외부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친구와 유학생 전문 과외 정보 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조심스럽게 월 수입을 물었다. 이번 달은 1000만 원 정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방학을 맞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까닭이다. 그는 주로 강남, 서초, 목동 쪽의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시간당 5만~10만 원을 받아 한 달에 못해도 200만 원, 평균 300만~400만 원쯤을 '현금'으로 손에 쥔다.

과외비가 많은 편이지만 "이런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은 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카일. 물론 이보다 더 버는 강사들도 있다. 부유층은 학벌이 좋고 경험이 풍부한 선생, 자녀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과외교사의 수업엔 아낌없이 돈을 낸다.

"학원 금지하면 학교 품으로? 웃기는 소리죠"

학원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모습. 강남 대치동의 한 학원.
 학원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모습. 강남 대치동의 한 학원.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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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좀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저희(과외 강사들)끼리는 아주 비웃는 얘기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오히려 그의 수입은 최근 더 늘었다고. 학원 수업은 10시에 끝날지 몰라도 학생들의 사교육은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학원을 금지하면 학교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외를 찾는다. 재력이 있으면 단속을 하든 안 하든 문제될 게 없다.

사교육 수요가 줄지 않은 상황에서 학원 억제 정책을 펴는 것은 과외 시장의 호황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 그렇다면 사교육의 수요는 왜 여전할까. 그는 원인을 '공교육의 경쟁력 부재'로 꼽았다. 강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항의가 들어오는 사교육 시장과 정체되어 있는 공교육은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교육으로 한 달에 1000만 원을 번 그도 자식들에겐 "사교육을 하지 않겠다"고 잘라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공교육이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한 길을 열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차가 심한 학생에게 한꺼번에 똑같은 것을 가르치는 방식의 한계도 지적했다. 그렇다고 사교육 없는 세상이 올까? 그의 대답은 "No"였다.

다음은 카일과의 일문일답.

- 어떤 계기로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게 되었나.
"보통 이 일을 시작하게 되는 사람들의 경우 대학생 시절에 돈을 벌려고 시작했는데 벌이가 직장생활보다 훨씬 낫고 해서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 다니는 것보다 편하기도 하고."

- 고액 과외시장의 시세가 어느 정도인가.
"못 벌 때는 월 200만 원 정도이고 이번 달 같은 경우는 천만 원. 보통 때는 300만~400만 원쯤 번다. 시간당 5만~10만 원, 많게는 15만 원까지 받아봤다. SAT같은 경우는 시세가 시간당 4만~10만 원, 최대 15만 원까지, 토플은 3만~8만 원 정도이다.

그런데 정말 실력 있는 강사의 경우는 이런 시세를 뛰어 넘기도 한다. 일례로 뉴욕에서 의학박사를 취득하고 온 강사는 시간당 20만 원 받는 경우도 있었다. 자녀를 그런 쪽으로 진학시키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이 수업뿐만 아니라 다른 쪽으로 더 도움되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부가가치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방학이면 수요 폭발적... 월수 1500만 원"

- 어떤 학부모들이 어떠한 경로로 이런 과외를 찾는가?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런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은 늘 있다. 학부모들도 학벌이 좋고 교육열이 굉장히 높다. 고액 과외 정보 업체가 여러 곳 있고, 학부모들 입소문도 있고, 학원을 통해서 '이 선생님과 과외를 하고 싶다'고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 주로 어떤 학생들을 많이 가르치나.
"대부분 강남, 서초, 목동, 분당 쪽 학생들이 많다. 송파 쪽에도 있고, 의외로 용산, 일산이나 파주 등의 경기지역도 많다. 유학 준비생들도 있고 해외 유학 초기에 한국에 일시 귀국해서 과외를 많이 한다. SAT나 영어 문법, AP 과학 등이 주요 과목이다.

한국 대학을 목표로 하는 경우 토플 과외를 많이 한다. 특기자 전형으로 토플 점수 115점 정도면 고대 지원이 가능하니까. 중고등학교 시절에 2~3년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경우 어학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 진학을 많이들 준비한다."

- 부유층이 선호하는 과외 교사의 기준이 있는지.
"가장 좋아하는 건 학벌 좋은 선생님이고 또 과외 경험을 중요하게 본다. 나이 어린 강사보다는 대학교 3~4학년 이상을 선호한다. 유학 준비생, 유학생 과외의 경우에는 강사의 해외 경험이 필수다. 모든 교과목을 영어로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들을 원한다."

- 방학을 앞두고 과외가 더 많이 들어오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수업을 더 못 받을 정도다. 풀타임으로 뛰면 1500만 원까지도 번다. 다섯 배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사교육으로 돈 벌지만, 내 자식 사교육은 안시킬 것"

- 정부의 사교육비 대책 때문에 오히려 과외가 더 는다는 말이 있다.
"(정부의 학원 단속 정책이) 과외 시장에는 호재다. 왜냐하면 사교육 수요는 항상 있다. 학교가 만족스럽지 않은데 학원을 억압한다면 과외로 몰린다. 공교육이 사교육과 비교해서 경쟁력이 있을 때 이런 정책들을 내놓아야 하는데,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부작용을 낳는 것이다."

- 공교육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공교육이 나아져야 하는 것이 맞다. 학생들이 똑같은 걸 배우고 하나의 잣대로 평가되기 보다는 해보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풍조가 생겨야 한다. 수능 한 번으로 모든 것을 평가받는 시스템, 공교육이 경쟁력이 없는 상황에선 사교육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 사교육이 없어질 수 있을까?
"사교육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개인차가 심한 학생들을 한 반에 30~40명을 하나의 교재로 가르치면 한 선생님이 다 이해시킬 수 없다. 나라면 못한다. 상중하 어떤 수준에 맞춰도 불가능하다. 학급의 규모는 작아져야 하고 우월반 가르는 것도 좋다고 본다. 과외든 학원이든 형태는 달라져도 사교육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 고액을 받고 있지만, 만약 본인이 자녀를 낳는다면 이런 사교육을 시킬 것인가.
"아이러니컬 하지만 나는 시키지 않을 것이다. 자식이 원한다면 해주겠지만, 성적 떨어지니까 과외 해라 하진 않을 것이다.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다. 하지만 만약 아이가 '과외 하고 싶어요' 이런 욕심이 있다면, 되도록 좋은 걸 시켜주고 싶긴 할 것 같다."


태그:#고액과외, #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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