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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서울 맞아?' 우리 동네 어귀인 청수탕에서 내려 북한산 쪽으로 걸어 올라오면 가끔 착각에 빠진다. 6층 이상 건물이 없고 단층이나 2층집이 즐비한 것, 차 두 대가 겨우 비껴갈 좁은 도로는 서울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이 좁은 길을 따라 늘어선 가게 이름들도 구수하고 정겹다. 마을이발관·춤추는방과후배움터·수미용실·형제슈퍼…. 여기에 북한산 조각을 마당에 옮겨놓은 듯한 이웃들의 정원과 텃밭은, 우리 마을을 서울이라는 회색도시 안에 푸른빛을 품은 오아시스로 자리 잡게 하였다. 텃밭을 가꾸는 두 분을 만나보았다.

"우리집은 옥상이 정원"
모아빌라 김영자 씨…화초와 채소부터 감‧포도나무, 심지어 오리까지

김영자 씨. 김 씨가 살고 있는 모아빌라 옥상은 아름다운 정원이다.
▲ 김영자 씨. 김 씨가 살고 있는 모아빌라 옥상은 아름다운 정원이다.
ⓒ 주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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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동 516번지는 우리 동네 중에서도 가장 한적한 곳이다. 대부분이 1~2층짜리 아담한 집이고, 4층짜리 빌라들도 주변 경관을 과하게 훼손하지 않는다. 생선이나 야채를 팔러 찾아오는 트럭에서 울리는 광고만이 동네 정적을 깨운다. 이곳은 집마다 딸린 작은 정원이 있다. 다들 채소와 예쁜 꽃을 심었다. 몇몇 집에는 살구나무나 감나무 따위의 유실수도 눈에 띈다. 이 나무들은 제법 키가 커 담장을 넘는 경우가 흔하다. 그만큼 오랫동안 개발이라는 광풍을 피해 살았다는 증거다.

모아빌라에 사는 김영자씨는 빌라 옥상에 예쁜 텃밭을 가꾸고 있다. 바삐 걷는 사람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울창한 등나무가 푸른 지붕을 역할을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곳에 올라보면 빨래나 말리는 옥상이 이렇게 근사한 텃밭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상추·깻잎·쑥갓·배추 같은 채소에 백합과 글라디오라스가 오밀조밀 자라고 있다. 여기에 귤나무·단감나무·포도나무까지 가세했다. 10평 남짓한 옥상에 별의 별 것이 다 있다.

모아빌라 정원. 10평도 안 되는 공간에 각종 화초와 과실나무, 오리까지 함께 살고 있다. 옆에는 쉬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까지 갖췄다.
▲ 모아빌라 정원. 10평도 안 되는 공간에 각종 화초와 과실나무, 오리까지 함께 살고 있다. 옆에는 쉬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까지 갖췄다.
ⓒ 주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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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빌라가 생기면서 가꾸기 시작한 정원에는 나이가 10년이 넘은 것들이 태반이다. 나무 하나, 화초 하나에도 사연과 주인의 정이 담겨 있다. 18년 된 감나무는 시댁에서, 15년 된 포도나무는 친정에서 가져다가 심었다. 남편은 옥상까지 꽤 많은 흙을 져날아야 했다. 김 씨는 "그래도 흙이 부족해서 열매가 실하지 못하고 더 크게 자라지 않아" 아쉽다. 이들 외에도 시아버지가 사준 나무, 외국에 나가 있는 친척이 선물한 화초, 이사하는 집에서 버리고 간 나무까지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품고 있다.

최근에는 오리 두 마리도 이 정원에 집을 지었다. 지난 어린이날 손녀랑 인사동에 놀러나갔다가 데려왔다. 이래저래 부담이 되었지만 초등학교 2학년인 손녀의 소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음식물찌꺼기·가랑잎·깻묵들로 퇴비를 만드는데, 오리 똥도 좋은 거름이 될 것 같다며 좋은 쪽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아침저녁으로 들러 가꾸는 이 정원에는 같은 빌라에 사는 이웃들도 가끔 올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이곳에서 북한산의 사계와 마을을 한눈에 둘러보며 쉬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운치 있다.

마당·주차장 대신 꽃밭으로
윤은중·이종신 부부…채소 길러 이웃과 나누는 기쁨 쏠쏠

윤은중, 이종신 부부. 이들은 주차장으로 쓸 자리를 정원으로 바꾸었다.
▲ 윤은중, 이종신 부부. 이들은 주차장으로 쓸 자리를 정원으로 바꾸었다.
ⓒ 주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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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중·이종신 부부가 사는 곳은 우리 동네에서 담장 허물기를 처음으로 시도한 509번지 골목길 세 번째 집. 지금이야 구청에서 지원 받아 담장과 함께 이웃 사이에 쌓아놓은 마음의 담까지 허물고 있지만, 불과 5년 전만해도 담장을 허물어 우리 집 앞마당과 집안을 내보인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당시 한 방송사의 이웃사촌 만들기 프로젝트에 응모한 이 골목은 우리 마을에서는 처음으로 여러 집이 함께 담장을 허물어 이웃과 '사촌' 관계를 복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삭막한 도시에서 새로운 골목 문화를 만들어가고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한다고 해서 이 골목을 '무지개 마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골목에 들어선 집 가운데서도 윤은중 씨 집은 단연 돋보였다. 1988년 이곳에 정착한 이래 4대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은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윤은중 씨가 이 집안의 큰 어른이 되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집 안팎 곳곳에 자라는 꽃과 나무, 채소가 이웃과 길 가는 사람들 눈을 끌어 모은다.

마당은 온통 꽃밭이다. 1층에는 아들 내외가 살고 한쪽는 젊은 부부에게 세를 내주고, 윤씨 내외는 2층에 살고 있다. 1층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칸 한칸 예쁜 화분으로 가득하다. 마당을 허물면서 마련한 주차공간도 꽃들에게 양보했다. 세 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시끄럽고 매연으로 불편할 것 같아서란다. 대신 화분을 한 두 개씩 놓다보니 어느새 서른 개에 이르렀다.

주차장 대신 꽃밭. 윤 씨네 정원에 꽃이 만발하면 사람들도 돌아가 이 길로 지나간다.
▲ 주차장 대신 꽃밭. 윤 씨네 정원에 꽃이 만발하면 사람들도 돌아가 이 길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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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는 고추·상추·파·토마토 같은 야채를 심어놓았다. 마당 가장자리를 빙 둘러 아예 밭을 만들어놓았다. 양이 상당해 온 식구가 다 먹어도 남겠다고 말했더니, 이웃과 나눠 먹는다고 웃는다. 1층에 세들어 사는 안기인(회사원)씨는 "주인아저씨 부지런함을 따라갈 사람은 없을 것 같다"며 "철마다 화분을 바꾸고, 때때로 채소도 이웃에게 나눠준다"고 말한다.

윤씨는 "봄에는 철쭉과 진달래, 가을에는 국화를 종류별로 심는다. 여름에는 주로 일년초를 심고, 겨울에는 마른 나뭇가지에 트리를 장식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최근부터 종류를 조금씩 바꾸었다. 일년초는 해마다 제법 많은 돈이 들어서 다년생 작물을 심는다는 것.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한참을 마당에 머물거나 일부러 이 골목으로만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맙다고 주인은 말한다. 주말에는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도 생겼단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니 신경 쓰이네" 하며 흐뭇해한다.

윤씨의 애정은 허물어버린 담장을 넘어 마을 숲으로도 이어진다. 가르멜수녀원 위쪽 작은숲속과 영락기도원 바로 위쪽 체련회, 조병옥 묘 주변에도 꽃나무를 심었다. "새벽 운동할 때나 퇴근 뒤 운동 삼아 산책하면서 휑한 곳에 꽃을 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묘목을 심었다."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잘도 꽃을 피우는 나무를 보면서 행복하다. 얼마 전에는 영산홍 80그루를 심었다. 그런데 누군가 다 뽑아갔다고 한다. "그래도 또 심을 거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서울 강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운동단체 생명평화연대 홈페이지(www.www.welife.org)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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