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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5만 원 대 3억 원.

무슨 소리냐고요? 법원이 정한 일당의 극과 극입니다. 5만 원은 가장 일반적인 금액이고, 3억 원은 지난달 법원이 어느 경제 사범에게 정해준 일당입니다.

법원은 벌금형 피고인이 벌금을 내지 않을 때 교도소에서 노역하게 하는데, 이때 하루 노동의 대가를 얼마로 쳐줄지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일당 3억 원이면 해볼 만한 '장사' 아닐까요. 어떻게 이런 차이가 날 수 있을까요. 여기에는 법의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지금부터 벌금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전과자 절대다수가 벌금형인 이유

우선, 우리나라 형벌의 종류를 살펴보겠습니다. 생명을 빼앗는 사형,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징역·금고형, 재산에 손실을 주는 벌금형이 대표적인 형벌입니다. 그 외에 자격상실·자격정지·구류·과료·몰수 등도 형벌로 칩니다(자세한 얘기는 맨아래 상자기사 참조).

이중 벌금형은 형벌의 절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일반 형사 피고인의 35.8%(9만6110명, 2008년 1심사건 기준)가 벌금형을 선고받습니다. 서류재판인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을 받은 사람까지 합하면 한 해 1백만 명이 넘습니다.
     
이렇게 벌금형이 많은 것은 장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소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가두는 대신 재산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은 범죄인의 사회복귀에도 도움이 되고, 교도소에서 오히려 범죄에 감염될 가능성을 막는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교정·수용시설이 열악한 우리 현실에서 벌금형은 국가에 재정적 부담을 덜 주고, 벌금이 국가의 재정 수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수단으로 선택되고 있는 것입니다.

벌금을 안 낼 수 있는 2가지 방법

그런데 벌금은 안 낼 방법은 없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그것도 2가지씩이나(하지만 결코 권장할만한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길!).

첫 번째는 3년간 안 내고 버티기입니다. 형법 77조 '형의 선고를 받은 자는 시효의 완성으로 인하여 그 집행이 면제된다', 이게 '형의 시효'입니다. 쉽게 말해 판결을 받고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는 더 이상 책임을 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벌금형의 시효는 3년입니다. 벌금은 3년만 안 내고 버티면 되니, 참 쉽다고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형 집행기관인 검찰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습니다. 벌금은 형이 확정된 후 30일 이내에 내야 합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검찰에서 강제 징수 절차에 들어갑니다. 검찰은 납부명령을 내리고, 더 나아가 미납자의 재산을 추적하여 부동산 경매·재산 압류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합니다. 어지간해선 안 내고 버틸 수가 없겠지요.

두 번째는 '몸으로 때우는' 방법입니다. 벌금을 내기 싫으면 대신 교도소에서 작업을 하면 됩니다. 형법(69조 2항)은 벌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노역장에 유치하여 작업에 복무하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혹시 법원의 판결문을 유심히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엊그제 벌금형을 받은 A씨의 판결 주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피고인을 벌금 100만 원에 처한다. 피고인이 위 벌금을 내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금 5만 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피고인을 노역장에 유치한다."

판결문에는 벌금액에 충당할 '일당'이 얼마인지 반드시 나옵니다. 이걸 환형유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A씨가 제때에 벌금을 내지 않으면 일당 5만 원씩 계산하여 20일을 교도소에서 일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단, 환형유치 기간은 최대 3년을 넘을 수는 없습니다. 벌금을 안내더라도 3년 이상은 노역장 유치를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노역장 유치는 실제로 징역살이와 별다를 게 없습니다. 1백만 원에 20일간 징역살이, 해볼 만한 일일까요.               

서민은 꿈도 못 꿀 '일당 3억 원'의 진실

이제 첫머리에 말씀드렸던 '일당 5만원 대 3억원'의 얘기로 다시 돌아갑니다. A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최근 판결을 보면 노역장 유치의 1일 환산액은 5만 원이 대세입니다. 이건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고 경제적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습니다.

서울지역의 한 고참 판사는 "내가 사법연수생 시절(약 17년 전)에 5천 원 정도였는데 1만 원으로 한 번 올랐고, 2000년경 3∼4만 원선이었다가 4, 5년 전에 5만 원으로 굳어진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서울중앙지법 등 규모가 큰 법원의 판사들이 회의를 통해 적정한 금액을 정하면 다른 법원도 대체로 따라가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일당 5만 원의 대세를 거스르고, 6월 18일 일당 3억 원의 판결(대전지법 천안지원 2008고합 226 재판장 문광섭 부장판사)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일단 사건의 내용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석유유통·판매업을 하던 피고인들(13명)은 세금계산서 없이 무자료 유류를 유통시켰습니다. 이들은 이를 정상거래로 꾸미기 위해 위장 회사를 만든 다음 금융·거래자료를 거짓으로 꾸며 가짜 세금계산서를 주고받고 세무서에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유통마진을 남기고 조세포탈을 저질렀고 허위 세무자료 발급 수수료를 챙긴 혐의가 인정된 것입니다.

이들이 발행한 가짜 세금계산서의 합계액은 1조 원대 규모라고 합니다. 재판부는 "선량한 국민들의 납세의식에 큰 해악을 가하고 조세 정의를 극심하게 훼손하였다"며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들은 가담 정도와 죄질에 따라 징역 1∼4년형과 함께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벌금액수가 놀랍습니다. B씨 508억 원, C씨 1614억 원 등을 비롯해 벌금 총액은 7천억 원이 넘습니다. 이런 천문학적인 벌금이 나오게 된 건 가짜 세금계산서 발행 범죄에 대해 탈세액의 2∼5배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한 법(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 때문입니다.

이제 문제는 환형유치할 때 일일 환산금액을 얼마로 정하느냐에 있습니다. 만일 1일 5만 원으로 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B씨는 101만6000일(약 2783년), C씨는 322만8000일(약 8843년)을 감옥에서 일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결과가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한 자는 3년 이하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형법조항과 어긋나게 됩니다. 재판부도 이 때문에 고심했을 겁니다. 

결국 재판부는 B씨 3억 원, C씨 2억 원을 일당으로 정했습니다. 재판부는 "환형 유치 집행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피고인들의 범행 동기와 결과, 전과관계 등 양형 조건을 참작하여 형을 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되면 B씨는 벌금 대신 170일을, C씨는 807일을 노역하는 것으로 거액의 벌금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일당 3억 원은 탈세범죄에 거액의 벌금형을 부과해야 하는 법률조항과 노역장 유치기간은 3년을 넘을 수 없다는 조항이 합해진 상황에서 판사의 양형이 참작되어 나온 결과물인 셈입니다.      

수백억 원의 벌금을 반년으로 때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다고요? 아무리 그래도 일당 5만 원과 3억 원은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느냐고요? 안타깝지만, 법을 바꾸기 전에는 서민들은 꿈도 못 꿀 '일당 수억 원'짜리 피고인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벌금형, 가진 자들을 위한 형벌?

현재의 벌금제도에도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같은 벌금액이라도 경제적 능력에 따라 형벌의 강도가 다르다는 게 벌금형의 맹점입니다. 예를 들어 벌금 1백만 원이 어떤 사람에겐 중형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사람에겐 하찮은 형벌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벌금이 없어서 노역장으로 향하는 사람이 1년에 2천 명 정도(2005년 2177명, 2006년 1982명)가 됩니다. 심지어 어떤 가난한 피고인은 법정에서 벌금형 대신 그보다 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해달라고 재판장에게 '부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우리도 유럽처럼 일수벌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일수벌금제란 피고인의 재산상태를 고려하여 일당을 정하고 죄질에 따라서 날짜 수를 곱해서 벌금액수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다면 부자들만 중형을 받아야 하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선거법상 당선무효를 가르는 형이 벌금 1백만 원이라는 점을 보더라도 벌금 액수는 단순히 경제력에 따라 차별을 둘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또한 징역형처럼 벌금형에도 집행유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강영철 교수(단국대 법정대학)도 '재산형 벌금의 문제점과 노역장유치의 개선방안' 라는 논문에서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강 교수는 더 나아가 벌금 미납자들이 일반 교도소에 수용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교도소와는 별도로 독립적인 노역장을 설치하거나, 노역장 유치 대신 사회봉사를 활용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한 번 검토해볼 만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해 1백만 명 이상이 벌금형 전과자가 되는 시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 나오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년간 전과자 숫자는 얼마?
1년간 전과자가 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법원의 형사 재판 통계를 분석해보면 답이 나온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08년 형사공판사건(1심 기준)은 1심 기준으로 22만5834건이다. 재판받은 피고인 수로 따지면 26만8572명이다. 선고 내역을 보면 사형 3명, 징역 금고 등 실형 4만4858명, 징역형의 집행유예 8만2694명, 벌금형 9만6110명, 선고유예 4602명, 무죄 4025명 등이다.

정식 재판이 아닌 약식명령(가벼운 사건에 대해 서류로만 재판하여 벌금형을 부과하는 제도)을 받은 114만3013명과 즉결심판(경범죄에 대해 경찰서장이 청구하는 재판)을 받은 6만2486명을 합하면 전과자 수는 140여만 명이 된다.

물론,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이중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약 4천여 명)과 2번 이상 재판을 받은 사람을 뺀다고 해도 1년간 전과자는 100만 명을 훌쩍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과로 놓고 보면 벌금형이 절대 다수(약 90%)를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집행유예, 징역형의 순이다.

                                                         
대한민국 형벌, 어떤 것이 있나
전과는 국가로부터 형벌을 받은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형벌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형벌은 생명형·자유형·재산형·명예형으로 나눌 수 있다. 생명형은 사형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서 사실상 사형폐지국이지만 법에는 엄연히 사형제도가 있다.

자유형이란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형벌로 징역·금고·구류가 여기에 해당한다. 징역과 금고는 교도소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다만, 작업을 하는지(징역), 안 하는지(금고)에 따라 나뉜다. 금고는 정치범·사상범 등에게 부과하는 명예적 구금으로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징역과 큰 차이를 둘 수 없다. 징역과 금고는 무기와 유기가 있다. 무기는 종신형이고, 유기는 1월 이상 15년 이하가 원칙이다. 하지만 형을 가중할 때는 최대 25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반면 구류는 경범죄나 일부 과실범죄에 규정되어 있는데, 구금기간이 30일 미만이라는 점에서 징역 금고와 다르다.    

재산형에는 벌금·과료·몰수가 있다. 벌금은 5만 원 이상을, 과료는 2천 원이상 5만원 미만을 부과한다는 차이가 있다. 몰수는 범죄와 관련된 재산을 박탈하는 형으로써 다른 형과 함께 부과된다. 몰수의 대상으로는 살인 흉기, 도박자금 등 범행도구, 뇌물 등 범죄로 얻은 이익이 해당된다. 한편, 몰수를 할 수 없을 때에는(예를 들어 뇌물로 받은 돈을 다 써버렸을 때)에는 몰수물에 해당하는 돈을 내게 하는데 이를 '추징'이라 한다.       

명예형은 자격상실과 자격정지가 있다. 여기서 자격이란 공무원, 법인의 임원이 될 자격과 선거권 피선거권 등을 말한다.

형법에 나오는 형벌은 총 9가지이다. 이중에서 어느 형벌이 제일 무거울까. 제일 무거운 순서대로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의 순이다. 다소 복잡한 형벌의 종류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징역-금고-구류, 벌금-과료는 단일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태그:#벌금형, #법원, #아는만큼 보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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