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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르귄, 필립 K. 딕, 레이 브래드버리, 아서 클라크, JRR 톨킨, 이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분모는 무얼까?

 

설령 이들이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JRR 톨킨이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란 걸 아는 순간 어렴풋이 이들이 환상문학과 관련 있음을 감지할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환상 문학의 하위 범주인 판타지 문학과 SF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이렇게 판타지 문학과 SF 문학을 적시(摘示)한 이유는 환상 문학, 판타지 문학, SF 문학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흔히 환상 문학과 판타지 문학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환상 문학의 사전적 정의는 "초자연적 가공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사건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파스칼백과사전)으로, 그 역사는 서유럽문학의 주류였던 리얼리즘이 한계에 직면하고 그 대안으로 환상성 짙은 문학작품이 재평가되던 19세기로 소급된다.

 

그러나 이미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화나 문학작품 속에도 환상문학적 요소가 들어 있었고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단테의 <신곡>도 환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상문학의 뿌리는 훨씬 더 깊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콜리지, 셸리, 키츠, 노발리스, 샤미소, 호프만, 빅토르 위고,  에드거 앨런 포, 프란츠 카프카, 엘리아스 카네티, 밀란 쿤데라, 보르헤스, 가브리엘 마르케스 등이 환상문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작가들이다. 여기에 SF(공상과학)와 판타지문학까지 가세하면 환상문학이란 영역에 복무하는 작가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그런데 만약 이들이 매일밤 한 자리에 모여 흥겨운 향연을 벌이며 <천일야화>처럼 한 사람씩 번갈아 신비롭고 은밀한 환상을 속삭여 준다면 어떨까? 물론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애초에 문학이란 공간이 현실을 대체하는 가상현실이란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축제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은 이미 열려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바로 책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금가지가 의욕적으로 기획한 환상문학전집은 독자들을 판타지의 향연으로 이끄는 초대장인 셈이다. 푸케, 호프만, 슈토름, 슈니츨러 등의 작품을 엄선해 19세기 독일 환상문학의 정수를 유감없이 선보일 <독일 환상 문학선>과 문학적 향기가 가득한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에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 도리스 레싱의 <생존자의 회고록>, H.G. 웰스의 <우주전쟁> 같은 작품들이 환상문학이란 범주 아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은 환상문학전집의 기획 의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환상문학전집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르는 SF문학이다. SF문학의 '빅3'(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아서 클라크) 중에 이미 국내에 널리 알려진 아이작 아시모프를 제외한 로버트 하인라인과 아서 클라크의 낯익은 작품들(하인라인 <달은 무자비한 여왕>, 아서 클라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인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아서 클라크의 1953년에서 1999년까지의 단편소설들을 망라한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을 "과학소설은 일어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다루는 것인데 우리 대부분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판타지 소설이란 일어날 수 없는 것을 다루지만 종종 우리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서문의 한 구절을 상기하며 읽다 보면 인터넷, 우주 정거장 등을 예견한 그의 예지력에 감탄을 넘어 전율을 느낄 것이다.

 

물론 SF와 쌍벽을 이루는 판타지 문학도 어김없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더불어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히는 <어스시의 마법사>를 쓴 어슐러 르귄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목록에 올라 있다.

 

이처럼 환상문학이란 커다란 바구니 안에 순수문학, SF문학, 판타지 문학을 종횡으로 엮어 담은 황금가지의 <환상문학전집>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두말할 것 없이 "환상"이다.  

 

누군가 말했다. "환상은 모험의 전조"라고. 사회가 각박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꿈을 잃어간다. 꿈을 꾸지 않는 자에겐 환상도, 모험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꿈과 모험이 자취를 감춘 각박한 현실을 견디기 위해 미지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신비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황금가지의 <환상문학전집>이 점점 메말라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환상의 불씨를 되살리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그리하여 다시금 모험의 시대가 도래하길 희망한다.


독일 환상 문학선 - 환상문학전집 9

E.T.A. 호프만 외 지음, 박계수 옮김, 황금가지(2008)


태그:#환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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