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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다리에 올라 체리따는 모습

 

체리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독일에는 집에 과수가 있는데도 직접 수확하기가 귀찮거나, 연로한 나이 등의 이유로 과일이 바닥에 떨어져 썩도록 그냥 두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산책을 하다가 그런 나무를 볼 때면 정말 아깝고 안타깝다.

그래서 '그렇게 방치할 바에야 우리가 갖다 먹어도 되는지 집주인에게 한번 물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다가도 '아는 사람도 아닌데 거절하면 어떡하나, 바빠서 수확시기를 놓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이런저런 염려에 선뜻 물어보지 못하곤 한다.

얼마 전엔 남편과 함께 산책을 하다가, 체리가 길가 여기저기에 잔뜩 떨어져 있는 집을 발견했다. 올려다본 바로 10m는 족히 넘을 고목이었다. '아까운 체리, 주인이 우리더러 수확해 가라고 하면 좋겠네' 싶었지만 우리끼리 얘기만 하고 그 집을 지나쳐 왔다.

 

며칠 뒤 이른 아침, 시 이모부님이 오셨다. 웬일인가 했더니 이웃집 정원에 큰 체리나무가 있는데 주인에게 허락을 얻었다며 시간이 되면 같이 체리를 따러 가자고 하셨다. 체리를 무척 좋아하는 우리 식구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흔쾌히 사다리와 양동이 등을 챙겨 들고 따라나섰다. 도착해보니, 엊그제 산책하며 지나친 바로 그 집이었다.

 

'저이, 진짜 사람이야 원숭이야'


 원숭이를 방불케하며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다니며 남편이 체리를 따고 있다. 하단 중앙, 10 리터들이 녹색 양동이가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우와 이런 우연이… 빨리 사다리부터 연결하자.' 체리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를 보고 신이 나서 재빨리 수확 준비를 했다. 워낙에 큰 고목이라 나무에 매달린 체리열매는 사다리 없이는 수확하기 불가능한 높이에 있었다.

 

70이 넘은 연세에도 혈기 왕성하신 아버님과 남편이 사다리를 타고 나무 위로 올라가 체리를 수확했다. 이모부님과 나는 그럴 재간은 없어 그 밑에 낮은 사다리를 놓고 체리를 땄다.

이쪽에서 또 다른 쪽으로 옮겨 가며 부지런히 체리를 따다 보니 아래쪽에는 더 이상 체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내려와 잠깐 숨을 돌리다가, '나도 좀 높이 올라가서 체리를 따 볼까? 내친 김에 한번 해보지 뭐'하는 생각을 했다. 이내 겁도 없이 7m가 다 되는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우와 여긴 체리가 정말 많이 달려 있네.'

따고 또 따고… 가지고 올라간 양동이가 거의 다 찰 무렵, '뭐 높은데 올라오는 것도 별거 아니네' 하면서 별 생각 없이 밑을 내려다봤다. 그런데 그 순간 오금이 저리면서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졌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간신히 사다리를 내려와 한숨 돌리는데, 아버님과 남편은 아직도 나무 위에 있다. 한 두 번 정도 사다리 위치를 바꾸려고 내려온 것 외에는 한나절 내내 지칠 줄 모르고 계속 그 자리다.

 

'어려서부터 나무를 타고 놀았다더니, 참 경험이란 게 우습게 볼 것이 아니네.' 이런 내 생각을 빤히 들여다보기나 한 듯, 원숭이가 나무 타듯이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다니며 체리를 따는 남편. '저이, 진짜 사람이야 원숭이야?'
 
체리 주스 생각에 벌써부터 겨울이 기다려진다
 
 밧줄로 묶어 지상으로 내려보낸 양동이를 이모부님이 받고 있다. 10리터 양동이가 그새 가득찼다.

체리나무 주인댁에 양동이 하나 가득 드리고 이모네와 나누고도 네 양동이나 남았다. 이만하면 체리를 질리도록 먹고도 남겠다며 모두들 함박 웃음이다. 한나절을 줄곧 체리 따는데 매달려 있느라 좀 피곤하기도 했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니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한 번에 다 먹지 못하니, 좋은 것은 지하에 두고 생으로 먹고 나머지는 손질해서 주스나 쨈을 만들어 저장을 할 거다. 그럼 이것들이 올해 긴 겨울을 나는데 중요한 비타민 공급원이 되겠지. 올겨울 난로 가에 앉아 따뜻한 체리 주스 한잔 마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겨울이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my-ecolif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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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저널리스트, 쓰레기를 양산하는 조형물 대신 인생을 조각하는 작가(소로우의 글에 감화받아), 2001년 비건채식을 시작으로 ‘생태토양학자’인 독일인 남편 다니엘과 함께 독일에서 지속가능한 텃밭 농사를 지으며‘ 날마다 조금 더 생태적으로, 생태 순환의 삶을 살기’에 힘을 다한다. 올 봄 냉장고와 헤어진 어느 부부의 자급자족라이프, ≪생태부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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