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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난데없이 '중도강화론'을 주장하며 서민챙기기 일환으로 서울 이문동의 한 재래시장을 방문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야당은 정치적인 '쇼'를 그만 두라고 했고, 여당은 대통령을 엄호하고 나서느라 서로간의 입씨름이 대단하다.

 

서민 대통령 꼬리표 만드는 작업에 '서민'은 없다

 

이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해 12월엔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찾아 한 할머니에게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주기도 했고, 지난 달엔 대통령으로서는 12년만에 모내기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언론과 방송은 이 대통령의 행보를 곱게 포장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방송은 백성들의 언 가슴이 녹아내릴 정도로 훈훈하게 보도했다. 보수 신문인 '조중동'은 이 대통령을 이번참에 작심한 듯 그에게 '서민대통령'이라는 포장까지 씌웠다. 

 

방송과 신문을 본 서민들은 순간적이지만 '대통령이 저렇게 우리에게 관심을 쏟으니 곧 아무 걱정없이 살 수 있으리라'는 착각도 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이문동 재래시장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대단한 금맥이라도 발견한 듯 활짝 웃었다. 백성은 울고 있는데 대통령은 웃었다. 왜일까.

 

이 대통령은 그날 아이를 안아주기도 했고, 탁구를 치기도 했다. 시장 골목의 한 떡볶이 집을 찾아 학생들과 어묵을 먹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뭔가 어색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보아왔던 장면인 것이었다. 

 

이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찾은 모습은 10년 전이든, 20년 전이든 전직 대통령이던 누구의 사진을 이미지만 합성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했다. 연출 기법 또한 최소한 1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은 건 나 혼자 뿐일까.

 

이 대통령의 재래시장 방문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어묵을 먹고 목도리를 둘러주는 모습이 이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인 신념과 배치되는 현장의 장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세월 이 대통령이 한 일을 잊지 않고 있다면 그의 그러한 행보를 두고 '쇼'라고 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방치하던 '서민' 이제야 챙기는 이유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던 가는 땅이 알고 하늘이 아는 것 아니던가. 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부자 내각을 선보임으로서 대통령이 되기 전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대통령으로서의 신념을 당당히 밝혔던 사람이다. 이른 바 '강부자' 혹은 '고소영'이라는 비아냥이 있어도 그는 그들과의 '프랜들리'를 자랑했고, 앞으로도 그 길을 가겠다고 공언까지 했다.

 

그랬던 이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을 찾아 나선 것은 부자를 위한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조금은 탈색시켜보고자 한 셈법과 다름 아닌 것이다. 그가 주름진 할머니의 목에 목도리를 둘러주어도 서민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고, 새떼들도 떠난 텅빈 들판에서 모내기를 해도 농민들의 시름 또한 덜어지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대통령은 지난 25일 또 다시 재래시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뻥튀기도 먹고 크림빵도 먹었다. 하지만 청와대가 기획한 '이문동 재래시장 편'에 출연했던 대통령 일행과 행사에 출연한 사람들이 청와대에서 제공한 시계 하나씩을 받아들고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시장골목은 일순간 고요해졌다. 그날의 이벤트는 그렇게 끝났다.

 

기실 대통령이 서민을 챙기는 모습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묵 먹는 모습이 생경스럽고 새롭게 보이는 것은 이 대통령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도무지 어묵을 좋아할 것 같지 않은 그가 학생들과 옹기종기 서서 어묵을 먹고 있는 모습은 대통령으로서의 치기나 서민을 놀리지 않는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처럼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대통령이라면 서민의 삶을 챙기는 것이 당연하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챙겨야할 책무인 '서민의 삶'을 새삼스럽게 챙기겠다고 하는 것도 우스운 발상이다. 그것은 대통령 취임 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다수 대중인 '서민'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 이유만으로도 부끄러워야 할 이 대통령은 전혀 부끄럼없이 활짝 웃었다. 이제라도 내가 당신들을 챙겨주려하니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오만한 웃음과 다르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서민 챙기기에 나선 것은 광우병 파동을 거치면서 대운하 건설, 노 전 대통령 조문 정국을 거치면서 등 돌린 민심을 붙잡으려 한 것이 아닐까 짐작은 되지만 그 방법과 가야 할 길이 틀렸다.

 

 

이 대통령이 작정하고 서민 챙기기에 나섰다면 재래시장을 방문할 것이 아니라 용산 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을 가장 먼저 찾아야 했다. 하여 160일 가까이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이 대통령 진심으로 서민 챙기려면 용산참사 현장부터 가라

 

160일간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병원 냉동고에 갇혀 있는 이들이 누구인가.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억울하게 불타 죽은 5인의 영령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바로 이 대통령이 서민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달기 위해 그리 찾아 헤매던 이 땅의 '서민'이 아니던가.   

 

그들은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던 대한민국의 '서민'이다. 용역과 경찰의 폭력을 피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망루. 더이상 갈 곳도 없는 그들은 그곳에서 경찰특공대의 무리한 진압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살기 위해 망루로 올라간 이들이 검게 불타 죽은 채 들것에 실려 내려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는데, 이 대통령의 발걸음은 그들을 외면한 채 재래시장을 방문해 어묵이나 먹고 있으니 이 일을 두고 어찌 '정치적인 쇼'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대통령이 정녕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시장 할머니에게 목도리 둘러주면서 어설픈 눈물 흘리지 말고 용산으로 가야한다. 이 대통령이 용산을 품지 않고서는, 그곳에 가서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는, 그가 어떤 일을 해도 백성들은 '서민을 챙기는 대통령'이라 보지 않을 것이다.

 

용산 참사로 숨진 5인은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그 딱지를 떼어줄 사람도 이 대통령이다. 하지만 5개월이 넘어도 용산은 '공권력에 의한 살인 현장'이 아니라 '도심 테러의 현장'일 뿐이다.

 

백성들이 아무리 요구해도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남일당 건물을 지키며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신부님들이 경찰에게 개처럼 질질 끌려가거나 목졸림을 당했다. 삶터마저 잃은 유족이 무차별 폭행을 당해도 그들은 같은 테러리스트나 테러리스트 가족일 뿐이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눈물을 흘리는 백성이 있다면 대통령은 함께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것이 백성을 위하는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지난 5개월 동안 용산이 눈물 바다가 되어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지 않았으며 함께 눈물을 흘려주지도 않았다.   

 

이를 두고 어찌 그를 대통령이라 할 수 있을까 싶다. 백성의 아픔과 고통, 죽음을 모른 채 외면하는 대통령을 어찌 대통령이라 부를까 싶다. 그런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찾아 어묵 한 번 먹을 두고 '서민 대통령' 소리 듣겠다고 하는데, 그것을 어찌 '쇼'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백성이 바라는 것은 이 대통령의 진정성이다. 이 대통령이 백성들에게 진실한 마음을 보이려면 지금이라도 용산으로 가서 고인들에게 참회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백성들은 이 대통령의 '서민 챙기기' 행보에 대한 진정성을 알아 줄 것이다. 이것이 백성의 민심이다.

 


태그:#이명박, #서민, #용산참사, #어묵, #서민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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