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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민단체 일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한 지 벌써 3년차. 이제 그만 포기할 만도 한데, 아직도 엄마는 '너 언제까지 그 일 할거야?' 하면서 내가 이 일을 하루빨리 그만두기를 완곡히 바라곤 하신다. 그럼 내 딴에는 또 서운하고 화가 나서 엄마와 나 사이의 크고 작은 다툼들이 생기곤 한다. 며칠 전에도 심하게 엄마랑 다퉜다. 사연이 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엄마가 걱정스러워 할 만한 일을 했는데, 내가 유난떨면 엄마가 더 불안해할까 싶어 큰소리 떵떵 쳤다. 별 거 아닌데 왜 그러냐며 말이다. 성큼 다가온 여름더위조차 며칠 집밖에서 서성이고 있을 만큼 냉랭한 집안 분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며칠 못 가서 엄마가 또 백기를 들었다. 수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다툼들과 매번 엇비슷한 그 끝. 엄마가 또 져주기로 했다. 이번엔 진짜 내가 엄마를 걱정시켰던 거 같은데 또 습관처럼 짜증부터 부리고 큰소리를 쳤던 거 같아 얼마 안 되는 상근비지만, 이 달 상근비가 나오면 엄마랑 같이 공연을 보러 가야지 생각하던 찰나였다.

엄마, 아파? 나 때문이야?

"엄마, 괜찮아?"

새벽녘,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난 방에서 웹서핑을 하고 있었다. 늦게 들어온 동생의 조심스런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싶었는데 동생이 엄마한테 인사를 하려다가 하는 말 같았다. 내가 들어올 때만 해도 별 일 없었는데, 무슨 일이지 싶어 나가봤다. 엄마가 바닥에서 끙끙 앓고 있었다.

"엄마, 왜 그래? 어디 아파?"
"갑자기 머리가 빙빙 돌고 식은 땀이 막 흐르네."

말 끝내기가 무섭게 엄마는 구역질이 난다며 화장실로 급하게 달려갔다. 동생은 그런 엄마 등을 두들겨주고, 난 증상을 가지고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급체'였다.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기 위해 새벽 2시란 시간도 잊은 채 선배들에게 전화를 했다. '신경성 스트레스로 인한 급체'인 것 같다는 게 의사인 선배의 소견이었다.

'신경성 스트레스? 아이구 어머니, 나를 죽여요.'

차라리 엄마한테 차근차근 다 말할 걸 그랬나. 예민한 울 엄니 속을 또 얼마나 끓였을고. 워낙 철두철미하고 꼼꼼한 성격인지라 별 거 아니라고 말하는 게 차라리 신경 덜 쓰이게 하는 일일거라 생각했던 건데 나의 오산이었나 보다.

손을 따는 게 제일이다 싶어서 부랴부랴 실, 바늘, 소독약을 준비하는데 옆에서 동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맘이 착잡한 터에 동생이 울어버리자 괜히 옆에서 덩달아 눈물이 났다.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새벽녘이란 시간에 적잖이 당황한 탓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끙끙 앓았다. 나와 동생은 엄마 옆에 붙어 물 떠오고 몸을 주무르고 손도 따고 등도 두들기며 엄마의 체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손을 따니 검붉은 피가 나왔다.
"엄마, 체한 거 맞는갑다. 피가 까맣다, 까매."
동생과 엄마를, 아니 실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난 큰소리로 얘기했다. 양손에 각각 다섯 군데씩 따고 나서 손수건을 뜨거운 물에 묻혀 손을 따뜻하게 감쌌다.

엄마, 토... 치, 치워야지...

잠시 후, 엄마가 또 뭔가 올라오는 듯 했다. 이번엔 화장실로 달려갈 기력도, 여유도 없어보였다.

'엄마, 그냥 여기다가 해.' 접시같은 게 없나 두리번대는 듯 한 엄마에게 난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을 가리켰다. 엄마가 게워낸 것들이 마루에 적지 않은 원을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도 엄마는 두 세 번 더 속을 게워냈다.

치울 것들이 많았다. 많은 만큼 그만큼의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나와 내 동생의 간사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군말없이 휴지를 산더미처럼 쌓으며 엄마 토를 치우던 동생이 걸레질까지 하고선 "언니, 걸레 좀 빨아" 하고, 또다시 엄마가 토하면 나는 "이거 좀 치워. 난 엄마 좀 주무를게" 하며, 엄마 토를 치우는 일을 살짝 서로에게 넘겼다. 심지어 눈감고 있는 엄마 옆에서 서로 장난스레 째려보기조차 하면서 서툴기 짝이 없는 뒷수습에 우린 새벽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5시쯤이 됐을까. 엄마는 한결 편해졌다며 잠에 들었다. 난 너무 놀란 탓에 잠이 이미 다 깨버린 데다가 언제 또 엄마가 아플지 몰라 7시쯤 자야지 맘을 먹었다. 그리고선 아직 냄새가 배어있는 화장실을 정리하러 들어갔다.

샤워기로 바닥에 물을 한바탕 뿌려 댔는데도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냄새를 빼려면 물을 틀어놔야 한단 말이 생각나서 욕조 물을 틀어놓고는 한 쪽에 몰아놨던 걸레들을 모아 빨기 시작했다. 그 사이 빨래에 깊게 밴 냄새가 또 코 끝으로 전해져왔다. 코 끝 신경과 미간 신경이 닿아있나? 우리 엄마 토인데 뭐! 하며 아무렇지 않게 빨려고 했는데, 그래야 좀 멋진 큰 딸 모습일 거 같은데, 냄새가 코 끝에 닿는 순간 자동스레 난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딸 사랑, 냄새에 무너지다

울 엄마는 어렸을 적 내 똥오줌부터 토며 뭐며 냄새가 나건 안 나건 모든 것들을 뭐 하나 가리지 않고, 피하지 않고 치워줬겠지. 근데 내겐 엄마 토한 걸 닦아낸 걸레를 앞에 두고 두 손으로 그 걸레 비벼 빠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물딱 조물딱 거리며 나머지 힘은 센 수압에 의지했다. 손가락 두 개의 손끝으로 간신히 엎치락뒤치락 해가며 비누를 잔뜩 묻혔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고 나서야 냄새가 좀 가시는 듯 했다. 그제서야 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걸레를 박박 문지르며 빨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부터 이랬다는 것 마냥 말이다. 빨래를 마치고, 손을 또다시 비누로 깨끗하게 씻어내고서는 괜시리 열녀가 된 것 같은 뿌듯함으로 화장실을 나오는데 완전 지쳐서 잠이 든 엄마가 보였다.

동생이 어렸을 적에 기저귀를 갈다가 황금똥이 나왔다며 코를 가까이 들이대며 킁킁대던 엄마 모습이 떠올랐다. 못 마시는 술을 마시고 들어와 밤새 잠 못 자며 몇 차례나 화장실 변기를 껴안고 있던 날, 영 씻을 힘도 못내자 손으로 직접 내 입을 문질러 닦아주던 엄마 모습도 떠올랐다. 그랬던 엄마와 오늘 우리 두 딸의 흔쾌하지도, 선뜻 하지도 못했던 엄마 토 뒤처리 모습이 겹쳐져 울 엄마가 가엽게 느껴졌다. 엄마를 가엽게 만든 게 바로 나인 것 같아서 다시금 가슴이 찡해져왔다.   

예전 엄마랑 연극을 보고 나오는 길에서였다. 마지막에 딸이 죽은 엄마를 그리며 "세상에서 날 제일 사랑해줘서 고마워, 엄마. 그리고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해"라던 딸의 대사를 엄마는 가장 공감했다고 했다. 안 그래도 그 대사가 걸렸던 터라

"말도 안 돼! 난 그 대사가 제일 이해 안되던데! 난 엄마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하며 지지않고 항변을 했더니 엄마는 웃으며 "더 살아봐라. 애도 낳고, 키우고, 그러면서"라고 답했다. 그 땐 "그래, 엄마! 두고 봐~ 두고보자구~" 했었는데...

살면서 엄마보다 날 사랑할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정말로 나중에 애를 낳게 되면 그 애를 엄마보다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졌다. 이래서 '엄마사랑'이란 말은 있어도 '딸사랑'이란 말은 없나보다.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란 가사보다는 "그 냄새까지 사랑한거야"란 가사가 어떨까? 훨씬 더 솔직하고 현실적이고 깊은 사랑을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야 정말 아무나 하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거 같지.
...
...
...

괜한 말이다. 누가 뭐라고 나무라지도 않았는데 괜히 남아있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다. 그 때 멈칫거렸던, 머뭇거렸던, 내 순간 순간의 간사함에 대한 비아냥거림이다.

'잉... 엄마야...ㅠㅠ 미안해...ㅠㅠ'

덧붙이는 글 | 냄새나는 글 응모글



태그:#엄마,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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