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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손에 잡으면 다 읽기 전에는 눈을 떼기 어려운 이 슬픈 이야기는 지금부터 한국의 큰 강가에서 벌어질 사건의 데자뷰이기도 하다. 주홍 마코앵무새를 둘러싸고 최고의 법정 추리극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실화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다." -우석훈-

브루스 바콧지음. 살림
▲ 주홍 마코앵무새의 마지막 비상 브루스 바콧지음. 살림
ⓒ 윤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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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88만원 세대로 잘 알려진 그는 이 책 <주홍 마코앵무새의 마지막 비상>에 대해서 '데자뷰'라는 자못 의미심장한 비유를 쏟아 내었다. 그는 왜 데자뷰라고 했을까? 도대체 무엇이 데자뷰일까?

나는 이 책을 통해 벨리즈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 되었지만, 우석훈 교수의 이야기처럼 벨리즈라는 곳의 상황과 대한민국의 상황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우선 벨리즈라는 나라에 대하여 간략히 이야기 하자면, 그곳은 중앙아메리카의 카리브 해에 인접해 있는 작은 나라로서 1981년 비교적 최근에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났다.

이곳은 오래 전부터 유럽 열강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해 자원 수탈을 하기 위한 관문으로서 만들어진 지역이었다. 그곳에 머물던 유럽인과 원주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남미와 유럽이 어우러진 문화를 이룬 곳이다.

어찌되었든 이곳은 우리의 독재정권이 독립 이후 개발 열풍에 사로잡혔던 것처럼, 박정희 대통령과 자못 흡사한 독재정부와 독재 다수당의 계획에 따라서 막 개발을 시작한 나라였고, 하나의 기업이 모든 산업을 장악한 나라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이곳은 인간의 탐욕이 닿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이 책의 주 무대가 되는 마칼 강 주변에는 책의 표지에 아름답게 그려진 주홍 마코앵무새를 비롯하여, 맥, 재규어 등 많은 희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들은 앞 세대에 걸쳐 오랫동안 성공적인(?) 개발로 인해 전기와 수도와 같은 생활 필수 요소들을 힘들이지 않으면서 사용하는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벨리즈에 사는 많은 국민들에게는 기본으로 필요한 전기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이웃 멕시코의 전력을 사야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지금 대한민국이 이들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산업 후진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자급자족할 전기를 위해서 댐을 건설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 결과는 지금과 같다. 벨리즈인 역시 그들 주위에 펼쳐진 광활한 자연경관이 아직은 그렇게 소중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비극을 겪고 있는 우리들이 자연을 살려야 한다고 외치지만 그들은 우리처럼 이기적인 인간이므로,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드디어 벨리즈 정부는 마칼 강에 대한 개발 정책을 발표한다. 그곳에 댐을 건설하여 전력을 생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 정부 정책에 한 여인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여인의 이름은 샤론 마톨라. 동물을 사랑하는 평범한 미국인이었다. 그녀는 이곳 자연에 감동하여 오래 전부터 이곳에 정착하면서 작은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곳 생태계에 대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샤론은 어느 정도의 개발에 대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칼 강에 대한 정부의 댐 건설 발표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정부가 건설하려는 댐의 건설 결과가 책 표지에 있는 주홍 마코앵무새는 물론 그 지역 모든 생물에게 멸종 위기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댐이라는 것 자체로 인해서 야기되는 자연파괴는 물론이거니와 나중에는 건설로 얻어지는 경제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댐 건설엔 부패정부와 부패기업이 만들어낸 공정치 못한 계약이 바탕에 깔려있음을 알게 된 그녀는 정부에 대항하여 맞서게 된다. 그녀는 그 지역 모든 환경단체와 손을 잡았다.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유명한 환경단체들까지 이 싸움에 끌어들였다.

벨리즈의 독재 정권이 그녀의 이런 행동을 가만 놓아두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의 동물원 근처에 쓰레기 매입장을 세운다는 발표를 했고, 그녀의 박물관에 대한 지원금마저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신분상 약점을 이용하여, 제국주의 미국인이 우리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흑색선전을 서슴없이 퍼부었다. 그리고 반대하는 인물들 중 몇몇은 돈으로 매수하고, 건설에 필요한 모든 환경조사들을 왜곡하여 발표하거나 은닉해버렸다.

그들이 전문가를 고용해 환경조사를 시킨 후 1500페이지에 걸쳐서 나온, 부정적 의견을 단숨에 하나의 표로 그리고 긍정적인 의견으로 왜곡시키는 정부 행위는 이 책 백미 중에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잇단 소송에서 벨리즈 정부는 최고급 변호사를 선임하여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나갔다.

결국 1500페이지짜리 방대한 보고서는 에이맥의 몬트리올 지사에서 레이몬드 굴레트를 비롯한 몇몇 직원들의 손에 의해 편집되었다.

"맥을 구조하거나 서식지를 옮기려는 노력은 전혀 효과없음, 이라는 대목은 맥의 서식지를 이동시킬 대책이 요구됨으로 바꿔 썼다."

"댐이 완공되면 강줄기를 따라 서식하는 어류와 조개류를 쓸어버릴 것, 이라는 대목은 하류의 어류들은 더욱 안정적인 강의 흐름을 볼 것으로 순화되었다."

"표에 의하면 댐 건설이 이 지역의 노동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래 보고서에는 "댐 공사에 필요한 인력 중 장기적인 고용은 12명을 초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중요한 보호대상 생물들의 멸종을 초래할 것이다"라는 크리스 민티의 결론을 단 한마디, '부정적인 영향'으로 정리했다."

뿐만 아니라 에이맥은 댐 프로젝트를 반드시 오르는 주식처럼 묘사했다.(321~323 쪽)

결과는 아쉽게도 샤론을 위시한 환경 단체의 노력은 벨리즈 정부의 교묘한 방어와 개발의 정당성에 의해 무너졌다. 벨리즈 정부는 그곳을 모조리 밀어버리고 댐을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댐 건설에 반대하며 투쟁했던 그녀의 행위는 정치에 둔감했던 벨리즈 시민들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그녀는 환경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록 댐 건설 반대계획이 실패했지만, 아직도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희귀동물이 남아있었고, 그녀는 지금 현재도 그들을 지키기 환경운동을 꾸준히 실행 중에 있다.

"고맙다고 말씀드리려고요.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셨잖아요. 당신이 댐 문제로 항의하지 않았다면 우린 그럴 수 없었을 거예요.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할 수 있다는 걸 당신이 보여줬어요." (433쪽)

"난 절대로 멈추지 않아요. 싸움에 진다고 해서 멈추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계속 싸우는 거죠. 다른 일을 찾으면 돼요. 남아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할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절대 낙심하고 좌절하면 안 돼요. 멈출 수 없으면 옆으로 비켜서서 수레바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내버려둘 수 밖에요." (463쪽)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펼쳐 들었던 이 책으로부터 나는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얻었다. 이 책은 이때까지 읽었던 어떤 환경 관련 책보다 더 인상적이었고, 정부 비리를 폭로하는 책들보다 부패 정부와 기업 간의 유착 관계에 사실감이 넘쳤다. 정부가 통계자료들을 어떻게 왜곡·은닉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어떤 환경 관련 판례들보다 더 뛰어난 사례를 제공했으며, 마치 내가 환경 소송과 재판에 실제로 참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책의 표지에 대해 아쉬움이 들었다. 이렇게 다양한 내용들을 감추지 말고, 더욱 부각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 책을 언뜻 보면 단순히 어떤 여자가 새를 사랑한다는 내용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표지와 띠지에 있는 글들이 이 책을 10%도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밝은 배경 대신에 어두운 배경을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아름다운 새라는 카피 대신 멸종 위기의 새라는 카피를 넣었으면 어떨까? 아름다운 마코앵무새 하나만 달랑 그려놓은 표지 대신에 인간의 잔혹함에 앵무새가 그리고 모든 생태계가 피해를 보고 있는 장면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 주위에 정부와 기업의 악수하는 장면과 돈 다발을 그려 넣었으면 어땠을까?

결코 밝지 않은 책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새겨 넣은 출판사의 의도를 확실히 파악하기는 힘들었지만, 나는 책 내용 그것만큼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불만도 가질 수 없었다.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우석훈 교수의 말처럼 '데자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부족한 필력 때문에 이 책의 장점을 더 많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주홍 마코앵무새의 마지막 비상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지키기 위한 한 여인의 투쟁

브루스 바콧 지음, 이진 옮김, 살림(2009)


태그:#주홍 마코앵무새의 마지막 비상, #브루스 바콧, #살림출판사,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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