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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 교사 88명 형사고발, 해임 등 중징계 요구

 

6월 초 서울대 교수들이 시작한 시국선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전교조 교사 1만 8천 명이 국정기조 전환과 자율형사립고 등 MB 교육정책 폐지 등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했고, 조합원 13만 명의 공무원노조도 시국선언을 할 계획이다.

 

교수, 학생, 청소년, 종교인, 문화예술인, 영화감독, 농민, 재외 교수, 재외 동포 등 시국선언에 동참한 계층보다 아직 하지 않은 계층을 찾는 것이 더 쉬울 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부는 시국선언이 전교조와 공무원에 이르니 공개적으로 징계와 형사 고발을 협박하더니 결국 26일 전교조 위원장 등 88명을 형사고발하고 해임 등 중징계 의결요구한다고 발표하였고, 대검 역시 고발이 접수되는 대로 바로 수사에 착수한다고 한다.

 

정부는 교사의 시국선언이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 의무, 제57조 복종의 의무, 제63조 품위유지의 의무, 제66조 집단행위의 금지 등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국선언 참가 교사 1만 8천명, 아니면 그들의 호언대로 서명 주동자들을 징계 또는 형사 처벌하는 것이 정당할까? 답은 '아니다. 절대!'일 것 같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실례를 통해서 살펴보자.

 

교총이 서명·시국선언하면 로맨스, 전교조가 하면 불륜?

 

(길어도 1~2분, 짧으면 몇 초밖에 안 걸리는 서명이 학습권을 침해해서 성실 의무 등을 위반한 것인지에 대한 것은 별론으로 하고) 만약 그들의 이 주장대로 전교조의 시국선언과 서명이 불법이라면 교총은 어떻게 될까? 한국 최대의 교원단체이자 대표적 보수단체라는 교총이 지난 역사에서 했던 서명과 시국선언을 몇 개만 살펴보자.

 

가장 잘 알려진 것이 1998년 이해찬 당시 교육부 장관이 주도하였던 교원 정년 축소를 반대한 서명이다. 이때 교총은 전국적으로 교사들의 서명운동을 했을 뿐 아니라 장관 퇴진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런 이해찬 장관을 2004년 국무총리로 임명하려고 할 때에도 이때를 상기하면서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극렬하게 반대하였다.

 

2003년 윤덕홍 교육부총리에 대해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윤 부총리가 당시 전국적인 이슈였던 네이스의 인권침해성에 대해서 인정하고 전교조와 네이스 재검토를 합의하자 교총은 윤 부총리의 퇴진을 촉구하며 전국적인 서명 운동에 돌입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에는 연가투쟁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동시에 학교에서는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 업무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전까지, 아니 지금도 교총은 언제나 전교조의 연가투쟁이나 업무거부투쟁에 대해 입에 거품을 물며 불법이라면서 정부 편을 들었지만 자신들에게는 이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4년 10월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와 연·고대의 고교등급제 실시가 한창 사회적 논쟁이 되던 시기에 교총은 "교육시국선언"이라는 것을 교육부 앞에서 발표했다. 교총은 이 시국선언을 통하여 고교간 학력차를 대입에 반영하고, 학업성취도 평가결과를 공개할 것을 주장하였고, 당시 최고의 화두였던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는 등 정부의 정책을 명백히 반대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2005년 교원평가 국면에서도 전교조와 함께 전국적인 교원평가 반대 서명도 진행했다.

 

이상과 같이 그동안 교총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서명을 하거나 시국선언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를 이유로 징계를 당하거나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현재 교총 회장인 이원희씨는 이런 일련의 서명과 시국선언 당시 교총 수석부회장이었고, 회장 선거에 출마할 때에는 교원의 정치적 자유를 선거공약으로 하여 당선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도 아무 문제 없이 교총 회장을 하고 있다. 교총이 하는 시국선언이나 서명은 합법이고 전교조가 하면 불법인가? 만약 정부의 논리대로 시국선언을 이유로 전교조 교사들을 징계하거나 형사처벌하려면 교총의 지도부와 회원들도 똑같이 징계를 했어야 한다는 비판에 그들은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대학교수가 하면 합법이고, 고교 교사가 하면 불법인가

 

6월 2일 서울대 교수들이 시작한 시국선언은 MB의 모교인 고려대와 그의 부인의 모교인 이화여대에서도 이어졌다. 건국대, 강원대, 부산대, 동국대, 경상대, 경희대, 동아대, 창원대, 신라대, 서강대, 성균관대, 중앙대, 충북대, 우석대, 한신대, 방송통신대, 숭실대, 전주대, 연세대, 한양대, 한국외대, 감신대, 원광대, 홍익대 등에서 개별적으로 이어졌고, 광주-전남 지역, 전주·전북지역, 대구·경북지역, 대전·충남지역 교수들은 지역별로 연합하여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멀리 해외에서도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교수들에 이어 유럽 교수들까지 나서서 MB의 정책 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이젠 대학 이름을 셀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들 교수 중 어느 누구도 징계나 형사 처벌을 걱정하지 않는다. 교수들이 서명을 하면 합법이고, 교사들이 서명을 하면 불법이라는 논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교수와 교사는 똑같이 국가공무원법의 적용을 받는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백보 양보하여 정치적 중립의 의무(정치활동 금지 의무)가 교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성실의 의무, 명령 복종의 의무, 품위유지의 의무는 교수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MB 정부의 주장처럼 교사가 서명을 하는 것이 학습권 침해라면 "교사가 서명하는 데는 1시간이 걸리고 대학교수가 서명을 하면 1초가 걸리냐?"는 비아냥에 그들은 답해야 한다.

 

'쇠고기 재협상 촉구-국민주권수호 시국선언'은 합법

 

전교조는 그동안 수차례 정부의 교육정책에 찬성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했다. 이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서명을 하기도 하고, 시국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숱한 서명과 시국선언에 대해서 그 행동 자체로 징계 또는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다. 시국선언으로 처벌을 받은 유일한 사건은 2004년의 "탄핵반대-진보정치 실현 시국선언"이다.

 

(이것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러나 이 시국 선언도 서명을 받고 시국선언을 했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이 선거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판단 때문에 정치운동 및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그 외 어떤 서명이나 시국선언에 대해서도, 정부가 부적절하다고 자제를 당부한 적은 있지만 불법이라고 형사처벌 또는 징계를 한 적은 없다. 가장 최근의 예로 2008년 6월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파동에서 전교조 교사 9000여 명 등 교원과 공무원들이 발표하였던 "검역주권 회복 및 국민주권 사수를 위한 공무원 교원 시국선언"이 대표적이다.

 

당시 시국선언문의 내용은 이번 시국선언보다 훨씬 강한 요구들을 담고 있다. 한미쇠고기 재협상뿐 아니라 대운하 중단, 어청수 경찰청장 구속 수사, 이주호 교육문화수석 파면, 내각 총사퇴 등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어떤 교사도, 공무원도 징계 또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1년 전에는 합법이었던 시국선언이 지금은 왜 불법이 되는지 정부는 설명해야 한다.

 

 

시국선언이 불법이라면 장관과 교육감부터 직무유기로 처벌해야

 

그들의 논리대로 교사들의 시국선언이 불법이라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징계와 형사 처벌을 당해야 한다면 교과부 장관과 교육감부터 받아야 할 것 같다.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비롯하여 전교조와 교총이 지금까지 수차례 시국선언을 해왔지만 정부는 이를 징계하거나 형사 처벌하지 않았다. 공무원은 형사소송법 제234조(고발) "②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에 의하여 범죄라고 판단될 때에는 형사고발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범죄라고 인식하였음에도 고발하지 않은 것은 형법 제122조에 의한 직무유기죄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즉, 그들의 논리대로 교사의 시국선언이나 서명이 범죄라면 지금까지 수없이 이루어졌던 교사들의 서명과 시국선언을 고발하지 않았던 공무원들, 특히 최고 책임자인 교과부 장관과 교육감은 직무유기죄에 의한 형사 처벌과 징계를 피할 수 없다.

 

반대로, 교사의 시국선언이 불법이 아니라면 형법 제123조에 의한 직권남용죄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져야 한다. 교사의 시국선언을 불법이라고 하자니 그동안 고발하지 않은 것 때문에 교과부 장관과 교육감이 직무유기죄로 처벌받아야 하고, 합법이라고 하자니 지금 그들이 하려는 교사의 형사 처벌과 징계가 직권남용죄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교과부와 교육감은 시국선언교사에 대한 형사 처벌 방침 발표로 도리어 그들이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자가당착이다.

 

정부 정책 비판이 정치운동이라는 주장은 궤변과 억지의 극치

 

시국선언이 불법이라는 정부 논리의 출발점은 이것이 정치운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교원은 국가공무원법에 의하여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정치운동이 금지되어 있으며, 교원노조법 역시 교원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맞는 것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엉터리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잘 알려진 정의 중 하나가 "인간은 호모폴리티쿠스(정치적 인간)"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정치적 욕구를 가지고 있고, 정치적 활동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교원과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규정하면서 정치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원과 공무원은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인가? 아니다. 우리 국가공무원법과 그에 따른 국가공무원복무규정은 정치운동의 의미에 대해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에서 정치운동이란 정당 또는 선거와 관련되어 이를 반대 또는 지지하기 위한 활동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고,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7조에서 정치적 활동 역시 정당 활동 또는 선거에서 지지 또는 반대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즉, 국가공무원법이나 교원노조법에서 금지하는 교원의 정치 운동이란 인간의 모든 정치활동이 아니라 정당이나 선거 운동과 관련된 좁은 의미의 정치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또는 정치 활동 금지 의무가 모든 정치 행위에 해당한다면 교원은 투표도 하면 안 되고, 선거 유세를 보아서도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누가 보아도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교사들의 이번 시국 선언은 정당 활동도 아니며, 선거와 관련하여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것도 아닌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국가공무원법이 금지하는 정치적 중립의 의무나 정치운동 금지 의무 위반이 아니다. 즉, 징계나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이를 직무상 의무를 해태하는 불법적인 집단행동으로 볼 수 없다. 이는 기존의 헌법재판소 결정이나 대법원 판례에서도 일관되게 확인되는 바이다.

 

정부 정책 찬성 또는 반대는 개인의 선택이자 국민의 권리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모든 국민의 천부적인 권리이다. 이것이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임은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다. 이번 시국선언 역시 그 형식상이나 내용상 교사들의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정부의 징계나 형사 처벌 운운은 설득력이 없다. 정말 이들을 징계한다면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들의 논리대로 이것이 형사처벌 대상이라면 그들 자신부터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제라도 교사들과 공무원의 시국선언에 대한 형사처벌, 징계 방침을 철회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정책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올바른 선택이다.

 

정부 정책을 찬성하는 것이 자유이듯 반대하는 것 역시 개인의 선택이고 민주주의 시민의 권리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이다.


태그:#시국선언, #교총,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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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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