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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용산 참사와 관련, 문화인들의 연속 기고글을 받아 실을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월 31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희생자 제2차 범국민추모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인해 부근 한국관광공사앞에서 개최된 가운데,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1월 31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희생자 제2차 범국민추모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인해 부근 한국관광공사앞에서 개최된 가운데,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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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기공의 나라

권력 핵심부에 염력기공사가 초빙되었다는 소문이다
대단한 투시력을 가진 그는 호풍환우술을 자유자재로 부린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촛불만 들면 비가 올 리 없다는 것이다
철거민들이 불타 죽은 용산참사가 일어났을 때는
희대의 살인마를 때맞춰 잡히게 했다
나는 <한겨레>에서 촛불현장 동행 취재 요청이 왔을 때 갑자기
외삼촌이 돌아가신 것마저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송경동 시인은 용산 철거민 참사 범대위 일을 보다
영장을 들고 온 경찰에게 휴대폰까지 앗기고 말았다고 한다
그는 그때 누구도 찾아올 수 없는 곳에 숨어 있었다고 하는데
과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염력기공사는 내가 무슨 글을 쓸려고 하는지조차 알아맞히고 신호를 보내
지레 겁을 집어먹고 단념케 하거나 엉뚱한 글을 쓰게 한다
국방부 선정 금서를 발행한 출판사에 다니고
피디 수첩에 출연해 그에 항의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감시를 받고 있다는 환각에 시달리게 한다
풍수학상 화마를 잡는 남대문이 불타버렸으므로 촛불을 끄기 위해
대운하를 추진해야 한다는 설이 조금씩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나라
오오 두려운 괴력난신의 염력기공사가 틀림없이
권력 핵심부에 영혼을 팔아버렸나 보다
용산참사 현장 불에 그슬린 건물에
염력기공세계총본부 간판이 아직 붙어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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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수사학 5

벚나무의 괴로움을 알겠다
꽃 피는 벚나무의 괴로움을 나는
부끄러움 때문이라 생각한다

퇴근길 지하철 계단 위로 벚꽃이 날린다
출입구 쪽에서 흩날리던 꽃잎 몇이
바람을 타고 계단에 날아와 앉는다

이 지하철 역 가까운 곳에서는 얼마 전
철거민들이 불타죽은 일이 있었지

계단 계단 누운 벚꽃을 밟고 오르며 나는 인어를 생각한다
떨어지지 않는 철거민 생각 대신
벚꽃 아래 사진을 찍던 여자들
종아리 맨살에 화르르 달라붙는 꽃비늘과
그이들 가슴에 익어갈 버찌,
버찌에 물든 입술처럼 푸르를 바다 생각에 젖어든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도리질 도리질
언젠가부터 나는 꽃을 마음 놓고 사랑하지 못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춘투를 읽고,
꽃향기 따라 닝닝거리는 트럭 점포 앞에서는 유랑과 실업을 읽었다

벚꽃을 나는 이제 그냥 벚꽃으로만 보고 싶을 뿐인데,
어깨를 스치는 꽃비늘에 사라져버린 인어와
바닥을 씻고가는 물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도 같은데

여기는 불과 재의 시간을 지나온 먼지 한 점이 아직 눈을 감지 못하는 땅
숨결을 타고 들어온 먼지들이 쿨룩쿨룩 잠든 내 몸속을 하얗게 떠돌아다니는 땅

꽃잎이 오르내리는 사람들 구두 밑에서 으깨진다
절반쯤 으깨진 몸을 바닥에 붙이고
날아오를 듯 말듯 들썩인다
푹 꺼진 계단 계단 제 몸에 찍힌 발자국을
들었다 놓는 꽃잎

[시인의 말]

용산참사 현장에 다녀온 뒤 인어에 관한 시를 썼다가 지웠다. 지운 시는 다음과 같다.

남천동 벚꽃길/ 처녀 아이들이/ 사진을 찍는다/ 미니스커트차림,/ 드러난 허벅지와/ 종아리 맨살에 화르르/ 떨어지는 꽃비늘이/ 달라붙는다/ 저들 가슴에도 머잖아/ 버찌가 익겠구나/ 달큼한 버찌 맛에 입술이/ 바닷빛을 띄겠구나/ 날리는 꽃비늘 비늘/ 활짝 핀 벚나무 아래/ 인어 하반신이 마구/ 파들짝거린다"

사람들은 새로 쓴 <나무의 수사학 5>보다 벚꽃과 인어의 동일성을 토대로 한 시가 훨씬 더 미적으로 완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지나친 시적 자의식이 언어의 생동감을 반감시키고 있다는 따끔한 비판을 해오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염력기공의 나라> 역시 작위적이고 언어의 낭비가 심해서 재래의 서정시 문법을 충실하게 재현해온 시인답지 않다는 의견을 전해오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애정어린 질책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이 두 작품을 발표하기로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참사 현장에서 만난 고통에 찬 눈빛들 앞에서 나는 내 시가 더 이상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는 자주 아름다움을 배신하는 데서 시에 더 가까워지는 장르가 아니던가. 끝없이 유동하는 현실에 부딪쳐서 파열할 때 새로운 말이 태어나곤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감히, 시가 현실이 되어야 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저 나는 노래해야 하나 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고통을 잊지 않는 데서부터 처음 시를 쓰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 손택수 시인 / 시집으로 <목련전차> <호랑이발자국> 등이 있다. 2007년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실천문학사> 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태그:#용산참사, #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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