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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이만큼 손 떨리고 가슴이 내려앉는 단어도 드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61년 전에는 호환마마보다도, 그 어떤 전염병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병(?)이 '빨갱이'였다. 이 병에 걸리면 100% 목숨을 잃고 가족과 친척까지 굴비처럼 엮여서 깊은 산골짜기나 바다에서 총에 맞아 죽어갔다.

원래 전염병은 치료약이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병에 걸리면 삼대 혹은 그 이상으로 오랜 세월동안 '붉은 딱지'를 달고 살면서 국가로부터 연좌제로 옥죄어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했다.

이 지독한 '빨갱이'라는 전염병이 20세기를 넘어 21세기로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이 전염병을 '유령'이라고 부르겠다.

이 유령은 이명박 정부부터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최근 들어 우익단체들이 집회에서 나오고 있는 '빨갱이' 발언. 그 장면들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다시 부활하는 '레드 컴플렉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2일 '6·25전쟁 59주년 기념 및 북핵 규탄대회'에 참석해 참전 용사에게 격려금 명목으로 돈 봉투를 전달한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고 민주당이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재향군인회 회원들이 17일 오전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참전 용사들의 명예를 짓밟았다"며 항의 기자회견을 연 뒤 당사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2일 '6·25전쟁 59주년 기념 및 북핵 규탄대회'에 참석해 참전 용사에게 격려금 명목으로 돈 봉투를 전달한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고 민주당이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재향군인회 회원들이 17일 오전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참전 용사들의 명예를 짓밟았다"며 항의 기자회견을 연 뒤 당사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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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서 재향군인회 서울시회 소속 회원들이 몰려와 '민주당은 빨갱이'이라고 소리쳤다. 이 사건의 발단은 오세훈 시장이 지난 12일 '6.25전쟁 59주년 기념 및 북핵 규탄대회'에 참석해 참전 용사에게 격려금 명목으로 돈 봉투를 전달한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고 민주당이 제기했기 때문이다.

또 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해방 후 간암으로 4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신용기(거제 하청면 출신, 고려공산청년회 활동, 거제의 3대 항일운동가 중 한 명) 선생이 작년 8월 국가로부터 건국포장을 받았다. 지역 여러 인사들이 그 분의 뜻을 기려 기념비를 건립했다.

그런데 기념비 건립에 참여한 지역 인사들은 최근 북핵 사태와 우익단체의 무모한 행동을 보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한 인사는 "이 분의 기념비를 건립했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우려섞인 말을 하였다.

또한 일부 우익단체들의 '빨갱이들을 숙청해야 한다'는 말이 횡행하고 있으니, 지난날 한국전쟁 전쟁 당시 집단학살 당한 국민보도연맹 거제유족회 회원들은 또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느냐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다.

한편 지난 미국산 소고기 반대운동에 나선 5백만의 시민들이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 촛불을 들고 나섰다. 이명박 정부는 일부 불순세력이 있다며 폭력진압을 서슴지 않았다. 공권력의 폭력은 일부 시민들을 '좌빨'(좌익빨갱이)로 몰아세웠고, 뉴라이트연합을 비롯한 극우익단체들도 합세했다.

최근 뉴라이트와 같은 우익단체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했던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빨갱이' 혹은 '좌파정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노무현 서거 이후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마련한 시민들을 '빨갱이'라고 지목하고 공권력에 의해 분향소를 강제철거했다.
또한 최근 대학교수와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교사 등의 잇따른 시국선언에 우익단체들은 "현 상황은 6.25전쟁 당시처럼 혼란스럽다" "좌파가 국가파괴세력으로 변해 법치주의를 흔들고 있다"는 등 '신종 인플루엔자'보다 무서운 "빨갱이 교수들"이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투쟁하던 노동자, 민주화를 염원하던 민주인사, 학생, 청년들을  '빨갱이'라고 부르는 것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또한 반공교육을 거부하고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 간디학교 교사에게도 똑같은 딱지를 붙이고 국가보안법이란 퇴물을 이용하여 처벌했다.

'빨갱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책 표지. 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 책 표지. 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 전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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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61년 전과 비슷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 혹은 후퇴, 매카시시대와 같은 '마녀사냥'이 도래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1세기에도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빨갱이'. 이 유령의 탄생을 다룬 책이 최근 발간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빨갱이'의 탄생>(김득중, 선인, 2009)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책은 여순사건과 이승만 반공국가의 탄생을 다룬 학술서적이다. 지은이는 여순사건을 통해 한국의 '빨갱이' 탄생을 재조명하고 반공국가의 형성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운동이나 민족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지칭하였고, 해방공간에서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지은이는 여순사건 이후 '빨갱이'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빨갱이란 단지 공산주의 이념의 소지자를 지칭하는 낱말이 아니다. '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난 비인간적 존재, 짐승만도 못한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기에 '비국민'인 '빨갱이'는 초법적으로 죽음을 당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여순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이승만은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세웠다. 이승만은 국민을 '좌'와 '우'로 나누어 '비국민'을 제거대상으로 보고, 각종 단체와 민주인사까지 '빨갱이'로 몰아서 정치보복과 학살을 자행했다고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반면 국방부에서 간행한 공식 간행물에는 여순사건을 '여수 제14연대 남로당 세포들이 대한민국을 전복하기 위해 일으킨 군내의 쿠데타'이며 남로당 중앙과 지방 좌익들이 일으킨 반란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뉴라이트에서 편찬한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는 "군 내부 빨갱이들의 반란사건"이라고 적고 있다. 따라서 이들 단체는 여순사건을 진압하고자 나선 군인과 경찰, 이승만 정권은 '체제 전복'을 방어하는 수호세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극명한 인식 차이를 볼 수 있는 여순사건에 대하여 지은이는 "분단 정부 수립과 국가 건설 과정의 중요 성격을 드러내주는 사건이자 반공체제를 탄생시킨 한국 근현대사의 핵심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에 대해 '부정적이고 편향적인 현대사 이해를 넘어 긍정적이고 자랑스러운 건국 신화'를 만들겠다는 모토를 내걸고 현대사를 재서술하려 하고 있다며 뉴라이트계열의 역사교과서를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빨갱이' 과거에서 현재로

여순사건 당시 '빨갱이'를 색출하는 모습. 경찰들은 여순시민들을 학교 운동장에 불러놓고 '빨갱이'를 색출하였다.
▲ 여순사건 당시 '빨갱이'를 색출하는 모습. 경찰들은 여순시민들을 학교 운동장에 불러놓고 '빨갱이'를 색출하였다.
ⓒ 김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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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연대 소속의 군인들은 제주도에서 국가와 미군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민간인 학살을 거부했다. 이 거부의 몸짓에 지방 좌익 세력이 가담함으로써 두 달 전 수립된 이승만 정권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이승만 정부와 미군이 대응하지 못할 만큼 치밀하게 계획되거나 뚜렷한 목적이 있는 봉기는 아니었다.   

지은이는 여수에서 일어난 봉기는 14연대 하사관 세력이 독자적으로 일으킨 봉기였고, 북한 정권이나 남로당 중앙은 물론이고 전남 도당이나 여수·순천 지역의 지역당까지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여수와 순천이 봉기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됐다고 적고 있다. 이 사실은 다수 민중들이 동참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해방공간에서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와 악질 경찰들에 대한 민중의 불신과 불만이 한순간에 폭발한 셈이다. 그 파괴력은 청년 학생들까지 합세함으로써 엄청난 항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북한과 일부 남로당의 지령으로 사건이 발발했다고 흑색선전을 하였고, 미군 수뇌부까지 합세하여 '선량한 양민'들을 '빨갱이'로 몰아갔다. 빨갱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군대, 경찰 같은 국가 기구뿐만 아니라, 언론인, 문인, 종교인들도 가세했다.
이 책의 저자는 "언론인, 문인, 종교인들 같은 지식층은 여순사건을 목격하지 못한 대다수 국민들에게 좌익의 비인간성을 널리 알림으로써 적대 의식에 기초한 국민 통합의 공감대를 만들어 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승만은 반공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반공국가'를 갈망했다. 여순사건이 낳은 한국 사회의 반공체제는 한국전쟁기 국민보도연맹원을 비롯한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낳았다. 4.19를 밟고 일어선 박정희는 반공을 국시로 세우고, 독재타도를 외친 민주인사들을 죽이거나 투옥시켰다. 민주화를 염원하던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과 노태우, 민주인사였던 김영삼도 반공이데올로기를 정권을 유지하는데 이용하였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우익단체는 이를 '좌파정부' '빨갱이정권'이라 지칭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1년 후 '반공국가'가 재탄생하려고 하고 있다. 최근 뉴라이트, 조중동 보수언론 등은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이하 언소주)에 대해 "언소주는 조폭"이라고 말하고, 노무현 장례식에 참석한 일부 인사들을 보고 "역대 빨갱이들이 다 모였다"라고 폄하하고, 촛불을 든 소녀에서 노인까지 '촛불빨갱이'이라고 부르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보수언론들의 보도행태나 뉴라이트 소속의 학자, 문인, 종교인들의 발언을 보면 61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끝나지 않은 전쟁, 한국전쟁 59주년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북한 핵 사태로 인하여 우리사회는 '빨갱이' 논쟁이 더욱 가열될 조짐이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고, 정부를 비판한다고, 조중동에 게재되고 있는 광고의 회사물품을 불매운동한다고 '빨갱이'라 부르는 사회.  

임기 초기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국내에서는 과거로 회귀하는 이중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우익단체 등이 편승하여 더욱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도 '빨갱이'(이미 우익단체서는 빨갱이라고 부르고 있다)로 지목되었다. 이미 20년 전의 일이다. 지역에서 민간인 학살을 연구한다고. 사회주의운동가나 친일파들을 조사하여 신문에 게재한다고 지역의 일부 보수세력들은 필자를 '빨갱이'이라고 불렀다. 지금과 같은 현실이 계속되면 '빨갱이' 논쟁은 다시 계속될 수밖에 없다.



'빨갱이'의 탄생 - 여순사건과 반공 국가의 형성

김득중 지음,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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