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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이 돌아왔다.

오랜 침묵을 깨고 귀환한 작가 김진명의 손에는 묵직한 문제작 <천년의 금서>(새움출판사)가 들려 있었다. "꼬박 180분 동안 앉아서 끝까지 다 읽었다!" "다 읽을 때까지 결코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다수의 누리꾼과 블로거들이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쏟아낸 찬사였다.

그리고 단 일주일 만에 <천년의 금서>는 베스트셀러 4위(예스24 기준)로 뛰어올랐다. 불황으로 고전하는 최근 출판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놀라운 기록이었다. "그동안 몇몇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용두사미식 결말은 더 이상 없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서술 때문에 술술 읽혔다"는 한 블로거의 평가는 빈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천년의 금서>를 작가의 16년 전 첫 작품이자 출세작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연결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천년의 금서>의 주인공 이정서에게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 이용후가 연상된다는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사회자의 평가도 있었다. 실제로 이정서의 직업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거느린 소설의 주인공' 이용후와 같은 핵물리학자로 설정돼 있다.

하지만 주인공 이정서가 소설 속에서 활약한 공간은 과학이나 정치가 아니라 '역사'의 영역이었다. 자살(타살로 위장된)한 물리학 교수 김미진과 실종된 역사학 교수 한은원의 친구인 이정서는 두 사람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의 유래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

그러니까 국호인 대한민국에 들어있는 '한(韓)'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라는 '상식적이지만 본질적인 질문'이 <천년의 금서>의 모티프이다.

"삼한은 한(韓)이라는 웅혼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

 소설가 김진명씨.
 소설가 김진명씨(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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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전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 목 놓아 외쳤던 구호였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한국, 한국인, 한반도 등의 단어를 너무나 자주 그리고 쉽게 쓰고 있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의 기원과 유래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렇게 심각한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작가는 <천년의 금서>를 통해 아프게 따져 묻고 있다.

1948년 제헌의회에서 제정된 국호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유래를 추적하면 또 하나의 대한민국(1919년, 임시정부)과 대한제국(1897년, 고종황제)이 등장한다.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제(帝)'를 '민(民)'으로 바꾼 것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고종은 왜 국명을 조선(朝鮮)에서 한국(韓國)으로 바꿨을까? 물론 사료에는 "삼한(三韓)을 잇는다"(고종실록)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김진명은 여기서 커다란 모순을 발견했다고 한다.  

"과거 역사를 보면 대다수 나라들은 새로운 국명을 지을 때마다 화려한 과거를 계승하려 했다. 실제로 왕건의 고려는 만주를 호령했던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지어졌고, 이성계의 조선은 단군이 통치하던 고조선(실제 명칭은 그냥 조선)을 잇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삼한은 마한·진한·변한을 가리킨다. 우리 학생들이 지금 배우고 있는 국사 교과서에 따르면, 삼한은 한반도 남부에 위치해 있었던 작은 나라들이다."

이 대목에서 김진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국경으로 두고 있었던 조선이 고작 한반도 남단에 움츠리고 있던 삼한을 잇고자 국호를 바꿨을까? 더욱이 고종은 당시 외세의 억압을 떨치고 조선의 기개를 펼치기 위해 칭제건원(稱帝建元)까지 했던 터였다. 어쩌면 삼한은 그전에 이미 한(韓)이라는 웅혼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문득 들었던 그 '상식적 의문'이 나로 하여금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진명은 자신의 작품이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고 해서 '과거지향'이나 '복고주의'로 해석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선입견에 의해서 '국수주의'나 '국가주의'로 규정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도리어 그는 <천년의 금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민주주의적 가치의 후퇴, 북한의 핵실험과 극한 대결로 치닫는 남북관계 등 산적해 있는 현실적 과제들을 풀 수 있는 열쇠와 지렛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명과의 인터뷰는 지난 3일 오후 2시부터 평창동에 위치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고대사를 다룬 작품 이야기를 하기 전에 현재의 사안에 대한 작가의 생각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가장 더티한 지도자의 정권에서 가장 깨끗한 지도자가 부패혐의... 아이러니"



- 봉하마을에 조문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알아보는 사람들은 없었나?

"일반 조문객들 사이에 섞여서 조용히 배례하고 돌아왔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 끝없이 이어지는 조문 행렬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역사에 대하여 생각해 봤다. 역사는 지배층의 위로부터의 규정과 민초의 아래로부터의 희망이 뒤섞이고 엮어지는 과정이다. 그날 민초들은 말없이 흐느꼈지만 거기서 과거 민주화 대항쟁과 맞먹는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 '인간 노무현'을 직접 만난 적은 있었나?
"같은 부산 출신이라 공·사석에서 몇 차례 인사를 나눌 수 있었지만 깊은 대화를 한 적은 없다. 처음에는 그냥 편하고 가식 없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영남 출신으로 호남색이 강한 정당에서 어렵게 정치 하는 것을 보면서 '외로운 늑대'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했다."

- '대통령 노무현'의 죽음이 우리에게 던진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그를 따르던 사람과 적대적으로 대하던 사람보다 중간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 중요한데, 그들의 정신적 충격이 아주 컸을 것이다. 양비론과 냉소주의에 빠져 있던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감동과 안타까움의 크기와 깊이가 이후 한국 사회 변화에 의미 있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 김동길·조갑제·지만원·변희재 등의 발언은 들었나?
"한마디로 미친 ×들이다. 논리도 편협하거니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 논평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

- 이명박·검찰·언론의 합작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측면이 있다. 특히 '피의사실공표죄'를 스스로 어겼던 검찰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사실 나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 부동산 투기 의혹의 진상을 조사해 달라고 검찰에 진정을 한 바 있다. 지도자의 부동산 투기는 오히려 독재보다 더 더티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장 더티한 지도자의 정권에서 가장 깨끗한 지도자가 부패혐의로 조사받았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기자는 2007년 1월 28일, 2월 28일 두 차례에 걸쳐 김진명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나비야 청산가자>를 발표했던 당시 그는 "손학규 한나라당 탈당은 결코 '소설 같은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얼마 후에 그의 예언(?)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한편, 그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 후보를 향해 다음과 같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정치지도자가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은 밀수보다 더 나쁘고, 살인보다 더 무서운 악랄한 짓이다. (이명박 비리의혹을 옹호하는 지지자들에게) 단순히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다른 것은 보지 않겠다는 것은 독재를 부르는 행위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략) 이명박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거나 진심으로 반성하려는 자세가 없다."

- 대중적인 정치소설을 써왔던 작가로서 앞으로의 정국을 전망한다면?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엄청난 사건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나라는 큰 문제 없이 굴러갈 것이다. 그래도 현직 대통령이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그는 참 정치를 모르고 알려 하지도 않는다.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도리어 내가 주목하는 것은 따로 있다."

- 그게 뭔가?
"힘(권력) 앞에서 나약했던 지식인들이 변화될 가능성이다. 사실 이번 사건이 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부끄러움을 깨닫게 했다. 앞으로 손해와 위험을 무릅쓰고 실천과 행동에 나서고 싸우는, 안중근과 체 게바라 같은 지식인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체질을 서서히, 차츰차츰 하지만 거대하게 바꾸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 남북관계가 갈수록 대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데?
"그렇다. 하지만 이번 미사일 발사는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이 남한 정권을 살려준 셈이 됐다. 진보 진영은 북한을 원망하는 기미를 보이는데, 북한 지도층은 남한의 사고틀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좌와 우를 떠나서 완전히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라면 사재기 현상이 없어졌다. 거꾸로 안보 불감증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정국이 얼어붙고, 감정이 고조되고, 대결 구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대책도 없이 무조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도리어 좋지 않다. 정치적 목적 하에 안보 불안을 조장했던 과거의 학습 효과 때문에 남한 시민은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제시했던, 남과 북이 종국에는 같이 가야 할 공동운명체라는 발상의 전환도 일정하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 정치권 일각의 핵 무장론, 어떻게 보나?
"가소롭다. 너무나 생각 없는, 철부지 같은 발상이다."

- 작가 자신이 소설에서 남북 합작 핵 무장을 제시했던 당사자인데, 그렇게 말할 수 있나?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독도 영유권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언제든지 독도를 빼앗으려 한다. 나는 일본의 독도 침공에 대비하기 위한 핵 무장을, 그것도 남북 합작으로 하자고 제시했다. 북핵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도 핵을 개발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정치인들은 북한을 겨냥한 핵무장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그것은 민족을 향해 핵을 쏘겠다는 반역사적 행위로 공멸을 재촉할 뿐이다. 민족에 대한 애정이 없는 반사적인 감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그렇다면 북한의 핵 개발은 어떤가?
"같은 논리의 연장으로 나는 북한의 핵 개발도 반대한다. 자국 주민의 기아와 아사에도 불구하고 정권 유지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현대적 의미에서 국가가 더 이상 아니다. 따라서 남한 일각의 핵 무장론은 그런 북한과 같은 수준이 되자는, 아주 유치한 발상이다."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특수성이 있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애를 먹은 것 아닌가. 대북관이 뚜렷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갈팡질팡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큰 문제는 민족적 시각과 철학의 깊이가 없다는 점이다. 동족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고, 그렇다고 날카로운 대북전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남북관계 교착화'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 정도이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리는 것도 책임 있는 자세는 아니다."

- 그게 무슨 말인가?
"정부의 책임은 겉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반북 세력에게 있다. 그들은 북한 정권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과 어떤 대화와 타협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 정부가 그들과 코드를 맞추고 있다 보니, 두 세력이 갈라서지 않는 한 어떤 유연한 대북 정책도 기대할 수 없다."

-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없나?
"사실 더 무거운 책임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통 국민에게 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반북 세력의 대북 정책에 동조한다. 그들의 의식과 무의식의 기저에는 '나도 살기 어려운데 왜 가난한 북한에 퍼주느냐'는 생각이 깔려 있다.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마저 설문조사에서 '왜 가난한 북한과 통일해서 우리의 부담을 늘리려 하느냐'며 통일에 대해 노골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이러한 '근시안적 이기주의'의 잡초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민족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의 나무를 심지 못한다면 남북관계의 평화적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 민족과 국가, 혹은 역사와 민중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 무조건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애국심이 약한 사회는 비겁한 사회가 된다. '나 혼자만 잘살면 되지 왜 나라에 충성하고, 타인에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민족과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바로 그런 나라에서는 '부동산 투기꾼'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 국가나 애국심에 대한 거부 반응은 진보 진영에서 도리어 더 강한 측면이 있는데?
"과거에 독재정권이 이용해 먹었기 때문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보 진영의 이념과 철학에서 국가나 애국심의 개념을 아예 삭제하거나 나아가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이다. 개인의 자유, 정의, 휴머니즘은 물론 소중한 가치이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공간과 대상이 일차적으로는 국가와 민족이기 때문이다."

"국호의 유래조차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나?"

자연스럽게 화제를 <천년의 금서> 이야기로 돌렸다. 김진명은 학교의 역사 공부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을 지적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 공부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고대사를 신화로 처리했기 때문에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인데, 결과적으로 '통합'의 역사보다는 '분열'의 역사부터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말은 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신라와 백제에서 경상도와 전라도를, 고구려에서 북한을 연상한다. 우리처럼 민족적 수난을 겪었던 폴란드 같은 나라들을 그나마 끝까지 견디게 만들었던 것은 '역사'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어리석게도 우리는 역사를 거꾸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고시 과목에서 국사가 제외되는 등 현실에서도 역사는 철저히 천대받고 있다."

- <천년의 금서>를 구상한 시점은?
"5~6년 전부터였다. 당시부터 왜 우리가 한국인이라 불리는지, 왜 우리나라 국호를 한국으로 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물어봤지만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정말 이건 문제라고 생각했고, 심층 추적을 시작했다."    

- 주인공 이정서 박사와 한은원 교수가 잃어버린 고대사 3000년을 찾아내는 과정이 '소설'이 아니라 '진짜'였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일부 독자가 보이기도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상상력만 가지고 소설을 쓰지 않았다. 언제나 객관적 근거와 자료를 확보한 뒤에야 집필을 시작했다. 광개토대왕비의 보이지 않는 세 글자의 해석을 둘러싸고 수백편의 논문이 나오고 대다수 학자들이 '석회도말론'에 발목이 잡혀 있을 때 마지막 글자가 '동(東)' 자라는 것을 밝혀낸 것도 나였다. 명성황후의 비극적 최후를 밝혀낸 '에조보고서' 전문을 일본에서 발굴해 낸 것도 나였다.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은데, 이것들만 별도로 모아서 책이라도 한 권 내야 할 것 같다."

- 역사학자들의 반응이나 평가는 없었나?
"역사학자도 아닌 사람이 왜 나서느냐, 김진명이 내놓은 주장은 틀렸다, 사실 나는 이런 반응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논쟁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역사학자, 특히 고대사 전공자들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본다. 국호의 유래조차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

-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의 실험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주류 사학계가 위서로 규정한 <단군세기>는 고려 말기 이암이 썼다. 그런데 이 책에 '13세 단군 흘달 재위 49년(서기로 하면 BC 1734년)에 오성취루(五星聚婁: 화성·수성·목성·금성·토성이 양 별자리에 한 줄로 모였다) 현상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박 교수가 천문학 실험을 해보니 BC 1733년에 실제로 그런 현상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장구한 역사에서 1년이라는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은 고서에 등장하는 '남해조수퇴삼척'이라는 자연현상도 박 교수의 실험을 통해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 과학적 실험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규명했다는 것인데, 그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무언인가?
"중국 역사서에 최초로 고조선이 등장한 것이 BC 200년 무렵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BC 1734년은 가공할 만한 기록이다. 오성취루 등의 천문 현상을 기록할 정도로 당시 한반도에 문명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류 사학계가 <단군세기>, <환단고기> 등 우리 고서에 나타난 일부 오류를 들어서 무조건 위서로 몰아 왔는데, (과학실험에서 보았듯이) 앞으로는 일부 기록은 사실일 수도 있다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 천문학적 근거에 이어서 서지학적 근거도 제시했다. 작품에는 중국의 수많은 고서가 등장하는데,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천년의 금서로 묘사한 <씨성본결>은 가상의 저서이지만 <시경(詩經)>과 <잠부론(潛夫論)>의 기록은 사실 그대로이다. 실제로 <시경> '한혁(韓奕)'편에는 '한후(韓候)가 수도에 들자 선왕(宣王)은 경계를 논하였으며 조카딸을 시켜 밤 시중을 들게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한후가 바로 한국인의 조상이다."

- 한(韓)은 중국에도 존재했던 나라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시황제가 통치했던 진(秦)나라가 망하고 초(楚)나라의 항우와 한(漢)나라의 유방이 천하 패권을 놓고 다툴 때 유방을 도왔던 명장 한신(韓信)이 바로 진나라에 망한 한(韓)나라의 후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맞다. 한신의 조상 나라인 한(韓)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먼저 한을 국호로 쓴 나라이다. 실제로 이 나라는 춘추전국시대 전국칠웅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 한나라의 건국 시점은 BC 403년이다. 하지만 한혁편에 나오는 선왕은 춘추전국시대보다 한참 앞선 시대인 주(周)나라의 왕인데, 재위 기간이 BC 827~782년이다. 그러니까 한후가 그보다 400년이나 앞선 시대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두 나라는 전혀 별개이다."

- <잠부론>에선 어떤 기록을 찾았나?
"이 책은 후한(後漢)의 대학자 왕부가 지은 문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의 씨성(氏姓)편에 한후가 다시 등장한다. 실제로 '한후는 연나라 부근에 있었다'거나 '그 후에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 등의 대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위만이라면 고조선과 관련 있는 인물이 아닌가?
"그렇다. 여기서 바다는 황해가 틀림없다고 본다."

-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공백으로 남아 있던 고대사 부분이 복원될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 우리 조상은 BC 1733년 오성취루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약 1천년 후인 BC 827~782년에 한후는 주나라 선왕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1천년의 시간이 흐른 뒤 후한의 왕부는 <잠부론> 씨성편에서 한후의 후손이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고 기록했다. 작품 속에서 천년의 금서로 묘사한 <씨성본결>은 바로 이 '씨성'편을 모델로 설정한 것이니,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 지금 얘기한 것들이 모두 사실인가?
"직접 확인해 보면 될 것 아닌가."

기자는 인터뷰 기사를 작성한 뒤 국회도서관을 찾았다. 국회도서관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지면 관계상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자.

덧붙이는 글 | 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기자, <시민의신문> 기자, <오마이뉴스> 편집위원, <여의도통신>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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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