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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헌책이란 무엇이고, 헌책방이란 어떤 곳인가

헌책방마실을 열 몇 해 이어오는 동안 '그곳에 책이 있고, 책을 아끼는 사람이 있으며, 책과 사람이 조촐히 어우러지는 삶자락이 있으니 간다'고만 생각합니다. 작은 헌책방이라면 작은 헌책방대로 반갑고, 큰 헌책방이라면 큰 헌책방대로 반갑다고 생각합니다. 오래도록 다닌 헌책방이라면 '오늘까지 그곳에 어떤 책들이 새로 들어와서 꽂혔을까' 하고 헤아리면서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직 몇 번 찾아가지 않았거나 처음 찾아가는 헌책방이라면 '오늘 찾아가는 이곳에는 어떤 책이 어떻게 들어와서 꽂혀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내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을 곱씹으면서 이 만한 돈으로 책을 몇 권이나 만날 수 있을지 되뇌고, 이 돈을 다 쓸는지 아니면 많이 남길는지 가누어 봅니다.

책값으로 돈을 다 쓰면 살림돈은 바닥이 날 텐데, 살림돈이 바닥나도 '내 마음밭을 알차게 일구어 주는 힘이 되는 책이라면 얼마든지 좋다'고 생각합니다. 바닥난 살림돈이란 어찌어찌 일해서 채우거나 메꿀 수 있으나, 오늘 그곳에서 구경하던 책이란 어찌어찌 다리품을 팔고 손품을 판다 하여도 좀처럼 다시 만날 수 없거든요. 판이 끊어진 책 가운데에는 여러 차례 만나는 책이 있고 퍽 자주 만나는 책도 있습니다만, 내가 찾는 모든 책을 어느 때라도 만날 수 있지는 않습니다. 헌책으로도 그렇지만 새책으로도 그렇습니다. 판이 끊어진 책은 새로 찍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책을 사서 읽어 준 만큼'만 세상에 있고, 이렇게 세상에 있는 책은 '사서 읽어 준 사람이 내놓아야' 고물상에든 파지간에든 길바닥에든 나오게 되고, 이렇게 밖으로 나오고 떠돌아야 바야흐로 헌책방으로 들어갈 길이 열립니다. 때때로, 어떤 창고에 오래도록 묵혀 있다 나오는 수가 있는데, 이런 책들은 우리가 꾸준히 헌책방마실을 하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쌓인 책과 책손.
 쌓인 책과 책손.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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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는 새책 형편 또한 얼추 엇비슷합니다. 좋은 책을 펴낸다며 애쓰던 출판사가 갑작스레 문을 닫기도 하지만, 좋은 책이라 하더라도 출판사 살림이 썩 넉넉하지 않고 팔림새 또한 썩 낫지 않다면 출판사에서 2쇄나 3쇄를 찍을 기운을 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작고 돈없는 출판사만 거듭 찍기를 버거워하지 않습니다. 크고 돈있는 출판사에서도 거듭 찍을 마음을 품지 않기 일쑤입니다. 열 해에 걸쳐 이천 부를 파는 책이라 한다면 새로 찍기를 그만두고 훨씬 많이 팔릴 만한 새로운 책에 눈길을 둡니다. 팔림새가 그리 뛰어나지 않다 하여도, 우리 세상에서 더 고른 목소리를 담아내는 책이 새책방 책시렁을 차지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할까요. 이 세상은 얼굴이며 몸매며 목소리뿐 아니라 생각이며 뜻이며 넋이며 모두 다른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듯, 출판사 스스로 다 다른 책을 고이 아끼고 사랑하는 길보다는 더 팔릴 만한 책으로 눈썰미를 돌리게 되고, 새책방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훨씬 반깁니다.

다만, 헌책방은 아무리 잘 팔릴 만한 책이라 하여도 '전화 한 통이나 팩스 한 통으로 손쉽게 주문할' 수 없습니다. 세상흐름이 아무리 '더 많은 돈'에 매여 있다 하여도, 헌책방 얼거리는 더 많은 돈으로 옮아가기 아주 어렵습니다. 옮아가자면 억지로 옮아갈 수야 있을 테지요. 그러나 헌책방 얼거리는, 헌책방 일을 붙잡는 누구한테나 '나 먹고살기에 알맞는 만큼' 벌도록 할 뿐입니다. 크게 돈바라기를 하지 않게끔, 어느 만큼 먹고살도록 맞추어 줄 만큼 벌도록 할 뿐입니다.

헌책방에서 다루는 헌책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책만 아주 잘 팔릴 수 있도록 짜이지 않는 헌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 저 책 골고루 팔리면서 적은 돈을 푼푼이 모아 책방살림을 꾸리도록 하는 헌책방이기 때문입니다. '베스트셀러'뿐 아니라 '스테디셀러'를 꽂는 책시렁이란 처음부터 없고, 오로지 '갈래에 따라 나눈' 책시렁만 있을 수밖에 없는 헌책방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한테 더 도드라져 보이도록 내세우는 책시렁이란 하나도 없이, 모든 책시렁이 모두 똑같이 짜이고 갖추어지는 헌책방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책은 헌책방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제값을 받고 제빛을 얻으며 제구실을 합니다. 헌책방에서는 글쓴이 이름값도 출판사 이름값도 한몫을 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책에 처음 붙었다는 값마저 한몫하지 않습니다. 이문열이고 황석영이고, 이분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헌책방에 들어오는 '이문열 책'과 '황석영 책' 대접이 달라지고, 사람들 손길이 달라집니다. 이분들 스스로 옳고 바르게 살아간다면 이분들 책은 들어오기 무섭게 팔리나, 이분들 스스로 거짓되고 그릇되이 살아간다면 이분들 책은 한켠에 잔뜩 쌓이다가 버려질 뿐입니다.

책에 남겨진 자국을 보면서, 이 책을 처음 집어들었던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책에 남겨진 자국을 보면서, 이 책을 처음 집어들었던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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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헌책 하나 고르면서

헌책방을 모르는 분들은 헌책방 맛을 모르기 마련입니다. 헌책을 모르는 분들은 헌책 멋을 모를밖에 없습니다. 헌책방은 이름난 책이나 값나가는 책을 갖추는 데가 아닙니다. 헌책은 이름값으로 사고팔지 못하는 책입니다. 추억이 묻은 책을 다룰 겨를이 없는 헌책방이요, 추억으로는 먹고살 길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헌책방입니다. 세상흐름에 맞춘다고 하는 책은 헌책방에 들어올 수 없고, 오로지 파지간으로 넘어가 다시쓰기 할 종이로 바뀔 뿐입니다. 헌책방에서 '처세ㆍ자기계발' 책을 찾는 분들이 꽤 많은데, 이런 책은 헌책방에 들어올 무렵이면 일찌감치 '유행이 끝나 버려지는' 책입니다. 그래서 헌책방 일꾼은 웬만해서는 사들이지 않고 그냥 내다 버립니다. 헌책방에 이런 책을 '새것으로 사자니 아까워 헌것으로 값싸게 사자'고 생각하는 분이 있으나, 헌책방은 '금세 버려질 만한 책'은 갖추지 않으니, 이런 책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 어떤 분은 '새책방에서 신나게 팔고 있는 책을 적은 돈으로 사들이자'고 생각하곤 하지만, 이러한 책 또한 헌책방에서는 만나기 몹시 어렵습니다. 어쩌다 만나면 운이 좋은 셈입니다. 헌책방은 이런 책을 사고팔아서는 살림새를 맞출 수 없어요. 헌책방은 오로지 한길입니다. '온갖 갈래 책을 모두 한결같이 다루고 사람들 앞에 보여지도록 하면서 사람들 스스로 책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끼도록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헌책방이 잘되느냐 못되느냐가 갈립니다.

어느 신문사에서 헌책방 이야기를 특집으로 삼으려 한다면서 전화를 걸어와 20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입 아프게 들려주고 귀 아프게 듣고 난 다음, 나 같은 사람한테 물어 볼 구석 없이 당신이 몸소 여러 헌책방을 다녀 보면 즐겁게 알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동네에는 이 헌책방이 있고 저 동네에는 저 헌책방이 있다고 신문에 적어 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으레 다 알아서 찾아가기 마련이며, 나 스스로 살아가는 동네에서 가까운 곳을 찾아가면 저절로 다른 데까지 알게 될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나부터 우리 동네 헌책방에 찾아가자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동네 헌책방이면서도 동네 다른 일을 하느라 바쁘고 내 일 하느라 힘들어 제대로 못 찾아가던 인천 배다리 '삼성서림'으로 옆지기하고 함께 갑니다.

늦은 밤 찾아갔습니다. 이제 막 책방을 닫을 무렵, 부지런히 책 구경을 합니다.
 늦은 밤 찾아갔습니다. 이제 막 책방을 닫을 무렵, 부지런히 책 구경을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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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림' 할아버지는 당신 가게에 찾아온 오래된 '책방 동무'하고 큰소리로 떠들고 웃느라 바쁘고, 저와 옆지기는 저와 옆지기대로 조용히 골마루를 누비면서 이 책을 들추고 저 책을 들여다보느라 바쁩니다.

잡지 <삶이 보이는 창> 34호(2003.8∼9.)를 봅니다. 여러 해 묵은 판입니다. 요즈음과는 사뭇 다른 짜임새가 눈에 뜨이는데, 철지난 글 가운데 몇 꼭지가 읽을 만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몇 꼭지를 빼고는 그리 마음이 끌리지 않습니다. 잡지 <삶이 보이는 창>이 아쉽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잡지라는 곳에 글을 싣는 글쟁이 스스로 좀더 '내 글은 어떻게 읽히기 바라나' 하는 대목에서 엉성하거나 어수룩하다는 소리입니다. 잡지는 그달그달 읽히고 버려지는 책이 아님을 글쟁이 스스로 제대로 깨우치지 못하고 있어요. 헌책방을 뒤져서라도 '지나간 잡지'를 찾아서 읽게끔, 호수를 빠뜨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놓은 다음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가끔 들춰내어 펼칠 수 있게끔 글매무새를 다스리지 못하고들 있습니다.

<내 영혼의 상처를 찾아서>(유안진,문학사상사,1988)를 집어듭니다. 중학교 다닐 때에 익히 보던 책입니다. 그때에는 아주 좋아라 읽었으나, 고등학생이 되고, 또 사회에 몸담고 하면서 모두 내다 버렸습니다. 유안진 님이 얄딱구리한 길을 걸었기 때문에 유안진 님 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 길하고는 걸맞지 않다고 느껴 버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다시 사느냐? 틀림없이 오늘 만나는 이 책에서도 그리 입맛이 당기는 글은 없습니다만, '아이를 키우고 사는 어머니 목소리' 담은 글이 몇 가지 있어, 이 글을 읽으면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 나 스스로 어떤 눈길과 눈썰미를 가다듬으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들여다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의가 강물처럼>(지학순,형성사,1983)이라는 책을 봅니다. 예전에는 그리 오래된 책이라 느끼지 않았으나, 이제 와 들여다보니 참 해묵어 버린 책이로구나 싶고, 어찌할 수 없는 세월힘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강물처럼 닮자고 말하면서도 스스로 강물이 되기란 참으로 힘든 노릇일 테지요. 내 마음과 내 몸을 강물과 하나되도록 꾸려내기란 몹시 벅찬 노릇일 테지요.

<어린 청춘의 지옥>(송언,동녘,1991)은 교육소설. 책을 집어들면서 '읽을 수 있을까? 읽을 짬을 낼 수 있을까? 굳이 사두어야 할까?' 하고 자꾸자꾸 생각합니다. 그러나 골라듭니다. 저는 못 읽을 책이 된다 하여도, 도서관에 꽂아 두면서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제가 읽지 못하여도 우리 도서관 책시렁에 얌전히 꽂아 둘 만한 값은 있다고 느끼니까요.

헌책방 할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고, 술도 한잔 걸치고, 또 동무들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여든 나이를 헌책방에서 즐깁니다.
 헌책방 할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고, 술도 한잔 걸치고, 또 동무들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여든 나이를 헌책방에서 즐깁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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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는 영원하다>(강명한,정우사,1992)라는 책이 보입니다. 예전에 이분이 쓴 <포니를 만든 사람들>이라는 책을 장만한 적 있습니다. 그때 생각이 나서 냉큼 뽑아듭니다.

.. 그러나 그 무렵에 자동차가 공해물질을 내뿜고 다니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당시의 우리 나라 도회지 규모는 서울, 평양, 부산을 제외하면 그리 크지 않아 걷거나 자전거로 충분히 일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위에 든 3대 도시에는 시내 전차가 있어 여간 편리하지가 않았다. 도회지에 나가 전차를 타 본 일이 있는 애들은 그것을 친구들에게 두고두고 으시대며 자랑했다 ..  (223쪽)

자동차뿐 아니라 다른 모든 공장이 마찬가지입니다. 공장을 세우던 무렵, 정치꾼뿐 아니라 지식인 되는 분들 스스로도 공장이 얼마나 우리 삶터를 더럽히거나 어지럽히는 줄을 깨닫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비롯한 기계물질문명이 우리 삶터를 갉아먹고 있지만, 지식인이건 지성인이건 집집마다 자가용을 한두 대쯤 굴리고 있습니다. '큰집 빠른차'를 갖추고 갖가지 전기제품을 한가득 들여놓고 살아갑니다. 스스로 진보라 하건 보수라 하건, 스스로 좌파라 하건 우파라 하건.

진보라 하면 마땅히 자동차를 멀리해야 하고, 보수라 하여도 마땅히 자동차를 멀리해야 하는데. 좌파라 하여도 전기 먹는 제품을 되도록 덜 쓰고, 우파라 하여도 전기 먹는 제품은 웬만하면 안 써야 하는데.

왜 그럴까요. 왜 진보이든 보수이든 자동차를 멀리해야 할까요.

알겠습니까? 왜 좌파이든 우파이든 전기제품을 덜 쓰거나 안 써야 할까요.

우리 삶터를 아름답고 깨끗하고 슬기롭고 훌륭하게 고쳐 나가려는 마음이든, 우리 삶터를 아름답고 깨끗하고 슬기롭고 훌륭하게 지켜 나가려는 마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고치려' 하니까 자동차는 우리 삶터를 망가뜨리는 나쁜 녀석인 줄 깨닫게 됩니다. '지키려' 하니까 자동차만큼 우리 삶터를 어지럽히는 나쁜 녀석을 쓰면 안 좋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현대자동차나 대우자동차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닙'니다. 현대'자전거'나 대우'자전거'라는 회사라 했다면, 어김없는 노동자이지, 자동차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노동자'라는 이름을 붙여 줄 수 없습니다. 군수제품을 만드는 사람한테도 똑같이 '노동자'이든 '일꾼'이든 하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사람들이 알아서든 몰라서이든 스스로 '진보'도 '보수'도 아니라 하면서, 또 '좌파'도 '우파'도 싫다고 하면서 '중도'라고 외치는 까닭을 알 만합니다. 당신으로서는 자동차도 몰고 큰 아파트에서도 살고 갖은 전기제품도 마음껏 쓰고 싶으니, 어중이떠중이처럼 '가운데'에 있겠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슬기롭고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할 텐데요.

누구나 스스로 찾아야 하는 책입니다. 추천을 해 주는 책이 아니라, 스스로 느껴서 알아채야 하는 책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찾아야 하는 책입니다. 추천을 해 주는 책이 아니라, 스스로 느껴서 알아채야 하는 책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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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나라공업은 국회에서의 비난과 외화부족으로 부품을 수입하지 못해, 설립된 다음해인 1963년 7월에 문을 닫았다. 그들은 일 년 못 되는 기간에 2700여 대의 승용차를 생산하고, 나중에 다른 자동차회사에서 선구자 역할을 한 몇몇 기술자를 일본에 보내어 훈련시킨 공적을 남겼다. 하지만 새나라는 모처럼 우리 기술로 자라나던 국산차량인 시발자동차를 몰아내고, 기술축적보다는 돈을 벌고 기업을 팽창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풍토를 만드는 모델이 되기도 했다 ..  (240쪽)

<포니를 만든 사람들>이든 <바퀴는 영원하다>이든, 그저 '자동차가 왔다입지요!' 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저 '자동차라는 물건'을 사랑하던 어느 기술자 한 사람이 겪고 부대낀 이야기가 담긴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제 눈길을 끌고, 제 마음을 붙잡아 줍니다.

.. 학교를 막 졸업하고 기계공장에 들어갔던 나는(1959년), 영어인지 일본어인지 구별할 수 없는 용어에 진땀을 흘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공장에 필요한 자재를 청구하려고 현장의 반장과 상의하는데, '우에스' 두 관을 청구해 달라 했다. "우에스? 우에스라는 게 무슨 말입니가?" 반장은 기술자가 그것도 모르냐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대답한다. "우에스 있지 않아요? 기름 닦는 우에스 말이에요." "아하, 기름걸레 말이지요. 그런데 그게 어째 우에스가 되었나? 그게 어느 나라 말입니까?" "글쎄, 왜놈말 아니겠어요. 왜정시대부터 그렇게 불러 왔으니까." 일본어는 어지간한 말은 다 안다고 자부했던 나여서 여러 가지로 혼자 생각해 봤지만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배한테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거, 아마 웨이스티드 크로드(wasted clorh)가 그렇게 줄여졌을 거야. 나도 처음에는 몰라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그런 해답밖에 못 냈어." 맞는 말 같았다. 일본인들은 긴 단어를 줄여서 새 단어를 만드는 데는 천재들이다. 그들은 '웨이스'를 '우에스'로밖에 발음하지 못한다. 이렇듯 앞머리만으로 줄여진 일본식 영어는 특히 자동차에 관한 말들이 굉장히 많다. 지금 50세를 넘은 운전기사들이 쓰는 말, 또 그들에게서 일을 배운 이들이 쓰는 말 중에는 일본식 영어와 일본어가 많으며, 그것이 우리 말의 발음에 맞도록 고쳐져 그 어원을 알 수 없게 된 말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을 아무 생각없이 흉내내어 쓰다 보면, 오래지 않아 잘못된 채로 우리 말화해 버릴 가능성도 크다 ..  (173∼174쪽)

글쓴이는 '우리 말을 지키자'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 분입니다. 알맞고 바른 말을 가려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여느 때에 꾸준히 하지는 않는 분입니다. 그러나, 당신 스스로 부대끼면서 '자동차밭에서 쓰는 말이 참 얄딱구리하다'고 느낍니다. 그저 걱정스러워 합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책과 얽힌 말에도 일본말이 많습니다. 자전거와 얽힌 말에도 일본말이 많습니다. 학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삶터 어느 곳에도 일본말이 스며들지 않은 자리가 없습니다.

학문을 하는 자리라고 남다를까요. 대학 교수라고 홀가분할까요. 소설을 쓰고 문학평론을 하는 분이라고 해서 새삼스러울까요. 모두들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로 배웠고, 당신한테 배우는 사람을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로 가르치며, 당신이 쓰는 글이나 책 또한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력과 사다리와 책.
 달력과 사다리와 책.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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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책은 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옆지기가 <수학의 정석>을 둘 고릅니다. <새학습 수학사전(수식편)>(국민서관,1980)도 고릅니다. <새학습 수학사전>은 1984년에 찍은 판인데 그때 상하권으로 해서 29000원입니다. 한 권이 870쪽을 웃돌며 두툼하기는 한데, 그무렵에 이만한 값으로 팔았을까 궁금합니다. 아무튼 옆지기는 수학을 좋아합니다. 저같은 '수학 바보'한테는 혀를 내두를 만한 노릇이요, '수학이 가장 쉬웠어요' 하는 말이 떠올라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국어를 못하던 사람은 저처럼 국어사전을 천 가지 넘게 장만하며 읽는 사람이 미쳤다고 느낄 수 있을까 싶습니다. 우리네 교육 틀거리는 인문계와 자연계를 억지로 나누어 서로 다른 길만 걷게 하면서 학문과 학문이 어깨동무하지 못하게끔 가로막습니다. 학문길을 걷든 학문길을 안 걷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하지 못하게 울타리를 높이 세웁니다.

인문계는 인문계답지 못하도록 하고 자연계는 자연계답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답게 자라도록 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학교가 학교답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사가 교사답지 않은 길을 간다는 말이며, 교과서는 교과서다운 길에서 어긋난 셈이라는 말입니다.

책방마실을 할 때마다 으레 느낍니다. 오늘날 우리네 새책방들은 올바르게 새책방 구실을 하고 있는가 하고. 오늘날 우리네 헌책방들은 알맞춤하게 헌책방 구실을 하고 있는가 하고.

먹고살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더 잘 팔릴 만한' 책에만 눈길을 쏟는 책방 흐름은 아닌가 돌아봅니다. 거의 모든 새책방이 이러합니다. 매출을 맞추고 손익분기를 따지며 도서정가제와 할인과 마진을 헤아립니다. 정작 사람들이 어떠한 책을 만나고 읽고 삭이며 마음밥을 듬뿍 얻으면 좋은가 하는 대목은 등돌려 버립니다. 출판사에서도 더 나은 마음밥이 되도록 할 만한 책에 힘과 돈과 품을 쏟기보다는 더 팔릴 만한 책에 힘과 돈과 품을 바쳐 버립니다. 그런데 책마을만 이러하겠습니까. 우리가 회사를 다닌다며 하는 일도 마찬가지이잖습니까.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름다이 가꾸는 한편, 우리 삶터를 아름다이 북돋우고자 돈벌이를 합니까. 더 많은 돈을 바라는 돈벌이가 아닌지요. 꽤 많은 돈을 벌어들였어도 더더더더더 많은 돈을 바라고 꿈꾸면서 제 삶을 내동댕이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헌책방이 '전화 한 통 책 주문'을 할 수 없는 대목이, 어떻게 보면 참으로 훌륭하고 반가울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먹고사는 길에서는 그지없이 답답하고 아득한 노릇인데요, 이처럼 답답하기 때문에 욕심을 부릴 수 없고, 이렇게 아득하기 때문에 더 땀을 쏟게 되며, 이렇게 고단하기 때문에 한결 스스로를 낮추게 됩니다. 더 애쓰고 더 마음쓰고 더 몸써야 합니다. 세상 모두 먹고살기 어렵다고 하는 판에, 또 숱한 동네새책방이 모조리 문을 닫고 웬만큼 크다 하는 새책방마저 자취를 감추는 판에, 그 조그마한 헌책방들만큼은 어려운 가운데에도 살림을 알뜰히 붙잡는 모습을 보면서 새롭게 느낍니다. 이 어려운 살림살이를 버티는 힘은 무엇이고, 이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도 책을 놓지 않는 손은 무엇이며, 이 어렵고 바쁘고 힘들고 빠듯하다는 세상에서도 우리한테 책을 이야기하는 가슴은 무엇인지를 고즈넉하게 돌아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책은 책일 뿐이다.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삶은 삶일 뿐이다. 돈은 돈일 뿐이다.

몇 가지 책을 헌책방에서 골라들고 집으로 돌아와 걸레로 닦으면서 이와 같은 생각이 듭니다. 걸레로 먼지를 닦아 준 책을 말리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잘 닦인 책을 흐뭇하게 어루만지며 책장을 넘기는 사이 이 생각 저 생각이 갈마듭니다.

한 해 두 해, 할아버지와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책들은 조용히 새로운 책손을 기다립니다.
 한 해 두 해, 할아버지와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책들은 조용히 새로운 책손을 기다립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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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책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으로 돈벌 생각이어서는 안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돈은 돈대로 다른 데에서 벌어야지, 책으로 돈벌 생각은 잘못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내 먹고살 만큼만 벌겠다는 책만들기라면 훌륭하지만, 내 먹고살 만큼이 아니라 부자가 되려고 책을 만들려 한다면 글러먹은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에서 책 아닌 다른 무엇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모두들 힘들지 않느냐 싶고, 더 나은 책을 만든다고 하는 분들도 쉽게 지치거나 마음이 다치면서 일찌감치 고개를 떨구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로 배를 곯는 가운데 높은 뜻과 거룩한 마음을 지키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책만들기에서 한동안 손을 떼야 합니다. 마음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책이니까요. 헌책방 일꾼들도 마음만으로는 책을 다루지 못합니다. 책을 아끼려는 좋은 마음에다가, 책방을 알차게 꾸리겠다는 몸가짐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글을 쓰건 글을 엮건, 내 마음을 다 바치는 한 가지에다가 내 몸을 모두 바치는 두 가지가 고루 얼크러져야 하지 않으랴 싶어요.

책은 책 그대로 바라보며 책 하나에 우리들 손품과 땀내가 어떻게 배었는가를 느껴야 한다고 봅니다. 책을 다루는 사람들 매무새를 느끼고, 책하고 이어진 자리에서 아무 이름 없이 버티어 주는 사람들 몸가짐을 느껴야 한다고 봅니다.

책에서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책으로 사람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책을 쓰다듬으며 사람들 마음과 뜻과 꿈과 속셈을 읽어야 합니다. 내가 찾아드는 책은 바로 내 얼굴이요, 내가 펼쳐드는 책은 바로 내 몸이며, 내가 읽어내어 곰삭이는 책은 바로 내 삶입니다.

덧붙이는 글 | - 인천 배다리 '삼성서림' / 032) 773-8448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헌책방, #삼성서림, #배다리, #책,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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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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