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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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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에 사극 붐이 불던 시절이 있었다. 2004년 MBC <대장금>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이영애를 스타덤에 올려놓고 <겨울연가> 이후 새로운 드라마 한류 아이템으로 각광받은 이후, 안방극장에는 전에 없던 사극 붐이 불어 닥쳤다. <주몽>은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고구려의 이야기를 방대한 스케일로 그려내 삼국시대를 재조명하는 발판이 됐고, 이후 <대조영> <연개소문> 등의 고구려 사극이 쏟아졌다.

2007년은 그러한 사극 바람이 절정에 달한 해였다. 월요일과 화요일 밤에는 MBC <이산>과 SBS <왕과 나>가 각축전을 벌였고, KBS는 <한성별곡>과 <대조영>으로 사극명가의 자존심을 지켰다. 연말에 이르러서는 배용준, 김종학 감독이 손을 잡고 만든 MBC <태왕사신기>가 메가 히트를 치며 연말 시상식을 휩쓸었다. 케이블 방송에서도 사극 열풍이 이어져 <조선과학 수사대 별순검> <정조암살 미스터리 - 8일> 등이 제작됐다.

그러나 달은 차면 기울고 언제나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 2008년 이후 상황은 변했다. 시청자들은 더 이상 사극에 열광하지 않았고, '대충 만들어도 15%'라는 사극불패 공식은 깨졌다. 특히 사극명가 KBS는 퓨전사극 <쾌도 홍길동>, 송일국을 앞세운 <바람의 나라>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해 자존심을 구겼다. 대하사극의 맥을 잇는 <대왕세종>마저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 형편이 되자, '사극 르네상스는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다.

<선덕여왕>, 사극 붐 다시 일으킬 수 있을까

이런 현상은 2009년에도 이어졌다. <대왕세종>의 실패 이후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KBS가 야심차게 준비한 <천추태후>는 방송 2회 만에 24.3%(TNS미디어코리아)의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여세를 몰아가는 데 실패했다.

이후 경쟁작인 SBS <가문의 영광>, <찬란한 유산>에 쭉 밀리고 있는 형편이다. 황인뢰 감독이 연출한 MBC <돌아온 일지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설화를 그린 SBS <자명고> 역시 기대 이하의 시청률 속에 고전했다.

그리고 이런 악조건 속에, 드디어 지난달 25일 MBC <선덕여왕>이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 여성 사극, 고현정이라는 톱스타의 캐스팅, 천년 고도 경주시의 제작지원 등 지난해부터 숱한 화제를 뿌리며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선덕여왕>의 방영은 언론과 대중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더군다나 전작 <내조의 여왕>이 시청률 30%를 넘긴 흥행작이었기 때문에, 후속작 <선덕여왕>에 가는 관심과 기대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여성사극이라는 점에서 <선덕여왕>은 KBS <천추태후>, SBS <자명고>와 비슷하다. 천추태후와 문화왕후, 자명공주와 낙랑공주 같은 여성 간의 대립구도는 선덕여왕과 미실, 두 캐릭터를 축으로 한 <선덕여왕>의 대립구도와 비슷하다.

천추태후에겐 김치양이, 자명공주에겐 호동왕자가 있는 것처럼 선덕여왕 옆엔 김유신이라는 강인한 남성 캐릭터가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끝내는 주인공 선덕여왕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한다는 영웅 드라마의 공식은 말할 것도 없다.

경쟁작들 부진으로 초반 행운 거머쥔 <선덕여왕>

<선덕여왕>에서 미실역을 맡은 고현정.
 <선덕여왕>에서 미실역을 맡은 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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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점이 있다면, 차이점 역시 존재한다. <선덕여왕>은 다른 두 작품과는 다르게 첫 회 방송 전에 스페셜 방송을 내보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스케일 큰 대작들은 으레 첫 회 방송 전에 스페셜 방송을 편성했고, 이는 보편적인 추세가 됐다. 주연급 등장인물의 내레이션으로 대략적인 줄거리를 설명하고 주요 장면을 따로 편집해서 내보내는 이런 1, 2시간짜리 스페셜 방송을, <선덕여왕>은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전작 <내조의 여왕>의 성공에 있을 것이다. 사실 스페셜 방송을 종영 후가 아닌 사전에 편성하는 이유는 '눈치보기'에 있다. 대작들은 큰 스케일만큼이나 제작규모도 커서 그만큼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런 만큼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맡은 책임이 막중하다. 때문에 첫 회 방영 시기를 놓고 방송국과 제작사는 고심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경쟁작이 잘나갈수록 그 부담은 커진다.

예컨대 <자명고>의 경우 경쟁작이 <에덴의 동쪽>과 <꽃보다 남자>였다. 시청률 30%를 오르내리는 두 작품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명고>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그만큼 좁았다. 그래서 <자명고>는 <에덴의 동쪽>의 연장방영 소식이 들릴 때마다 방영 날짜를 차일피일 뒤로 미뤄야 했다. 스페셜 방송 역시 <에덴의 동쪽> 종영과 시기를 맞추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그럴 필요가 없다. 전작 <내조의 여왕>이 워낙 잘나갔던 덕분에 그 후광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데다, 경쟁작 <자명고>와 <남자 이야기>가 모두 한 자리대 시청률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빠른 전개와 배우들 호연이 시청자 눈길 잡았다

초반에 힘을 줘 시청자들의 이목을 끄는 장면도 없었다. 어느 드라마나 처음 2회까지는 시청자의 이목을 잡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특히 사극은 막대한 인력과 컴퓨터 그래픽 등 특수효과를 동원하여 대규모 전투신을 첫 회에 배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그러지 않았다. 첫 회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신라 진흥왕은 이미 무수한 정복전쟁을 끝내고 신라의 기틀을 닦은 뒤였다.

대신 <선덕여왕>은 캐릭터를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데 힘썼다. 주인공 선덕여왕과 대척점에 서서 그와 대립구도를 이루게 되는 극중 최고의 악역 '미실'을 처음부터 전면에 내세웠다. 고현정이 연기한 미실은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3대에 걸쳐 국정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희대의 여걸로, 황후가 되려는 욕심으로 가득 찬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다. 또한 뭇사내들을 자신의 치마폭에 휘감을 줄 아는 요부이기도 하다.

악역이 제 몫을 다할수록 드라마는 사는 법. 고현정은 선덕여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극의 초반을 빼어난 연기력과 훌륭한 캐릭터 소화로 휘어잡았다. 눈빛 하나로 남자를 사로잡는 요기, 말 한마디로 좌중을 압도하는 패기,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판단하는 지기 등등. 미실이 신라 최고의 권력자가 될 수 있었던 이러한 면모를 초반 시청자에게 각인시키는 데 있어 고현정은 자기 역할을 120% 소화했다는 평이다.

이제는 사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 아역배우들 역시 무난히 합격점을 받았다. 어린 진평왕을 연기한 백종민, 어린 천명공주를 연기한 신세경 등 이미 이름을 알린 배우들뿐만 아니라 어린 선덕여왕을 연기한 신인 남지현 역시 신인답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로 화제가 되고 있다. 4부가 방영된 현재 신인배우들 중 연기력 면에서 논란이 있었던 건 어린 마야부인을 연기한 박수진 뿐이었다.

4회만에 시청률 22% 나왔지만, '대박' 속단은 일러

<선덕여왕>에서 어린 덕만(이요원)을 연기한 남지현.
 <선덕여왕>에서 어린 덕만(이요원)을 연기한 남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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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이야기 전개와 배우들의 호연 덕분에 <선덕여왕>은 방송 3회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했다. 첫 회 16%로 시작해 2회 16.6%, 3회 21.3%를 거쳐 지난 4회에서는 22.3%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매 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며 고공행진하고 있다.

물론 아직 성공을 확신할 단계는 아니다. 16부에 끝나는 미니시리즈가 아닌, 50부작의 대하사극이기 때문에 이제 겨우 4회가 나간 상황에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고 미리부터 축배를 들 순 없다. 첫 회 시청률 20%을 올리며 대박 조짐이 보였던 <천추태후>가 이후 10%대로 내려앉으면서 경쟁작에 밀렸던 것을 보면 속단하기는 이르다.

요즘 시청자들은 재미가 없으면 언제라도 채널을 돌린다. 주의해야 할 것은, 늘어지지 않는 것이다. 최근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를 살펴보면 빠른 이야기 전개로 몰아치는 스타일이 많았다. 통속극의 스피디한 전개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더 이상 사극 특유의 '느림의 미학'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가령 지난 4회에서 방영된 사막 추격신도 '지루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아역배우에서 성인 연기자로 전환되는 지점도 중요하다. 사극의 감초 역할을 했던 아역배우들이 어느새 당당하게 주류로 자리 잡은 요즘, 아역배우들이 쌓아놓은 것을 성인 연기자들이 자연스럽게 이어받지 못해 무너지는 사극이 종종 있었다. SBS <왕과 나>가 그랬고, KBS <천추태후>도 그중 하나였다.

<선덕여왕>은 과연 사극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태그:#선덕여왕, #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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