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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 사리 고사리야 영험 없을 고사리야
너를 뜯으러 내가 왔던가 너를 만나러 내 여기 왔지."
-이미자의 '고사리 처녀'

캐나다 이민 한인들의 '고사리 사랑'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밴쿠버 한인들의 고사리 사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물 캐러 원정을 가는 한국인들도 있다.

자연환경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캐나다 밴쿠버 지역의 숲이나 공원에는 고사리들이 정말 많다. 캐나다 시중에 판매되는 고사리는 대부분 중국산인데, 한국산에 비해 맛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별로 인기가 없다.

밴쿠버 근교에서 2시간 떨어진 미션 지역 국립 숲에 흐드러진 고사리.
 밴쿠버 근교에서 2시간 떨어진 미션 지역 국립 숲에 흐드러진 고사리.
ⓒ 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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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뭐해? 고사리 캐지~

밴쿠버 유학생인 내 주변에도 요즘 들어 고사리 따러 가자는 지인들이 많다. 아는 어떤 분은 언제 따왔는지 앞마당에서 고사리를 말리고 있었다.

"여기 고사리가 그렇게 맛있어요?"
"여기 고사리 맛은 며느리도 몰라. 먹어보면 그 맛을 알지. 고사리 말리는 것도 재미있고, 식구들과 함께 저녁반찬으로 먹는 재미도 쏠쏠해."

밴쿠버에 이민 온 지 5년이 넘는 정아무개(57)씨 부부는 매일 밴쿠버 근교에 있는 노스 밴쿠버 그라우스 마운틴을 등반한다. 등산길에 널린 고사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가끔 캐온다고. 이렇게 채취한 고사리는 한인들의 저녁 밥상에 오르거나 선물용으로 쓰인다.

한인들이 자연산 야생 고사리에 열광하는 첫 번째 이유는 물론 깨끗한 환경에서 건져낸 싱싱한 '맛'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직접 채취해서 먹기 때문에 돈이 안 든다는 것,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준다는 것 등등이 그들을 고사리에 열광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다. 밴쿠버 이민자 중에는 40~50대 중후반대의 부부들이 많은데, 밴쿠버 고사리를 캐면서 한국의 추억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석 달 전 캐나다로 이민 온 주부 이아무개(53)씨는 "고향인 경남에서도 늘 집근처 산으로 고사리를 캐러 다녔는데 밴쿠버에도 고사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다"며 "요즘은 고사리 캐는 재미로 산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넘치는 고사리 사랑도 이제 어렵게 됐다.

한국어 경고문 '고사리 채취 시 벌금 2000불'

미션 머니시펄 숲 입국의 한국어 경고문.
 미션 머니시펄 숲 입국의 한국어 경고문.
ⓒ 밴쿠버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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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밴쿠버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미션지역의 머니시펄 숲(MUNICIPAL FOREST) 입구에 경고문이 나붙은 것. 경고문에는 빨간색의 한국어로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이곳에서는 고사리를 채취할 수 없으며 적발 시에는 벌금 2000불이 부과된다."

캐나다인들이 레저용으로 자주 찾는 머니시펄 숲에는 엄청난 양의 고사리가 자라고 있다. 때문에 고사리를 캐기 위해 이곳을 찾는 한인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BC주 산림청 산하 미션 산림부(District of Mission's forestry department at 604-820-3762) 관계자는 기자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캐나다에서 정부 허가 없이 야생 동식물을 채취, 사냥하는 건 불법"이라며 "한국인들이 대량으로 고사리를 채취해 가는 걸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서 한국말 경고문을 부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5월 초쯤에 칠리왁 공원 근교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다가 적발된 한국인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고사리는 야생동물인 노루나 사슴의 먹이"라며 "야생식물인 고사리가 사람들에게 식용으로 쓰인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야생동물인 노루나 사슴들이 산딸기나 고사리를 주 먹이로 삼고 있기 때문에 불법 고사리 채취는 생태계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고사리 채취 허가를 받아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한국인 가정도 있다. 밴쿠버에서 멀리 떨어진 밴쿠버 섬에 사는 한인 가정 7~8 집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 생업수단으로 고사리를 채취해 대량으로 마트에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달 수입은 200만 원 정도라고.

밴쿠버 근교로 고사리를 채취하러 나온 아주머니들이 쉬고 있다.
 밴쿠버 근교로 고사리를 채취하러 나온 아주머니들이 쉬고 있다.
ⓒ 박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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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도 사람 사는 곳인데, 너무하네~

한국인들의 이런 고사리 사랑에 대해 밴쿠버 써리시에서 임대업을 하는 샘(45)은 "내 집에 렌트해 살고 있는 한국인 50대 여성이 요즘 들어 일주일에 두 번 이상씩 고사리를 캐러 써리 근처 공원에 가는데 집에 오면 양손에 고사리가 든 봉지가 가득하다"고 말한다.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다면서도 "적발 시에는 벌금 2000불이니 더 이상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5월 초, 캐나다 부동산 및 유학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두고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야생식물을 허가 없이 채취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정 드시고 싶으시면 한국식품점에 가셔서 사드시면 되실 것을 법을 어기면서까지 드셔야 하는 이유는 뭔지 참 궁금합니다... 좀 더 나은 국민성을 가집시다... 대한국민으로서 자긍심 있게 가슴 펴고 삽시다." -박아무개

"날씨도 화장하고 봄이 와서 노인네들끼리 재미 삼아 산보 가서 고사리 한 봉다리 캐다 점심 한 끼 무쳐먹을라 했더니 참 무섭네, 무서워. 법법법 하지 마라 젊은이여. 캐나다도 사람 사는 곳이여. 장사 목적으로 대량으로 채취하는 것 아니라면 비닐백 한 봉다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네. 비닐 백 한 봉다리면 우리 노인네 친구들 한 끼 여럿이 먹고도 남는다네. 내 아무리 노인이라도 사유지 들어가 채취할 정도로 무식하지는 않다네..." - ID 아버님

어쨌든 캐나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의 고사리 채취는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 같다. 중년에 접어든 캐나다 이민 한인들에게는 고사리가 단지 '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산나물, 산딸기 채취처럼 '공동체 문화'를 가능케 하는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태그:#캐나다 밴쿠버, #고사리 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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