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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은 중국군이 서울을 포기하기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두오를 찾아갔다. 사실 중국군은 네 차례에 걸친 대공세로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보급도 큰 차질을 빚고 있었다. 중국군은 3차에 걸친 대공세로 미군을 37도 선 이남까지 밀어냈지만 4차 공세에서는 실패했던 것이다.

 

당시 중국군의 공격 부대는 단일 지휘 체제가 아닌, 각 군단에서 차출된 사단들로 급조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의 공격은 일사분란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고작해야 부대별로 소수병력을 투입해 반복, 공격하는 수법이었다. 이는 갑작스러운 조중연합군 편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중국군이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원주 부근의 지평리 전투에서였다. 야간에 횃불을 들고 공격하는 중국군의 루트를 미리 예상한 미군은 지평리의 협소한 지형에 중국군의 주력부대가 이르렀을 때, 집중시켜 놓았던 화력을 일시에 쏟아 부었다. 중국군은 5,000명에 달하는 전사자를 내고 퇴각함으로써 전의가 뚜렷이 약화되었다.

 

적에게 부대 정비의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미 8군 사령관 리지웨이는 즉각적인 반격 작전에 돌입했다. 그는 중국군이 대공세로 전선을 돌파한 후 결정적인 시점에 공세를 멈췄던 이유, 그리고 다음 공세까지 1개월의 터울이 있는 이유를 알아냈던 것이다. 그것은 중국군의 보급체계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군 전투병은 언제나 1주일 분의 탄약과 식량밖에는 휴대하지 못한다. 그들의 보급품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 공격하면 그들은 맞서 싸우지 못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공격만이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비법이다."

 

맥아더는 서울 조기 탈환의 방침을 굳혔다. 그는 작년 크리스마스 이후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미군이 한강 남쪽에 도달한 것은 1951년 2월 중순의 일이었다. 그리고 한 달 가까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군과 대치했다. 미군은 월등한 전투력을 확보한 후 공격하여 중국군 스스로 서울을 내주도록 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었다.

 

이런 판단에 따라 미군은 서울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서울 외곽의 요로를 모두 점령함으로써 서울을 고립시키는 이른바 '절단 작전'을 진행시켰다. 3월 들어 미군이 전면적인 서울 탈환 작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마침내 중국군이 서울을 포기하고 철수하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수현은 이두오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두오에게 권유하여 월북자로 처리해 데려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령부 박 소좌에게 부탁하면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그를 올바로 사랑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두오는 인민공화국이 체질에 안 맞아

 

'본인이 나서서 간다고 하면 또 몰라도.'

 

그를 사랑한다면 그의 자유 의지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었다.

 

이두오가 북으로 갈 이유는 없었다. 잠시 후 그녀의 생각은 조금 더 깊어졌다.

 

'본인이 간다고 해도 만류해야지.'

 

이두오는 인민공화국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혼란스럽고 타락은 했을지언정, 차라리 남반부가 그에게는 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사회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게다가 현대물리학의 주축은 미국이 되어 있다고 했다. 남측에 남아야 미국 유학의 기회도 그에게 주어질 것이었다.

 

'피난길을 역행하여 나를 만나러 온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보여주었다.'

 

자기는 그것만으로 그의 사랑을 전부 받았다는 이성적 판단이 들었다.

 

'일단 깨끗하게 헤어지자. 확률은 낮다고 하지만 통일의 가능성은 있는 거니까.'

 

그녀는 통일을 기약하는 길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날 밤 조수현은 이두오의 품에 다른 때보다 조금 오래 안겨 있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이두오에게 별 이야기를 주문했다.

 

'이별을 말하지 말고 떠나자.'

 

사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이두오와의 떨어짐보다도 그와의 사랑이 너저분해지는 것이었다.

 

"우주의 최변방에 있는 별을 찾아내겠다는 연구가 성과를 낸다면 그것은 위대한 발견이 되는 건가요?"

"성공도 어렵지만 성공한다 해도 그것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업적에 비하면 사과나무와 사과 한 알의 차이 정도나 되겠지요."

 

"그런 일에 평생을 매달리나요?"

"물론 내가 찾아내는 별의 의미가 아주 작다고는 보지 않아요. 하지만 그것은 스케일 면에서 작은 겁니다. 마치 사막을 걷다가 우연히 찾아내는 예쁜 조약돌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돌을 덮고 있는 모래를 걷어내 보면 그것이 사막에 건설된 거대한 피라미드의 끝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부지런히 모래를 파내면, 피라미드의 선명한 모습과 함께 외벽에 새겨진 신비한 상형문자들, 또한 지하의 온갖 밀실들, 그리고 미묘한 난간과 미로 같은 터널들이 하나하나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겠지요. 모래를 파내는 삽이 드디어 피라미드의 바닥에 닿는 날, 우리는 피라미드의 정문을 열게 되고 아울러 그 환상적인 설계도까지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조수현은 부대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별 찾기가 성공하기를 빌어요."

"마지막 인사처럼 들리는군요."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요. 나는 오늘 아침부터 부대에 비상 대기해야 하니까요. 두오 씨는 내가 오늘 오후에 다시 오지 않으면 무조건 피신해야 합니다. 오늘 중이라도 멀리서 총이나 대포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산으로 올라가세요. 이 침낭과 비상식량을 꼭 휴대해야 해요."

 

조수현을 물고늘어지는 박광태

 

부대에 돌아온 조수현은 사령부 박 소좌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박 소좌는 조수현의 안부를 묻더니 조금 머뭇거린 후 어렵게 입을 열었다.

 

"박광태가 수현 동무를 물고 늘어지고 있어요. 그런 사람 같으면 체포하지 말고 모르는 척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 자가 인민군 지휘부에 줄도 닿아 있는 것 같아요. 아무튼 일은 벌어진 것이고 대책을 강구해야 됩니다."

"폐를 끼쳐 미안합니다."

 

"이두오라는 사람이 누구지요?"

"....남반부 청년인데요."

"천재 과학자라면서요?"

"그렇습니다."

"친구인가요?"

"네."

 

"미안합니다만 묻겠습니다. 그냥 친굽니까?"

".... 친구 이상이에요. 나는 그에게 물리학을 배웠거든요."

 

박 소좌는 조수현의 말뜻을 알아차린 듯했다.

 

"...그를 체포할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박 소좌님, 부탁이 있습니다."

"체포조를 안 보낼 수는 없어요."

 

조수현은 전화 도청을 염두에 두고 말했다.

 

"할 수 없지요. 조금 천천히 보내시면 됩니다. 이두오는 저녁때만 움막에 있거든요."

".....?"

 

박 소좌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조수현의 의도를 이내 간파한 듯했다.

 

"알려줘서 고맙소.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소."

"감사합니다."

"하하. 감사할 것 없어요. 체포할 거니까. 그리고 이두오와 조수현 동무의 관계를 박광태가 물고 늘어지는데, 그거야 그에게 물리학을 조금 배운 사이라는데 문제될 게 없지요. 문제 삼는다고 하더라도 증거나 증인을 댈 수는 없는 일이니까 동무가 잘 알아서 하세요."

"잘 알겠습니다."

"수현 동무, 평양에서 만납시다."

 

조수현은 박 소좌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덧붙이는 글 | 노무현 대통령 상중에 소설을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제나름으로는 그렇게라도 그를 애도, 추모하고 싶었습니다.
이제부터 부지런히 써서 6월25일에 맞춰 소설을 끝내겠습니다. 
이 소설이 끝나면 6`15를 소재로 한 통일추리소설을 이어 연재하겠습니다.


태그:#절단작전, #서울퇴각, #중국군, #리지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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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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