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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도 죽어서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말뿐인가?

 

이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다음날(24일)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애석하고 비통한 일'이라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수많은 국민들은 살아 계실 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좀 해주지 왜 돌아가신 다음에 예우 타령이냐며 힐난했었다.

 

사실 이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잘 모시겠다'고 했다. 정말 잘 모셨다. 검찰과 언론을 통해서 그의 온 정신과 몸을 샅샅이 후벼 팔 정도로 잘 모셨다. 너무 잘 모심이 부담스러운지 인간 노무현은 당신이 동네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며 살겠다는 집 뒷산 바위덩이 밑으로 떨어졌다.

 

난 뛰어내렸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어느 누가 40미터나 되는 바위덩어리 위에서 뛰어내리고 싶겠는가. 그는 떨어진 것이다. 시커멓게 밀려오는 압박을 견디고 견디다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함에 처해 그의 순박한 영혼이 터져버릴 것 같아 그 압박에 떨어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징그러울 정도였으면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 "노 전 대통령이 겪은 치욕과 좌절, 슬픔을 생각하면 나라도 이러한 결단이랄까, 그런 것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누군가. 독재정권에 맞서다 숱한 고난과 역경을 헤쳐 왔고, 죽음의 사선을 두 번이 넘긴 분이 아닌가. 그런 분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그 지독하고 더러운 행위들에 얼마나 아파했을 것인가는 금방 알 수 있다.

 

그동안 수백만의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곳을 찾아 조문하였다. 그 수가 500만이 넘는다고 한다. 그들은 밤을 세워 그를 찾았고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분노의 슬픔을 가슴으로 삭이고 삭이었다. 그들은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정숙했다. 질서를 지켰고 엄숙했다. 그러나 이 나라 정부가 한 것은 수많은 경찰차를 동원하여 광장을 막고 사람을 감시하는 일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이명박 정부가 한 일을 보자. 서울광장은 영결식 날이 되어서야 그것도 마지못해 열어주었다. 어찌 이게 가신 분에 대한 예우라 할까. 서울 광장을 막은 일은 둘째치더라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 추도사도 막았다. 말이야 그럴듯하게 전직 대통령의 형평성을 들고 있지만 알 만 한 사람은 다 안다. 비판이 두려웠던 것임을. 쓴 소리가 듣기 싫어 전직 대통령의 형평성을 들먹이고 있음을.

 

또 있다.  시민단체의 추모제도 불허했다. 이유는 '정치적 집회나 폭력 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덕수궁 골목의 서울 시립미술관 앞에서 이루어졌다. 이 정권은 이 나라의 국민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사람 셋 이상만 모이면 일본 순사가 따라다니며 감시의 눈길을 보냈다고 한다. 특히 3.1만세 운동 이후 심했다 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 또한 이거와 무에 다를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지금 하는 것을 보면 그짝이다.

 

 현 정부는 광장 공포증에 사로잡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시민들이 끼리끼리 모이기만 하면 괜한 두려움에 빠지는 것 같다. 왜? 무엇이 두려운가. 진정 이 정부가 국민을 위하고 떳떳하다면 두려워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바라건데 좀 더 당당했으면 싶다.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됐으면 좋겠다. 이 나라 백성의 간절한 소망이 이것 말고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가꾸로 가고 있다.

 

만장 사건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영결식 때 쓰기 위해 제작한 대나무 만장(輓章)을 금지시켰다. 해서 대나무 대신 PVC관으로 대체했다. 오늘 만장을 단 것은 그래서 대나무가 아니라 PVC관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만장에 사용된 대나무가 시위용품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란다.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 대나무 만장은 우리 고유의 장례문화의 하나이고, 그걸 떠나서 마지막 길을 가시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염원들을 단순히 시위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불허했다니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답답하기 그지없다.

 

님은 갔지만 우리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

 

새벽 다섯 시. 봉화마을에서 영결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텔레비전을 통해 홀로 눈물을 글썽이며 바라보고 바라보았다. 님은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냥 가지 않았다. 국민들의 품을 거쳐 갔다.

 

서울 광장에 50만의 시민들이 만장을 손에 들고 노란 풍선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노래를 불렀고 눈물을 흘렸다. 그곳에 서있지 않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이 부른 노래가 그리움의 노래라면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슬픔과 그리움과 분노의 눈물인 것을. 그리고 회한의 눈물인 것을. 우리는 떠난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참 어리석게도 말이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너도 나도 모두 눈물을 지었다. 그리곤 다짐하고 다짐했다. 가신  님의 그 소박하고 위대한 뜻과 마음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 줌의 재가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수많은 시민들이 그를 추모하고 눈물짓고 그리워하고 있다. 님은 갔지만 님을 보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서울광장에 남았다. 그런 사람들을 다시 몰아냈다. 대한문에 설치된 조문소 천막은 찢긴 채 철거를 당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은 길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이게 현실이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어디에서도 없었다. 살아서도 가신 대통령은 내동댕이쳐지듯 죽어서도 그렇게 길거리 차가운 바닥에 사진으로 쓸쓸하게 웃고 있었다. 시민들은 떠나보내기 싫어 그를 붙잡으려 하는데 정부는 빨리 떠나보내려 하고 빨리 잊으려고 한다. 민심이 천심인데 자꾸 민심과 거꾸로 가려고만 한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울광장 노제에서 울려 퍼진 추모시 '님의 침묵'이 자꾸 앞을 가린다. 왜 이리 똑 같을까. 만해 선생이 나라를 잃은 슬픔을 '님의 침묵'이란 시로 노래했는데 오늘 대한민국 국민은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을 잃은 슬픔을 '님의 침묵'을 통해 노래한다. 애통해한다. 그러나 가신 임은 말이 없다. 사진 속에서나 쓸쓸하게 웃고 있다. 비록 그가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어지기 싫은 마음을 놔두고 갔지만 그는 남은 자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을 남겨주었다.

 

그래서 말한다, 사람들은. 님은 갔지만 님을 보내지 아니했다고. 영원히 가슴 속에 남겨 놓고 기억하고 살아가겠다고. 슬픔의 힘을 새 희망의 정수박이 들어붓겠다고. 그의 사랑, 그의 소탈함, 그의 아픔, 그의 꿈들을 기억하며 살겠다고 말한다. 정말 그러길 바란다. 지금 순간만의 마음이 아니라 오래도록 오늘의 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야 가신 님의 죽음이 헛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침묵' 한용운

 

 


태그:#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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