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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저녁 서산시청 앞 공용주차장. 조문객들이 서너겹으로 줄을 서서 저마다 흰 국화꽃을 들고 분향할 차례를 기다리는 분향소의 모습이 길 건너로 바라다 보이는 시 공영주차장에서 저녁7시30분부터 10시까지 1000여명의 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서산시민 추모 집회가 열렸다.

 

유용주 시인은 그 자리에 나와 '한겨레 신문에서 지면 관계로 잘려나간 시의 원본을 갖고 나와 낭독했다. 유시인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치 떨리는 일이 거짓말처럼 일어났다, 우리는 이 일을 영원히 가슴에 머리에 새겨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올리는 편지'를 써 많은 사람들을 울렸던 여고생 황유경(태안여고 1)양이 자신이 노대통의 영전에 올린 편지를 낭독해 다시 한번 사람들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게 했다.

 

황양은 "중학교 때부터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어서 대학에 가서 그쪽을 전공하려고 생각했었으나 노 대통령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보고 생각이 바뀌어 정치학을 전공해 노 대통령 닮은 훌륭한 정치인이 되고 싶다"며 쉼 없이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손등으로 닦아내었다. 그녀는 "그날부터 집에 태극기를 달고 있으며 노 대통령의 내년 기제는 계산해 보니 일요일이어 반드시 봉하마을에 가서 묘소를 참배하고 올 작정이다"고 굳게 다짐했다. 

 

재야 인사인 안인철 목사는 '노무현 대통령을 위한 기도'를 했다.

 

"바보같이  살다간 너무나 바보같아 모든 국민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세워놓고 조롱하고 야유하며 그를 비난하고 비웃었습니다. 대통령은 아무나 하냐며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했는데 그는 정말로 이나라와 국민만을 최우선으로 여겼는데 우리는 그를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향해 돌을 던졌으며 마침내 그를 절벽위에 올려놓고 밀어버렸습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 남과 북의 총부리를 거두고 하나되는 대한민국을 꿈꾸었던 그를 우리가 죽였습니다"

 

삼오스님은 '진혼 염불'을 했다. 시민추모제 위원회의 김신환 위원장은 말을 하다가 목이 메이기도 했다.

 

"보내고 싶지 않아도 이미 그는 떠나갔습니다. 국민은 알고 알고 있습니다. 미안해하고 사죄할 사람은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원망을 받아야 할 사람은 그 죄값을 고백해야 합니다.     

         

당신이 떠나가 버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육신은 떠나갔지만 당신이 죽음으로 남긴 절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당신의 사랑을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이 꿈꾸던 그 날을 위해 부단히, 끊임없이 싸워나갈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던 그 날이 빨리 오는 것을 지켜봐 주십시오."

 

초등학교 1학년인 이영진( 반양초) 어린이는 "너무 착한 대통령 할아버지인데 너무 억울하게 돌아가셔서 밥도 먹지 못하고 울었다"며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이순이(78)할머니는 "노대통령을 죽게 한 못된 인간들은 날벼락을 맞아야 마땅하다"며 분개했다.

 

추모제에 모인 시민들은 손에서 손으로 촛불을 켜가며 노 대통령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따라 부를 때는 글썽거리던 눈물이 마침내 볼을 타고 내렸다. 추모제는 노 대통령의 대형 걸개 사진과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민들은 촛불을 켜들고 시내 중심가를 한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와 '추모노래' 합창을 끝으로 마무리 됐으나 시민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분향소 주변으로 다시 모여들었다.

 

                     

당신의 참말

유용주

 비가 그치고 써레질 끝낸 논바닥에 찰람찰람 물이 들어찼습니다. 찔레꽃 피고 오동꽃 떨어지자 곧 모내기가 시작되었어요.

 

오와 열을 맞춘 어린 모들이 흔들거리며 뿌리를 내립니다. 그 층층 다랭이 호수 속에는 나무와 풀 그림자가 들어있고 해와 달과 산과 구름이 한껏 돛폭 부풀려 서쪽 바다를 향하고 있군요. 해오라기 한쌍 노을에 되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묵언정진에 들어갔으며 바람은 삽을 씻고 돌아가는 늙은 농부의 주름살 계곡으로 쉼 없이 불어갑니다. 흙 묻은 장화를 털고 담배를 빼어 문 황토빛 얼굴에는 땅을 탓하지 않고 평생 삶을 경작해 온 흉그런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많이 굶고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밥그릇에 대한 경건한 기도가 들어있습니다. 무엇보다 서럽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려 했던 당신의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한 그릇 밥 앞에 눈물 흘려 본 사람이기에, 밥이야말로 얼마나 치사하고 위대한 참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 어둠 속에서도 거짓말할 줄 몰랐던, 진실한 말은 오히려 서툴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 준 당신이기에, 어떤 바닥이든 가리지 않고 완벽한 수평을 유지하려는 물의 평등한 말씀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당신은 참 말을 하는 사람이었지요. 왜냐하면 참말만 골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좋은 학교 나온 별 볼일 있는 사람들이었거든요. 당신의 현장 언어를  책상물림들이 알아듣지 못한 건 당연하지 않겠어요. 현란한 말이나 미사여구는 당신에게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했어요. 바보라는 별명, 그거 '바로 보다'에서 나온 말 아닌가요. 바로 보는 사람은 늘 손해 보기 마련입니다. 이익이나 대차대조표를 그렸다면 진즉에 때려치우고 떠났을 것입니다. 농부만큼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손해 나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질줄 알면서도 싸우는 선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삶에서 이기려고 기를 쓰고 덤벼든 우리가 당신을 떠밀었습니다. 더 넓은 아파트, 더 큰 자동차, 더 많은 돈벌이를 위해 사글세를 쫒아내고 자전거와 손수레를 깔아 뭉개고 장애우와 비정규직을 쫒아낸 우리가 등을 떠밀었습니다. 더 편안한 삶을 위해 당신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이명박 정권이나, 한나라당, 검찰이나 족벌 언론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그들은 딴나라 사람들입니다.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멀쩡한 관절을 수술하고 글로벌 세계 리더를 키우기 위해 이중국적을 소지하고, 자연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위장 전입하여 농지를 불법으로 사들이고, 논문을 표절하고, 노동자의 고혈로 부를 축적하고도 세금을 포탈하고 비자금을 조성하여 끼리끼리  나누고 먹고, 돈이 된다면 바퀴벌레도 수입하고, 처녀불알도 구워삶아 팔아넘기는, 재벌들을 비롯하여,전국에 걸쳐 수십 채의 아파트와 상가를 소유하고 있는 판·검사, 장관, 국회의원, 대학교수들은 우리와 피가 다른 사람들입니다. 최고급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영어 몰입식 교육을 받고, 30만원이 넘는 비누곽과 천만원이 넘는 목욕탕 부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철거에 반대하며 불에 타 죽은 사람들을 거들떠보기나 하겠습니까. 그들은 뇌, 척수, 신경세포가 우리들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이 머슴들을 지키기 위해 주인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검찰과 경찰은 얼마나 충실한 푸들입니까. 그들의 모국어는 영어입니다. 그들의 헌법은 강자에겐 아부하고 약자에겐 무자비한 폭력으로 다스릴 것, 밖으로는 강하고 안으로는 한없이 관대할 것, 이것이 전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광주학살 이후에도 서정시를 받아썼던 시인들은 당신을 버렸습니다. 노벨문학상 한번 받아보려고 1%의 부자들에게 구걸하고 있는 작가들이 당신을 죽였습니다.

 

바야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타박하는 시대입니다. 제 눈의 들보는 걷어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눈을 의심하는 서월입니다.

 

저 하늘에 계신 하눌님과 땅속이 천국인양 헤집고 노는 땅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삼천대천세계에서 헛된 죽음은 없는 거지요. 당신이 흘린 피는 물이 되고 불이되고 공기가 되어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의 몸속으로 스며들 것이니, 여름 비바람, 가을 무서리, 겨울 폭설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흐르고 세상이야기가 다 쓰여지고 난 뒤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지금, 다시 쓰여지고 있듯, 세상 사람들 다 죽어 흔적없이 사라진다 해도 새로운 생명은 어디선가 꿈틀 일어서듯, 당신의 참 말은, 당신의 참 행동과 실천은 끝내  다시 시작하는 후세들에게 뿌리내려 울울창창할 것입니다.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린 고드름처럼 , 삶이란 올가미 앞에 절대 고독을 견디며 매달려왔던 당신의 손을 가만히 만져봅니다.

 

거친 삶을 살아왔지만 뜻밖에 부드럽군요. 당신이 흘린 눈물, 세상 골목을 빠져나와 아픈 틈을 메우고 강물을 휘돌아 지금 마악 바다와 만나 뜨겁게 끌어안는 모습이 보입니다. 눈물은 말이 태어나기전, 어머니가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모국어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 시는 유용주 시인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쓴 조시(弔詩)로 28일자로 한겨레 신문 2면에 게재되었으나 지면 사정상  원본이 그대로 실리지 못했으나  유시인과 한겨레신문의 동의를 받아  원문 내용을 그대로 싣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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