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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휑한 광장 보게 되지 않길 바랄 뿐

시청앞 광장
 시청앞 광장
ⓒ 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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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어 가고는 있지만, 자고로 장례식장에는 사람이 북적거려야 한다는 게 우리네의 소박한 믿음이자 정서였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 그렇지 않던 사람도 일부러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술을 나누고, 더러는 '화투'를 꺼내 들기도 한다. 그러면 말리는 사람도 있고, 구경하는 사람도 생겨난다.

한 쪽에선 서럽게 우는 사람도 있고, 이리 저리 음식을 나르는 사람도 있다. 원칙적 조용함과 현실적 시끄러움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우리의 장례식장 풍경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인의 장례식장에서 소란을 떠는 비례를 보일지언정, 휑하니 썰렁한 장례식장을 만드는 것을 고인에 대한 더 큰 비례(非禮)로 여기는 정서가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광장이 국민장이 치러지는 국가의 수도 한 중심에서 횅하니 빈 광장으로 남을 경우는 그야말로 국민과 함께하는 역사의 광장이 되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이야기가 되고 만다. 지금 시민들에게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애꿎은 잔디만 파랗게 자라고 있는 서울광장을 보게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 소요의 마음도 이유도 없다.

이러니 공공 디자인 사업에 호응이 없지 

지난 5월 10일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2009 서울 프렌드십 페어
▲ 시청 앞 광장의 행사 지난 5월 10일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2009 서울 프렌드십 페어
ⓒ 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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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디자인과 그것의 공공성, 문화를 강조해 온 서울시의 입장을 생각하면 서울광장개방 불허 방침은 두고두고 곱씹어 볼만한 주제다. 앞으로 서울시민들이 서울광장에서 무슨 일로 왜 모이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서울시가 '허락하'고 '용인하'는 행사에 국한될 것이고 서울시가 자의적으로 판단해 소요의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일 때에 그것은 불허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시민의 광장이 아니고 남의 광장이 되고 그 남은 바로 서울시가 되게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원하는데도 결국 사용이 불허 되는 광장이 과연 우리 시민의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현재 서울시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시행하고 있는 수많은 공공디자인 사업에 대한 시민의 반응도가 원하는 수준으로 나오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시민들 스스로 공공디자인 사업을 '내 사업', '내 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공공디자인과 공공공간 정책은 많은 사람들이 그 공공의 영역을 얼마나 '내 영역' 혹은 '내 것'으로 여기는지에서 출발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공디자인은 늘 다시 시작하고 늘 또 돈이 들며 늘 쳇바퀴돌리는 것처럼 그 수준을 높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공공공간이나 랜드마크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파리에서 에펠탑 앞 광장을 시위 우려가 있어 버스로 봉쇄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서울시는 늘 입만 열었다 하면 버릇처럼 이야기 해 온 그 '랜드마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많은 예산을 들여 조성한 서울광장이 진정으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어 가는 과정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많은 서울 시민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그리고 서울시청을 둘러 싼 버스에서 관제시설의 차가움을 느낀다.

지금 서울 시청 앞 광장은, 애석하게도 우리의 것이 아닌 남의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공공 공간의 관제 시설화는 그만큼 사회적, 정치적 여유가 부족한 문화 후진국의 현상일 뿐이다. 많은 국민이 더 높은 문화를 향유하며 살기 바랐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면을 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www.design2.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청앞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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