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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일이다. 내 신체 또는 장기 일부가 나 아닌 타인의 몸 일부가 되어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허나 관심만 가졌을 뿐이지 남들에 비해 몸이 불편한 나는 선뜻 내 몸의 일부를 타인에게 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며 나도 이 세상에 무언가 하나 남기고 떠나야겠다는 생각과 그중 누군가의 삶에 새로운 희망을 주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깊어져 며칠 동안 고민에 잠겨있다가 '어제 한 인터넷 사이트(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www.konos.go.kr)' 를 통하여 장기기증등록희망자 명단에 내 이름 석 자를 등록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직접적인 장기기증도 아닌 차후 진행될 장기기증희망자 명단임에도 (등록) 저장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여 쉽게 마우스를 클릭하지 못하는 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기증 가능한 장기들

우리 몸에서 다른 사람에게 기증할 수 있는 장기는 신장, 간장, 췌장, 췌도, 소장, 심장, 폐, 조혈모세포 및 각막 등 총 9종류이며 기증을 함에 있어서도 기증희망자가 살아있을 때 기증할 것인지, 뇌사상태에 빠질 때 또는 사후에 기증할 것인지에 따라서 다르다.

살아있을 때 기증할 수 있는 장기로는 신장(정상적인 것 2개중 1개), 간장, 조혈모세포 등으로 간장과 조혈모세포는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그 일부만이 가능하며 뇌사상태에서 기증할 수 있는 장기는 신장, 간장, 췌장, 심장, 췌도, 소장, 폐, 각막이며 사후에 기증할 수 있는 장기는 각막과 인체조직으로 나뉜다.

장기기증이라고 하여 우리 몸에 있는 장기나 인체조직이 모두 무조건 다 되는 것이 아니며 살아 있을 때, 뇌사상태 때, 사후 때 등 기증할 수 있는 장기가 다르다는 걸 이번 일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비겁한 장기기증희망등록

사이트에서 장기기증에 대한 정보를 장시간에 걸쳐 읽고 난 후 그동안 마음속으로 관심 가졌던 바람을 실천으로 옮기려 결정을 한 뒤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장기기증희망등록 란 버튼을 눌렀다. '기능형태'란 항목이 있고 뇌사시, 사망시, 인체조직기증이란 체크 란이 있었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세 가지 유형들 중 고르라는 뜻이다. 물론 중복체크도 가능하고.

장기기증 세부 선택 화면
 장기기증 세부 선택 화면
ⓒ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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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선택사항 체크를 함에 있어 또다시 장시간을 망설여야 했다. 뇌사상태가 되었을 때 내 장기들을 기증할 것이냐, 내가 죽었을 때 기증할 것이냐 아니면 살아서도 장기일부를 기증할 것이냐에 수없이 많은 갈등이 생겨서다. 선택을 하면 바로 내일이라도 누군가에게 기증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 이런저런 묘한 기분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그 세 가지 유형 중에서 나는 '사망 시 장기기증'이란 것에만 체크를 하고 (등록)저장 버턴을 누르고 말았다. 즉, 내가 죽었을 때 내 각막, 신장, 췌장, 췌도를 타인에게 기증한다는 것에만 동의한 것이다. 끝내 나는 비겁한(?) 장기기증희망등록을 한 격이 됐다.

장기기증등록희망자 등록확인 화면
 장기기증등록희망자 등록확인 화면
ⓒ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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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하려면 좀 더 많은 장기기증으로 여러 사람 살릴 수 있는 뇌사 시 장기기증 항목을 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이런 내 자신을 보며 '나 역시 죽기 전에 누군가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인물은 못되는구나'하는 자책감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마음을 가다듬고 나니 나의 비겁함과 자책감은 가라 앉고 내가 사는 동안 내 몸을 아껴 타인에게 기증될 장기들이라도 건강하게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는 쓸 만한(?) 나의 눈과 그밖에 장기들을 위해 더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 말이다.

그동안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속에만 갖던 장기기증을 이렇게 하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흐뭇해진다. 내가 조금만 더 건강한 몸을 가졌더라면 오늘과 같이 비겁한 행동 없이 '살아서도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등록했겠지만 삐딱(?)한 몸 덩어리를 가진 나로서는 자신 있게 줄 수 있는 건 '각막'뿐인지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의 눈으로 또 다른 이 세상을 바라볼 그 누군가를 위해 앞으로는 보다 아름다운 것들만 보고 살다 가고 싶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기기증, #장애인, #각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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