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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뒤지던 초등학생 아들이 갑자기 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어떻게 됐어?"
"응, 아마 다음주 중 검찰에 소환될 거야."
"아빠, 자살했대."
"…"

침묵 속에 난 텔레비전을 켰고, 그의 자살을 알게 됐다. 온갖 생각들이 파노라마로 머리를 스쳤다. 아마도 그 파노라마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현실로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언론자유을 포함해 이 땅의 민주주의가 빈껍데기로 전락해 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재 '시공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스쳐간 파노라마 이전에 덮친 한 가지 감정이 있었다. 그동안 가졌던 미움을 밀어내고 채운 연민이랄까, 혹자들이 말하는 '파토스'(pathos)가 이런 게 아닐까 싶은 그런 것이었다.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의 카오스와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정확히 뭐라 형용할 수 없다.

그런 파토스를 이전에 한 번 느껴봤다. 1992년 12월19일 김대중씨는 대통령 선거에 떨어진 뒤 울먹이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동안 보내준 하해와 같은 국민들의 사랑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면서. 그때 난 보수야당을 싫어하고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지지하던 사람이었다.

'정치 벤처사업가' 노무현의 비극

노무현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대국민 사과의 말을 한뒤 검찰에 출석하기 위해 버스에 오르며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대국민 사과의 말을 한뒤 검찰에 출석하기 위해 버스에 오르며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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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언제부터인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을 만큼 싫어하게 됐다. 지지층을 배반한 그는, 어느 선배의 말을 빌리면 그는 내게 그저 '철학이 없는 정치 벤처사업가'였다. 그를 변함없이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유감이겠지만, 지금도 나의 이런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역사적인 인물이 된 그에 대한 좀 더 엄밀한 평가가 따라야 할 테지만 말이다.

그런 나에게 그의 죽음과 함께 그때와 같은 파토스가 밀려왔다. 텔레비전에 눈을 둔 채 내 머리는 그 이유를 찾기에 분주했다. 노무현이 더 이상 살아있는 미움의 대상이 아니어서, 아니면 저 밑에 깔려있는 민주화의 경험에 대한 공유, 아니면 자신으로 말미암아 주변에 폐를 끼쳐본 경험에 대한 공유?

혹시 파토스의 뿌리에 짓밟히고 시궁창에 처박힌 상식과 그의 자살이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내 머리는 거기서 멈췄다. 노무현이 최소한 검찰에 바랐던 것은 '비례성의 원칙'이라는 상식이 아니었을까? 그가 재직기간 내내 다퉈왔던 '조중동'에게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비례성의 원칙'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자신이 권력을 놓아버림으로써 변화하기를 바랐던 검찰은 수백억, 수천억원의 뇌물과 대가성도 모호한 10여억원을 비교 형량도 하지 못 하는, 아니 안 하는, 어쩔 수 없는 '파블로프의 개'였다. 내 파토스의 뿌리는 그에게 '진짜 바보' '몽상가'라는 손가락질이 안겨준 그 이상적인(?) 실험의 희생자가 바로 노무현 자신이었다는 역설에 있는 것 같다.

'정치 벤처사업가' 노무현의 죽음은 비극이다. 상식이 배반당하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다. 78명의 '사람'을 해고하면서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이 사실을 통보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이에 항의하는 화물연대 박종태 광주지부장의 자살의 뿌리에도 배반당한 상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짓밟혔을 것이다. 그와 노무현의 느낌은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전과 14범의 전력을 자랑하는 대통령이 툭하면 법치를 강조하고 이 사회에서 상식에 대한 배반은 일상적이다. 언론자유를 침해·억압하면서 대의민주주의를 떠드는 파렴치가 판을 친다. 그래서 자행되는 악이 진부하게 느껴지고 지루해진다. 전 대통령이던 노무현의 죽음이 이런 '악의 진부화'를 환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의 개인적인 비극만으로 머물지는 많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족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이 <미디어스>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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